남자 정력에 좋다는 ‘이 음식’…전쟁통에도 장사하며 명맥 이어가 [푸디人]
1990년대 후반 초등학교 다닐때 쯤 어머니를 따라 포항 죽도시장에 종종 들른 적이 있다. 난전에서 파는 각종 해산물의 비릿한 내음이 코 끝을 찔렀고, 입심 좋은 상인들의 가격 흥정하는 소리가 시끌벅적했던 기억이 난다. 그 와중에 눈길을 끌었던 것은 고래고기 골목이었다. 고래고기를 먹어 본 적이 없는 어린 초등학생 눈에도 간식인 순대처럼 파는 모습은 호기심을 자극했다.
지금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먹었던 고래고기는 순댓집의 간 부위 같은 퍽퍽한 식감이었고 맛있었던 느낌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같이 드셨던 어머니께서도 지금 돌이켜 보면 맛있었는데 비싸서 많이 못먹었다고 하셨다.
어렸을 적 흐릿한 기억을 안고 고래고기를 먹으러 가보기로 했다. 같이 길을 떠난 동반자도 고래고기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갖고 있어 힘이 됐다. 소고기처럼 생긴 빨간 생고기를 송이버섯과 구워 먹었다는데 평소 회와 해산물을 잘 먹지 못하는 입맛에도 고래고기는 괜찮았던 모양이다. 고래고기를 구워 먹었다는 점이 다소 의아했지만 어찌됐든 부푼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설 연휴를 앞둔 8일 주중 점심이라 그런지 식당 안에는 손님이 없었고, 고래고기를 포장하려는 중년 부부만 대기 중이었다. 식당 안에는 유명인의 사인과 포경 산업이 활발했던 당시의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메뉴판을 유심히 보다가 식당 사장님 같은 분께서 육회까지 먹으려면 모듬이 낫다고 해서 수육과 육회, 살코기가 같이 나오는 8만원짜리 모듬 소(小)를 시켰다.
고래고기 부위는 일반적으로 48가지로 나뉜다는데 고래고기 식당서 맛볼 수 있는 부위는 대략 12가지라고 한다. 살코기뿐 아니라 껍질·혓바닥·잇몸·내장·목살·꼬리·뱃살·허파·지느러미 등 거의 모든 부위를 먹을 수 있다.
제일 먼저 맛본 부위는 고래의 꼬리지느러미인 ‘오베기’였다. 장생포 등 울산만 인근 주민들은 일찍부터 결혼식 잔칫상에 빠지지 않고 내놓는 귀한 음식인데 보통 6개월 이상 소금에 절인다.식감은 차돌박이처럼 꼬들꼬들했고 기름기는 매우 적었으며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났다.
생고기를 뭉티기처럼 썬 ‘막찍개’는 기름고추장에 찍어 먹으니 소고기의 맛과 유사했다. 다만 고래 수급이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소고기보다 신선도가 떨어질 것 같고 굳이 생고기를 먹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생고기를 채 썰어 배와 양념에 무친 육회는 소고기 육회와 흡사해 고래고기가 처음인 사람들이 먹을만했다.
수육은 까만 띠가 보이는 고래 등 부위인 등살(바가지)와 뱃살이 있었고 내장으로 추정되는 부위도 있었다.
통상 가장 맛있다고 여겨지는 부위인 고래 턱밑살을 우네라고 하는데 이 식당에서는 뱃살을 우네라고 설명해주셔서 통칭하는 듯 했다. 우네는 질 좋은 참치를 씹는듯한 질감과 감칠맛이 난다고 했는데 뱃살 또한 기름진 맛이 괜찮았다.
다만 내장 부위는 음식 냄새에 크게 민감하지 않은 나로서도 호감이 들지는 않았다.
양념장은 각 부위와 어울릴 수 있게 소금, 된장, 멸치젓, 초장, 고추냉이, 기름고추장 등 다양했다. 이 식당의 배추김치와 부추김치 내공이 상당했는데 고래고기와 함께 먹으면 좀 더 개운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안타까운 점은 이날 운전 때문에 소주 한잔을 곁들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같이 먹던 동반자는 절반 정도 남았을 때부터 고래고기 접시에 손을 대지 않고 소주만 입에 가져댔다. 고래고기의 느끼함과 특유의 향에 익숙해지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참고로 고래고기의 살코기에는 고단백질과 철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으며 중성지방을 감소시키고 혈관 건강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는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하다. 남성의 스태미너에 좋다고 알려진 이유도 이같은 영향이 컸을 것이다. 이밖에도 칼슘·칼륨 등 미네랄과 비타민 A, B1, B2 등 비타민도 함유하고 있다.
반구천 암각화는 높이 약 4m, 너비 약 10m인 ‘ㄱ’자 모양으로 꺾인 절벽 암반에 고래, 고래잡이 모습, 거북 등 300여 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신석기 시대부터 신라 시대에 이르기까지 약 6000년 동안 지속된 한반도 동남부 연안 지역 사람들의 포경유적이자 해양어로문화가 집약된 유산으로 평가된다.
지난달 문화재청은 ‘반구천의 암각화’를 202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위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신청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국내 포경산업은 198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활발했다. 그중 장생포는 한반도 최대의 포경기지로 손꼽혔다. 그러나 장생포의 포경업은 1986년부터 사양길을 걷기 시작했다. 우리나라가 1978년 가입한 국제포경위원회(IWC)가 1985년 상업적 목적의 포경을 중단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고래고기 맛을 잇지 못 한 사람들이 꾸준히 장생포를 찾으면서 고래고기 전문점은 명맥을 이어갔다. 이후 2008년 고래문화특구가 되었고, 2015년에는 한국관광공사가 ‘장생포 고래고기 거리’를 음식테마거리로 지정했다.
그나마 2021년 전까지만 해도 혼획(조업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어획된 것), 좌초(고래류가 해안가로 떠밀려 올라온 것), 표류(고래류가 죽어서 해상에 떠다니는 것)한 죽은 고래를 ‘고래류 처리확인서’가 발급된 경우 식용 목적으로 판매할 수 있었다.
결국 장생포 고래 고깃집들은 하나둘 사라지며 지금은 다섯손가락 안으로 줄어들고 말았다.
작년 지역신문에서 장생포 고래고기 식당이 6곳 정도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는 기사를 접하고 고래 고깃집 관계자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요즘 고래고기 파는 집이 많이 없어진다던데 몇 곳이나 영업하고 있나요?
“고래고기만 파는 곳은 5곳 정도 되는 거 같네요. 고래가 없기도 하고 워낙 비싸져서...”
A호 선장은 “2주 전에 투망한 그물을 회수하던 중 고래가 그물에 감겨 죽어 있는 것을 보고 신고했다”고 전했다.
이 밍크고래는 후포 수협을 통해 3800만원에 판매되어 ‘바다의 로또’가 되었고 전국 고래고기 식당에 유통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식당에서 주로 쓰이는 고래는 밍크고래인데, 이는 국제포경위원회가 정한 보호 대상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해양보호생물로 지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밍크고래는 대형 고래류인 수염고래 중 체구가 가장 작으며 가슴지느러미에 하얀색 띠가 있다. 고기를 구하지 못한 다른 지역에서는 돌고래나 상괭이를 고래고기라고 파는 경우도 있으나 맛을 비교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해양생태계와 해양생물 다양성 보존을 위해 해양생태계법을 시행하고 있고 해양수산부가 해양생태계법에 따라 해양보호생물을 지정한다. 해양보호생물로 지정된 종은 해양생태계법에 따라 학술연구나 보호, 증식, 복원 등의 목적으로 해양수산부 장관의 허가를 받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포획, 채취 등의 행위를 할 수 없다.
국내 해양보호생물 91종 중 고래류는 총 15종이다. 낫돌고래, 참돌고래, 큰돌고래, 흑범고래, 범고래, 상괭이, 남방큰돌고래, 향고래, 대왕고래, 참고래, 보리고래, 브라이드고래, 귀신고래, 북방긴수염고래, 혹등고래가 포함된다. 따라서 이들 고래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잡을 수 없다.
최근 개고기 식용 금지 법안이 제정되면서 2년 후면 개고기가 우리 식탁에서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고래고기는 이미 찾는 사람이 줄고 공급이 어려워지면서 자연 도태 과정을 걷고 있다. 향후 20년 뒤에는 역사책 속에서나 고래고기를 인류가 먹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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