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과 신하는 물론 시청자도 조정석의 떨리는 목소리에 매혹된 건('세작')
[엔터미디어=정덕현] "나는 죽는 날까지 임금이고 내게 맡겨진 이 중요한 소임을 내려놓을 수가 없다. 하여 너에게 또다시 고통을 주게 될 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 곁에 있겠느냐?" 강희수(신세경)에게 이렇게 말하는 이인(조정석)의 목소리에는 미세한 떨림이 담겨있다. 그 떨림에는 임금과 필부 사이에서 혹여나 사랑하는 연인에게 고통을 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늘 곁에 두고픈 이인의 복잡한 심경이 느껴진다. 또 그건 명령이 아니라 의향을 묻는 것이기에 어떤 답변이 돌아올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과 두려움도 겹쳐 있다.
tvN 토일드라마 <세작, 매혹된 자들>에서 이인이라는 인물은 이처럼 그 심리가 복잡하다. 임금과 필부 사이를 오가며, 임금으로서 어쩔 수 없이 해야할 일과 필부로서 어쩔 수 없이 움직이는 마음 사이에서 끝없이 흔들리는 모습이 이 인물에게서 느껴진다. '이인'이라는 이름이 마치 두 사람을 뜻하는 '2인' 같은 뉘앙스로 다가올 정도다.
'세작'과 '매혹'이라는 제목에 담긴 단어들이 풍기는 것처럼 상대의 마음을 얻거나 상대에게 마음이 빼앗기는 그 드라마틱한 순간들이 사실상 이 드라마가 그리려는 지점들이다.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해 마음을 얻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 또한 마음이 빼앗길 정도로 진심을 다해야 하며, 그러다 보니 본래 목적이었던 상대를 무너뜨리는 마음이 자신 또한 무너뜨릴 정도로 흔들리는 그 과정들을 이 사극은 담고 있다.
정치극과 멜로가 기막히게 교차되는 건 그것이 둘 다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 일'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서다. 복수를 위해 이인에게 접근했던 강희수는 그의 마음을 얻어 연인이 되지만, 이인이 진심을 다해 건네는 마음에 흔들린다. 예친왕과 정략결혼을 위해 장령공주를 바꿔치기 한 사실이 드러나 불같은 화를 낼 줄 알았던 이인이 "너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에 화가 났다며 "죄없는 너에게 고통을 준 것도 모자라 또 다시 같은 일을 겪게 하다니. 내 자신에게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강희수의 마음은 속절없이 흔들린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이 나라의 임금이 아니라 한 여인을 연모하는 평벙함 사내로 네 앞에 있다. 나는 너에게 고통을 주었고 여전히 그 고통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나는 네가 그 고통 때문에 내게 돌아온 것을 알아. 언젠가는 너에게 지난 모든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 놓기를 바라지만 그 또한 나의 변명일 뿐 너의 용서를 바랄 수 없다는 것도 잘 안다." 이인이 건네는 말들은 잔잔한 떨림으로 강희수의 가슴에 닿는다. 거기에는 강희수를 연모하는 마음이 절절히 묻어나기 때문이다.
결국 이인의 진심어린 말은 애초 복수를 위해 접근했던 강희수의 마음을 빼앗는다. 그는 자신도 믿기지 않지만 주상이 자신도 모르는 다른 '사정'이 있을 지도 모른다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신하의 마음을 빼앗는 것 역시 연인의 마음을 빼앗는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강희수를 구해주고 또 도움을 줬던 초암 김제남(이윤희)을 대사헌에 임명하는 자리에서 이인은 진심을 다해 이렇게 말한다. "과인은 앞으로 경의 눈으로 보고 경의 귀로 듣고 경이 올리는 간언은 한 마디도 흘려듣지 않고 마음에 새길 것이오."
김제남은 강희수를 만나 자신이 직접 본 이인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 생각보단 더 단단하신 분 같고 자네 생각보단 유하신 분 같네. 영부사 박종환에게 휘둘리는 꼭두각시 임금이라 생각했는데 그 정도는 아닐 것도 같고, 유혹에 빠져 어린 조카의 용상을 빼앗은 폭군이라 치부하기엔 눈빛이 지나치게 맑은 것도 같고. 어쨌든 죽든 살든 전하의 뜻을 한번은 제대로 확인하고 싶어졌네." 정치도 사랑도 결국은 마음을 얻는 일이라는 걸 실감하게 해주는 에피소드들이다.
마음을 움직이는 한 마디가 이토록 중요한 이 드라마에서 조정석의 목소리 연기가 도드라져 보이는 건 아마도 그래서일 게다. 조정석은 편안한 말투에서는 목소리에 감정을 얹지 않는 것으로 유쾌하고 가벼운 분위기를 만들어내지만, 자못 진지해지고 때론 격앙된 감정을 담을 때는 미세한 떨림을 넣어 그 무게감을 만들어낸다. 특히 저것이 분노인지 아니면 안타까운 사랑의 감정인지가 뒤섞이는 이 드라마에서 조정석의 미세한 떨림이 담긴 목소리는 특히 효과적이다. 그 많은 뒤섞인 감정들이 그 떨리는 목소리에서 동시에 느껴지기 때문이다.
'몽우'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비오는 날 만나기로 했던 이인과 강희수. 그래서 비오는 날 영취정에서 강희수를 기다리는 이인은 저편에서 비를 맞으며 다가오는 강희수를 향해 빗속으로 기꺼이 들어간다. "소신 어떠한 고통이든 감수하겠습니다. 전하의 곁에 있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이인이 강희수를 꼭 껴안는 장면에서 폭우와 동반된 벼락과 번개가 치고 끝내 복사나무꽃에 불이 붙는 장면들이 인상 깊게 느껴지는 건 그것이 이들 두 사람의 앞날을 예고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동시에 이들 사이에 만들어진 감정의 파토스를 보여주는 것만 같아서다. 그건 마치 애써 감정을 억눌러 미세하게 떨려오던 그 목소리가 입밖으로 터져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그 목소리에 연인도 신하도 또 시청자들도 매혹되는 중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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