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많니, 그돈에 벤츠·BMW 사다니”…‘2천만원대’ 독일車, 건방진 도발 [세상만車]
감자를 닮은 ‘명품 국민차’
‘대중명차 브랜드’로 인기
폭스바겐 MBTI는 ‘ESFP’
지난해 9월 유럽을 대표하는 모터쇼 ‘독일 IAA 모빌리티쇼 2023’ 메인 전시장을 취재하면서 모터쇼의 시대는 끝났다고 여겼습니다.
전시장인 뮌헨 메세는 한산했습니다.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폭스바겐, 포르쉐 등 글로벌 자동차시장을 주름잡는 독일차 브랜드들의 고향이라는 게 무색했습니다.
모터쇼 하면 떠오르는 화려한 볼거리와 시끌벅적함은 적었고, 가족단위 관람객들의 모습도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모터쇼의 주역인 신차나 콘셉트카도 드문드문 놓여있는 등 볼거리도 별로 없었죠. 노골적으로 바이어만 상대하겠다며 관람객을 무시하는 브랜드들도 있었습니다.
자동차가 전자제품화되면서 CES(국제전자제품 박람회)를 중시하는 자동차 회사들이 많아진 결과 이제는 모터쇼의 시대는 저물었다고 판단했습니다.
전시 행사명에 모터쇼 대신 모빌리티를 넣은 것도 같은 이유라고 여겨졌습니다.
도심 전체가 전시장이었죠. 뮌헨 메세에서 사라졌던 볼거리들이 이곳에 모였습니다.
누구나 자유롭게 거리 곳곳에 마련된 참가업체들의 부스를 찾아 신차를 직접 만져보고 상담하고 이벤트를 즐겼습니다.
폐쇄된 공간을 벗어나 시민들이나 관광객 모두 풍성하게 마련된 자동차 문화를 마음껏 만끽했습니다. 무엇보다 ‘공짜’였습니다.
가장 눈길을 사로잡은 곳은 오데온 광장에 마련된 폭스바겐 전시장이었습니다. 다른 곳들보다 가족 단위 관람객들이 많았습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나 노인들도 편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부스를 꾸몄습니다. 수화 통역과 시각 장애인 투어도 마련됐죠.
사람 냄새가 물씬 풍겼습니다. ‘국민차’를 뜻하는 폭스바겐 브랜드명이 다시한번 떠오르는 순간이었습니다. 유럽에서 ‘모터쇼의 미래’를 폭스바겐이 앞장서 열어가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폭스바겐은 대서양과 태평양을 건너 한국에서도 인기 많은 브랜드입니다.
일본차에 이어 ‘수입차 대중화’ 주역이 됐습니다. 국민차 브랜드명에 걸맞은 실력을 뽐낸 셈입니다.
벤츠, BMW, 아우디, 포르쉐 등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가 국내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도 따져보면 폭스바겐이 길을 터줬기 때문이죠.
폭스바겐이 비싸고 큰 차가 대접받는 한국에서 수입차 대중화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폭스바겐의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MBTI에 해답이 담겨 있습니다.
“이런 게 자동차지”라는 차부심(자동차+자부심)을 나타내면서 자동차 본질에 집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폭스바겐은 자동차 본질과 기본에 충실하기 위해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독일 기능주의에 바탕을 둔 효율성(Efficiency)을 중시하죠.
효율성은 투입한 시간, 에너지, 재료, 비용 등에 비해 산출된 효과가 얼마나 되는지 측정한 능력입니다. “효율이 좋다”는 낭비 없이 핵심적인 일을 성공적으로 잘한다는 의미죠.
제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해 재원과 자원이 부족했던 독일이 빠른 시일 내에 산업·경제대국으로 부활하는 데도 효율과 능률이 한몫했을 겁니다.
폭스바겐도 화려함보다는 기능성, 단순함, 실용성으로 효율성을 강조한 폭스바겐 1형(비틀)을 앞세워 부활합니다.
비틀은 2003년 7월 멕시코 푸에블라 공장에서 생산이 종료될 때까지 2000만대 이상 팔리며 폭스바겐 부흥의 1등 공신이 됩니다.
폭스바겐은 티 내지 않는 디자인, 군더더기 없는 성능으로 기능주의에 충실하면서 효율성도 강화한 골프를 선보이며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로 성장했습니다.
더 고급스러운 벤츠, BMW, 아우디, 포르쉐 등이 있는데 ‘의외’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폭스바겐그룹에 속한 아우디, 포르쉐, 람보르기니, 벤틀리 등이 프리미엄·럭셔리카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는 것도 ‘성공하면 타는 차’라는 평가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듭니다.
미국과 한국에서 폭스바겐은 성공 이미지와 거리가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다릅니다. 유럽에는 오펠, 스코다, 피아트, 세아트, 다치아 등 폭스바겐보다 싼 차를 파는 자동차 회사들이 많습니다.
또 벤츠, BMW, 아우디가 수입차 시장을 주도하는 한국과 달리 프리미엄 브랜드의 판매량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입니다.
유럽 소비자들은 비싼 차 가격과 세금, 좁은 도로, 부족한 주차 공간 등으로 크고 폼나는 프리미엄 차량보다는 실용적인 차량을 선호하는 경향도 지녔습니다.
이에 싼 차와 비싼 차 사이에 있는 폭스바겐 차를 ‘현실적인 드림카’로 여깁니다. 폭스바겐 차를 타면 경제적이나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폭스바겐이 매스티지(대중명품) 브랜드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는 셈입니다.
히틀러의 요구 조건은 어른 2명과 어린이 3명이 탈 수 있고 노동자도 살 수 있는 저렴한 차였습니다. 요즘 말로는 가성비(가격대비성능)가 뛰어난 ‘아빠차’를 만들라는 얘기였죠.
국민차를 뜻하는 폭스바겐 브랜드명에서도 패밀리카 성향을 알 수 있습니다. ‘Volkswagen’은 ‘Volk(국민, 민족)’와 ‘Wagen(자동차)’의 합성어입니다.
국민차는 남자만을 위한 차도, 1~2인만 탈 수 있는 차도 아닙니다. 가족용으로 쓸 수 있어야 국민차가 됩니다.
가격도 적당해야 합니다. 포람페(포르쉐, 람보르기니, 페라리)와 같은 슈퍼카를 보고 ‘로망’이라고 부르지만 국민차라고 하지는 않죠.
자동차 기술 발전에다 좀 더 안락하고 편안한 패밀리카 수요가 많아지면서 국민차 역할을 담당하던 폭스바겐 차량도 바뀌었습니다.
예전에는 비틀과 골프로도 충분했지만 현재는 파사트, 티구안이 폭스바겐에서 아빠차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국민차 타이틀이 대우 티코에서 현대차 아반떼와 쏘나타로, 다시 현대차 그랜저와 기아 쏘렌토 등으로 넘어간 것과 마찬가지인 셈입니다.
파사트와 티구안을 구입하는 국내 소비자들의 연령대도 30~40대가 많다고 합니다.
폭스바겐코리아 조사에 따르면 오래 타도 질리지 않는 디자인, 기본기가 탄탄한 성능, 티내지 않지만 티가 나는 매력 등에 이끌려 폭스바겐 차량을 구입했다고 합니다.
소시지, 학센, 슈니첼 등 독일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있지만 감자 없이는 ‘팥소 없는 찐빵’으로 전락합니다.
감자는 독일인들을 심각한 굶주림에서 구한 구황작물입니다. 지금도 ‘감자대왕’이라 존경받는 프로이센(독일 전신)의 계몽군주인 프리드리히 2세 덕분이죠.
감자는 토질이 나쁜 독일에서 잘 자랍니다. 단위 면적당 생산량도 많습니다. 가성비가 매우 뛰어납니다.
국민차인 폭스바겐 차량도 ‘국민 식재료’ 감자를 닮아 가성비가 우수합니다.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도)가 우수한 벤츠·BMW·아우디도 있지만 독일인들이 가장 사랑하고 자부심을 느끼는 브랜드는 폭스바겐입니다.
기본기가 탄탄한데다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매력을 발산하기 때문이죠. 강한 생명력으로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나는 독일 감자를 꼭 닮았습니다.
폭스바겐은 국내에서도 가격파괴를 넘어 가격혁명을 일으키며 가성비 높은 독일차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기존 모델보다 실내공간을 넓히고 편의·안전성을 향상했지만 가격은 400만~700만원 내렸습니다. 아반떼 가격과 비슷했습니다.
3000만원대 파사트는 4000만원도 저렴하다고 평가받는 수입 중형세단 시장에 충격을 줬습니다. 수입차 업계 최고 수준인 5년 15만㎞ 보증 연장 프로그램도 적용받았습니다.
소형 SUV인 티록은 독일보다 1500만원 낮게 나왔습니다. 인기 SUV인 티구안도 3000만원대까지 낮아졌죠.
폭스바겐 전기차인 ID.4도 유럽산 전기차 중 유일하게 보조금 100%를 지원받았습니다.
소비자들은 ‘국산차값 독일차’에 환호했습니다. 소비자 응원에 힘입어 폭스바겐은 5000만원 이하 수입차 시장에서는 ‘절대 강자’가 됐습니다. 현대차·기아와 벤츠·BMW의 틈새 공략에 성공한 셈입니다.
현재 폭스바겐코리아는 가성비는 물론 가심비까지 높이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했습니다.
기치도 ‘수입차 대중화’에서 ‘접근 가능한 프리미엄 수입차’로 바꿨습니다. 매스티지 브랜드로 확고히 자리잡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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