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정신력, 개인기보다 팀워크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6일(현지시간) 카타르 알라이얀 아흐마드 빈 알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4강전 한국과 요르단 경기가 끝난 뒤 손흥민이 고개를 숙인 채 경기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국제 스포츠 경기에서 한국 국가대표팀에 대한 평가는 유독 ‘정신력’이 키워드인 경우가 많았다. 스타플레이어가 거의 없던 시절에 강팀을 상대로 승리한 경우, ‘투혼’에서 원인을 찾곤 해서다. 그러나 객관적 실력을 제외하고, 스포츠 선수들이 경기를 잘 풀어가는 데 가장 중시하는 요소는 따로 있다.

□ 2017년 한국일보는 프로·아마 선수 10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경기력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팀워크(32%)’를 제일 많이 꼽았다. 다음이 ‘체력(23%)’, ‘정신력(21%)’이었다. 스포츠 선수 65%가 ‘정신력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어봤다는데, 그런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을 묻는 질문에 57%의 선수들은 ‘최선을 다하지 않는 선수가 어디 있나 싶어 속상하다’고 답했다. 주로 단체종목 선수들을 상대로 한 설문이었지만, 개인종목이라 해도 코치진과의 협업을 감안하면 팀워크가 중요하지 않은 경기는 없을 것이다.

□ 얼마 전 4강전 패배로 아시안컵을 마무리한 한국 축구대표팀은 ‘역대 최강전력’으로 꼽히는 우승 후보였다.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 손흥민(32·토트넘 홋스퍼)을 비롯해 해외파 선수들이 즐비해 이제 ‘정신력’보다 ‘개인기’가 강조되는 팀이 되었다. 하지만 4강 전날 이강인(23·파리 생제르맹)이 주장 손흥민을 존중하지 않아 싸움이 벌어져 팀워크가 붕괴됐고, 이런 상황에선 실력도 전혀 힘을 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 조직에서 일하는 모든 직업에서 팀워크는 몰입감과 보람의 원천이다. 미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테레사 에머빌 교수 등의 저서인 ‘전진의 법칙’에 따르면, 자신이 참여하는 프로젝트와 동료·상사·회사를 높이 평가할 때 창의성과 생산성이 높아진다. 토트넘의 동료 제임스 매디슨은 주장 손흥민에 대해 “대단한 선수이기 때문에 그의 말을 모두 귀담아듣는다”며 “그의 인성과 실력의 아우라가 팀에 중요한 순간에 작동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주장을 오히려 한국 대표팀에서 존중하지 않았다는 게 국민들에게 쓰라림을 주고 있다.

이진희 논설위원 river@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