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숨 돌린 기업들…협력사 탄소배출량 공시 3년 유예

선한결,김익환 2024. 2. 18.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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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공시 가이드라인 윤곽
최초 3년간은 '스코프3' 면제
2026년 이후부터 시행...시점 놓고는 여전히 이견 커
챗GPT로 생성한 이미지


2026년 이후부터 도입이 예정된 ESG(환경·사회책임·지배구조) 공시를 놓고 기업들이 ’최대 난관‘으로 전망한 스코프3 온실가스 배출량 공시가 제도 도입 후 3년간은 면제될 전망이다. 스코프3는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 범위 중 가장 넓은 기준이다. 기업의 제품 생산 과정을 비롯해 제품 사용·폐기 단계, 협력업체와 유통망 등을 아울러 온실가스 직간접 배출량을 계산한다. 

 ESG 공시, 최초 3년간은 '스코프3' 면제

18일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ESG 공시 제도 초안을 이르면 다음달 중 발표할 예정이다. 

ESG 공시는 그간 기업이 각기 다른 기준에 따라 자율적으로 공개했던 ESG 관련 사안을 공시 기준에 맞춰 비교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목표다. 자산 2조원 이상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상장사 240여 곳의 거래소 공시로 시작해 차차 전체 상장사에 의무화한다. 금융당국은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의 ESG 공시 기준을 바탕으로 재계·회계업계·학계 등과 함께 국내 공시 기준을 만들고 있다.

금융당국은 제도 도입 이후 최초 3년간은 협력사까지 포함한 가치사슬 내(스코프3) 온실가스 배출량 공시를 면제할 예정이다. 도입 첫 해에만 공시 요건에서 빼주는 국제 기준안에 비해 일부 완화됐다. 당국은 해외 생산기지 등을 두고 있는 제조업 위주 국내 산업 특성에 맞게 준비 기간이 더 필요하다고 본 것으로 풀이된다. 

스코프3는 국내외 생산기지와 제품 유통망, 협력업체까지 아우르는 범위다. 원칙상 기업이 추정치를 공시할 수 있지만, 추정치의 근거가 될 기초 데이터 측정·검증만 해도 1년 이상 걸릴 것이라는 게 기업들의 중론이다. 온실가스 배출량의 측정 기준은 국제 표준인 GHG 프로토콜을 원칙으로 삼을 전망이다.  

 비주요 종속기업도 공시 면제 전망

당국 안팎에 따르면 국내 ESG 공시는 기후·생물다양성·인권 등 ESG 공시 분야 중 기후 공시만 우선 적용할 예정이다. 그외 지속 가능성 관련 사안을 공시할 지 여부는 기업이 자율 선택케하기로 했다.

기후 의무 공시는 기후 요인이 기업의 재무·실적 전망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공시하는 게 골자다. 기후 변화에 따라 특정 지역에서 제품 수요가 늘어날 전망이거나, 친환경 사업을 늘리는 등 사업 모형을 일부 변경할 예정이라면 이를 알리는 식이다. 

당국은 기업의 재무상태·성과 등이 기후 요인와 별 관계가 없는 경우엔 기후 영향 예상에 대한 공시를 생략할 수 있게 할 방침이다. 당초엔 공시를 생략하기로 한 근거까지는 기업이 기술하도록 한다는 방침이었으나 생략 사실만 명시하면 되도록 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ESG 공시 기준은 재무제표 보고기업과 동일하게 규정하기로 했다.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하는 지배기업의 경우엔 자사와 종속기업에 대해 공시를 해야하는 식이다. 금융당국은 종속기업마다 중요도를 따져 공시 포함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도록 하기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엔 기업이 자발적으로 보고 범위를 선택한다. 대부분 해외법인 등을 제외하고 모기업 중심으로 기재하고 있다. 

내부탄소가격 등도 앞으로는 공시사항

당국은 기업이 ESG 성과 등 경영진 성과지표를 포함한 경영진 보상정책을 ESG 공시 서식에 넣을 전망이다. 경영진이 ESG에 중점을 두고 경영활동을 하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기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에 대해 자체적으로 가격을 책정한 금액인 '내부탄소가격'도 공시하게 할 예정이다. 

이를 두고 기업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일단 임원 성과 지표를 공시에 구체적으로 나열하는 것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는 입장이다. 기존 국내 기업들은 사업보고서에 임원 보수한도를 공시하고 있다. 특정 성과 지표를 연동했다는 내용 등은 공개하지 않는 게 대부분이다. 내부탄소가격 공시도 쉽지 않을 것이란 게 중론이다. 미래 탄소 가격이 어떻게 변할지까지 예상치를 반영해 가격을 책정해야 해서다. 

ESG 공시는 거래소 공시로 먼저 도입된 이후 차차 법정공시로 확대될 전망이다. 기업이 ESG 관련 허위 공시를 할 경우엔 자본시장법 위반을 근거로 제재 조치가 부과될 수 있다. 당국은 도입 초기엔 제도 안착을 위해 제재 수준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지만, 기업들은 문제 소지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보다 명확하고 상세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금융위는 일단 데이터 인프라 구축 등을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도입에 앞서 세부 가이드라인과 인센티브 제도를 내놓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점이 관건…재계는 '2029년 이후로'

남은 최대 관건은 ESG 공시 도입 시점이다. 당국은 당초 2025년 자산 2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를 시작으로 ESG 공시를 단계적으로 의무화한다는 방침이었으나 작년 말 이를 2026년 이후로 미뤘다. 각국별 ESG 공시기준의 표준 격인 ISSB의 공시기준이 작년 6월에야 나온 영향이다. 

ESG 공시 도입 시점을 놓고는 이견이 뚜렷하다. 재계는 대체로 2029년께를 원하는 분위기다. 유럽연합(EU)이 EU에 진출한 역외국가 기업에 대해 ESG 공시를 의무화하는 해다. 이전까지는 국내 별도 기준을 적용하지 않고 ESG 관련 데이터 취합·검증, 대응 체계 마련 등을 위해 시간을 달라는 의미다. 

반면 금융투자업계와 회계법인, 법조계 등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입장이다. ESG 투자를 늘리고 있는 자산운용사 등은 ESG 공시를 투자 지표로 활용할 수 있도록 조속한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회계법인과 법조계는 신속한 ESG 공시 의무화와 함께 ESG 공시 외부 인증제 도입도 주장한다. 이들 업계엔 ESG 공시 감사·인증 사업이 새로운 먹거리가 될 수 있어서다. 

정부는 유관 업계와 관계부처 협의 등을 거쳐 구체적인 ESG 공시 도입 시기를 추후 확정할 예정이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지난 14일 “기업들의 준비 상황을 고려해 ESG 공시를 단계적으로 도입할 것”이라며 “해외 규제와 글로벌 자본시장 영향을 받는 대형 상장사부터 도입하고, 이후 국내 시장 여건 등을 감안해 차차 대상 기업을 늘릴 방침”이라고 말했다. 

선한결/김익환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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