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 아일랜드’ 부활 선언한 日…24일 준공식 앞둔 TSMC 구마모토 1공장 [르포]

이승훈 특파원(thoth@mk.co.kr) 2024. 2. 1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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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모토현 TSMC 공장 르포]
24시간 공사 통해 2년 만에 완공
40나노 주류 일본에 첫 선단기술
일본 40% 이상 보조금 주며 지원
구마모토에만 4.3조엔 경제효과
80년대 이후 몰락한 일본 반도체
TSMC 가동 계기로 재건 몸부림
오는 24일 준공식이 열리는 대만 TSMC의 일본 법인인 JASM의 구마모토현 공장 모습 [구마모토 이승훈 특파원]
일본 남부 규슈섬의 주요 도시인 구마모토. 도쿄에서 비행기로 2시간 남짓 걸리는 이곳은 귀여운 곰 캐릭터인 ‘구마몬’과 구마모토성 등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곳이다.

지난 17일 구마모토 공항에서 차를 빌려 북쪽 기쿠요마치(菊陽町) 산업단지 방향으로 15분 정도 달리자 평화로운 농촌 풍경 사이에 육중한 흰색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도쿄돔 4.5개분에 해당하는 약 21만㎡의 면적에 들어선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위탁생산) 업체인 TSMC 구마모토 1공장의 모습이다.

2022년 4월 공사가 시작된 이곳은 2년도 채 안 된 오는 24일 준공식을 갖는다. 7000여명의 인력이 24시간 상주하며 4~5년 걸릴 공사를 절반으로 앞당긴 것이다. 준공식을 앞두고 이 곳은 준비작업이 한창이었다. 오피스빌딩은 창문 세척이 진행되고 있었고, 공장 주변은 근로자들이 꽃과 나무를 다듬는 조경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준공식에는 TSMC 쪽에서 모리스 창 창업자, 일본에서는 가코 공주와 기시다 후미오 총리 등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왕족이 해외기업의 준공식에 참석하는 것은 드문 일이라, TSMC에 거는 일본의 기대가 얼마나 큰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오는 24일 준공식이 열리는 대만 TSMC의 일본 법인인 JASM의 구마모토현 공장 모습. 왼쪽 흰색 건물이 생산시설이 있는 팹동, 오른쪽이 오피스동이다. [구마모토 이승훈 특파원]
공사 때부터 미디어, 특히 한국 언론의 취재에 대해 예민한 반응을 보였던 TSMC는 공식 인터뷰 거절은 물론이고 주변 취재에도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준공식에서도 미디어는 일본 뿐 아니라 대만 언론도 극소수만 초청된 것으로 알려졌다.

TSMC는 ‘JASM(Japan Advanced Semiconductor Manufacturing)’이라는 별도의 법인을 만들어 일본 내 반도체 사업을 시작했다. JASM은 TSMC가 86.5%의 지분을 갖고 일본 기업인 소니와 덴소, 도요타가 나머지 지분을 갖는 구조다.

생산라인이 들어선 팹동과 지상 8층 규모의 오피스동 등 4개 건물로 이뤄진 JASM 공장은 이미 가동이 시작된 상태였다. 화학물질을 처리하는 곳에서는 연기가 뿜여저 나오고, 가스를 실은 에어리퀴드의 탱크 차량이 쉴 새 없이 공장을 오가는 모습도 포착됐다.

오피스동 1층에 있는 400여명 규모의 식당에도 직원이 분주하게 오가며 식사를 하는 장면도 보였다. JASM은 당분간 시험생산을 진행한 뒤 올해 4분기에 본격적인 상업생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오는 24일 준공식이 열리는 대만 TSMC의 일본 법인인 JASM의 구마모토현 공장 모습. 왼쪽 흰색 건물이 생산시설이 있는 팹동, 오른쪽이 오피스동이다. [구마모토 이승훈 특파원]
공장 가동을 위해 이미 1400여명의 기술자가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30%가량인 400여명이 대만 TSMC 본사에서 직접 파견된 근로자들로 채워졌다. 오는 4월 지역에서 뽑은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숫자는 1700여명으로 늘어난다.

공장 건설에는 1조1000억엔(약 9조7500억원)의 자금이 투입됐다. 이 가운데 40%가 넘는 4760억엔은 일본 정부가 보조금 형태로 지원했다. 올해 말 착공해 2027년말 가동을 목표로 하는 2공장은 2조엔가량의 투자가 필요한데, 이 또한 일본 정부가 9000억엔의 보조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반도체를 작게 만드는 ‘초미세 공정’은 반도체 기술력의 상징으로 불린다. 현재 삼성전자와 TSMC는 모두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3 수준인 3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라는 초미세공정에서 경쟁하고 있다.

나노는 반도체 회로 선폭을 의미하는 단위다. 선폭이 좁을수록 소비전력이 감소하고 처리 속도가 빨라져 우수한 성능을 낸다. 현재 일본의 기술 수준은 르네사스가 보유한 40나노에 멈춰 서 있다. 이는 TSMC가 16년 전인 2008년에 도입했던 공정이다.

TSMC의 구마모토현 공장은 12나노 공정의 제품까지 생산하게 된다. 일본에서 가장 앞선 반도체 기술이 선보이게 된다는 의미다.

일본 구마모토현에 지어진 대만 TSMC 일본 법인인 JASM 공장에서 근로자가 퇴근을 하고 있다. [구마모토 이승훈 특파원]
TSMC 공장 준공에 맞춰 구마모토현은 각종 인프라 정비에도 나서고 있다. TSMC 공장이 입주한 공업단지에는 소니 이미지센서 공장과 도쿄일렉트론(TEL) 반도체 장비 공장 등 관련 업체만 30여곳이 모여 있다.

상주 근로자만 1만2000여 명에 달하기 때문에 왕복 2차선 수준인 인근 도로를 4차선 또는 6차선으로 확장하고, 인근 JR철도를 구마모토공항과 연결하는 교통망 계획을 이미 수립한 상태다. 또 대만의 중화항공과 스타럭스항공은 대만-구마모토를 매일 오가는 정기편 운항도 시작했다.

인근 대학은 반도체 인재 육성에도 적극 나섰다. 매년 1000명가량의 반도체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지역 인재 양성이 중요해진 것이다. 대표적으로 구마모토대학은 지난해 4월 ‘반도체·디지털 연구 교육기구’를 만들었으며 올해부터는 반도체 엔지니어를 육성하는 별도의 학과도 운영한다.

구마모토현 지자체의 반도체산업 지원실에서 일하는 사카모토 코헤이(坂本恒平) 담당은 “최근 네덜란드 ASML에서 TSMC 인근 공장 용지를 찾는다며 상담하고 갔다”며 “TSMC 효과로 기존 기업뿐 아니라 신규 기업의 투자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TSMC 신공장과 도로 하나를 두고 마주하고 있는 소니는 2025년 가동을 목표로 인근에 수천억엔을 투자해 새로운 이미지 센서 공장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교세라 또한 2028년까지 620억엔을 투자해 반도체 관련 부품을 생산하는 신공장을 짓는다. 교세라의 일본 내 반도체 투자는 약 20년 만이다.

오는 24일 준공식이 열리는 대만 TSMC의 일본 법인인 JASM의 구마모토현 공장 모습. 왼쪽 유리 건물이 오피스동, 오른쪽 흰색 건물이 생산시설이 있는 팹동이다. [구마모토 이승훈 특파원]
1980년대 일본이 반도체 산업에서 주도권을 가졌을 때만 해도 많은 일본 반도체 기업이 규슈에 공장을 지었다. 이 때문에 규슈는 미국의 실리콘밸리에 빗대 ‘실리콘 아일랜드’로 불릴 정도였다.

1990년 세계 10대 반도체 회사 중 일본 기업은 6개에 달했다. NEC와 도시바, 히타치제작소는 각각 1·2·3위를 차지할 정도였다. 하지만 2000년에는 10위 안의 일본 업체가 3개로 줄었고, 2020년에는 단 하나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규슈의 반도체 공장도 2000년대부터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하면서 ‘실리콘 아일랜드’의 위상을 규슈가 아닌 대만이 가져가게 됐다. 일본으로서는 TSMC를 통해 부활을 꾀하는 셈이다.

TSMC가 일으키는 경제파급 효과도 만만치 않다. 규슈 지역 최대 금융기관인 규슈파이낸셜그룹은 TSMC 진출에 따른 구마모토현의 경제파급 효과를 10년간 약 4조3000억엔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공장 건설과 물류 정비 등 직접적인 투자 외에도 인구 증가에 따른 주택·상업시설 건설, 개인소비 증가 등 간접적인 효과도 포함한 금액이다.

사카모토 담당은 “TSMC의 고정 재산세가 들어오는 2025년부터 지자체 재정이 플러스를 기록하게 된다”며 “주민들에게 어떤 복지를 더 해줘야 하는지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마모토 시내와 TSMC 공장을 오가는 셔틀버스. 구마모토의 상징인 곰 캐릭터 ‘구마몬’으로 꾸며져 있다. [구마모토 이승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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