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작가들은 결국 대중이 알아본다 [김승민 큐레이터의 아트, 머니, 마켓]

2024. 2. 1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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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김승민 큐레이터는 영국 왕립예술학교 박사로 서울, 런던, 뉴욕에서 기획사를 운영하며 600명이 넘는 작가들과 24개 도시에서 전시를 기획했다. 미술 시장의 모든 면을 다루는 칼럼을 통해 예술과 문화를 견인하고 수익도 창출하는 힘에 대한 인사이더 관점을 모색한다.
어니 반스의 ‘The Sugar Shack‘. 1976 윌리엄 퍼킨스·어니반스, 가족재단

유명 미술가의 작품을 다루는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종종 듣는 질문이 있다. “작가로서 성공하려면 어떤 길을 가야 하나요?”, 혹은 “유망 작가를 어떻게 미리 알아볼 수 있나요?”라는 것들이다. 많은 분들이 일종의 공식 같은 게 있는지 여부를 알고 싶어 한다.

세계적인 미술학교를 나와, 좋은 기관의 전시에 초대받고, 좋은 화랑의 눈에 띄는 것 등 어느 정도의 성공 공식은 있다. 유망 작가들을 발굴하기 위해 좋은 작가들을 많이 배출시킨 학교의 졸업 전시에 가는 경우도 있다. 그런 학교들의 졸업 전시가 뉴욕이나 런던처럼 현대미술의 큰손들과 화랑들이 몰려 있는 중심지에 가까운 곳에서 열릴수록 더 많은 신인 발굴의 기회가 열리기는 한다.

그러나 단호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대중을 이끌고 시대를 이끄는 천재 작가는 일반적 성공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2022년 5월 뉴욕의 20세기 미술 경매에서 벌어진 일이 그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당시 22명 이상의 큰손들이 전화기를 통해서 낙찰 경쟁을 벌였다. 예상 낙찰가가 20만 달러였던 작품이 10분 동안 이어진 경쟁을 통해 76배가 상승된 1,530만 달러에 낙찰되었다. 역사를 만든 이 그림은 어니 반스(Ernie Barnes)의 ‘The Sugar Shack‘이다. 흑인들의 소울을 담은 듯한 이 그림은 어느 한 댄스홀에서 음악에 취해 여러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춤추고 있는 그림이다. 작가 이름을 몰라도 많은 이들은 이 그림이 익숙할 것이다. 마빈 게이의 1976년 "I Want You" 싱글 앨범의 표지였고, 미국 시트콤 "Good Times"의 자막에 사용됐다.

어니 반스는 1938년 노스캐롤라이나에서 태어나 미국 남부에서 자랐고, 작가가 되기 전에 미식축구 선수였다. 작가가 된 뒤에도 갤러리와 미술관 전시가 잡히지 않자 그림의 에디션을 단돈 20달러에 주문받아 우편으로 보내주는 방식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그의 생애를 다룬 한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한때 집에 들어가면 쌓여 있는 20달러 수표들 때문에 문을 열지 못했다고도 한다. 시간이 흘러 오클랜드트리뷴이 2002년 인터뷰에서 '흑인 예술계의 피카소'라고 묘사한 적도 있지만, 유명 미술관은 생전에 그를 외면했다. 2009년 세상을 떠났을 때까지도 변변한 미술관 전시 하나 없었다.

그 와중에 2022년 경매는 흩어졌던 그의 팬들을 한곳에 모았고, 최종 낙찰을 받은 금융가이자 포커 플레이어인 ‘빌 퍼킨스’뿐만 아니라, 조지 루카스 감독의 부인 ’멜로디 홉슨‘ 등 여러 유명인들이 이 작품을 소장하고 싶어 함을 보여줬다. 이제 뒤늦게 미술시장은 반스의 그림에 주목하고 있다. The Sugar Shack의 소장자인 빌 퍼킨스는 미술관 MFAH에 작품을 대여하여 더 많은 이들이 원작을 관람토록 했다. 반스에 대한 재평가는 그가 한 문화를 상징했고, 그 문화에 영향받은 컬렉터들이 작품의 가치를 높여, 그를 역사적인 작가로 올려놓은 미술적 사건이다.

앞서 밝혔듯이 많은 사람들은 전업 작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려면, 정해진 공식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천재들은 새로운 룰을 만들어간다. 천재 작가에 대한 대중의 환호가 더 중요해진 상황에서, 미술관이 변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누가 "저는 변변한 미술 대학에 가 본 적도, 갤러리의 러브콜도 받아본 적이 없다"고 한다면, 이런 말을 들려주고 싶다. “절망하지 마세요. 흔치 않은 길을 택하고도 위대한 작품을 남긴 작가도 많아요."

김승민 슬리퍼스 써밋 & 이스카이 아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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