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교육부 "PISA 보고서 왜곡"…평가원·KERIS에 이례적 경고

김정현 기자 2024. 2. 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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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기기 1시간 더 쓰면 수학 3점씩 하락해'
교육부가 확인해보니…PISA 원문은 정반대 분석
평가원, 정부출연연구기관…법률에 독립성 보장
중앙 부처가 소관 연구기관에 이례적 경고 공문
평가원 측 "본인도 잘못 시인"…보고서 수정 조치
[세종=뉴시스] 국무총리실 산하 정부출연연구기관인 충북 진천군 소재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전경. (사진=한국교육과정평가원 제공). 2024.02.18. photo@newsis.com


[세종=뉴시스]김정현 기자 = 교육부가 디지털 기기 사용 시간에 따른 학생들의 수학 성적 국제 비교 연구를 소개한 국책연구기관의 보고서가 왜곡됐다며 정정과 재발 방지를 촉구한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가 독립성이 법률로 보장되는 국책연에 경고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18일 뉴시스 취재를 종합하면,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은 최근 '2023년 디지털교육백서'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 2022 결과를 통해 본 디지털 리터러시' 대목을 수정했다.

해당 대목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에서 작성한 것으로, 당초 보고서에 있던 '표 2-3-16 디지털 자원의 사용 시간과 수학 성취의 관계' 내용이 고쳐졌다.

당초엔 우리나라 학생들이 학교에서의 학습 활동에서 '디지털 자원'을 1시간 더 쓸 때마다 수학 학업성취도 평균 점수가 3점씩 하락한다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

해당 내용은 지난달 뉴시스를 비롯한 다수 매체에서 보도됐다. 교육부가 내년부터 초등학교 3~4학년, 중학교 1학년과 고등학교 공통과목 수학·영어·정보 교과에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디지털 교과서는 태블릿PC 등 디지털 기기로 구동된다.

그런데 교육부가 OECD PISA 2022 원문을 살펴 보니, 학습 활동에서 디지털 자원을 아예 쓰지 않은 한국 학생들의 수학 성취도는 가장 많이 쓴(7시간 이상) 학생들보다 12점 낮았다. 디지털 자원을 '1시간 미만' 썼다고 답한 학생은 안 쓴 학생들보다 34점 높았다.

한국 학생들의 수학 성취도 점수는 디지털 기기 활용 시간이 늘어날 수록 하락했지만, 아예 쓰지 않은 것보단 나았다는 것이다. '(사용)없음'은 508점인 반면, 1시간 미만은 542점이고 7시간 이상은 520점으로 조사됐다. OECD 전체 평균 데이터도 마찬가지 분포를 보였다.

이를 두고 OECD는 PISA 2022 원본 보고서에서 "학교에서의 적당한 디지털 기기 사용은 더 높은 성과와 관련이 있다"(Moderate use of digital devices in school is related to higher performance)고 평했다.

[세종=뉴시스]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 2023 디지털교육백서에 실린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측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 2022 분석 내용 비교. 수정 전(위)은 디지털 자원을 1시간 더 쓰면 수학 성취도가 3점씩 하락한다는 내용이 있다. 수정 후(아래)에는 디지털 자원을 아예 쓰지 않은 학생보다 쓴 학생의 점수가 높다는 원자료로 교체돼 있고, 분석도 바뀌었다. (자료=KERIS 2023년 디지털교육백서 갈무리). 2024.02.1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교육부는 평가원 연구진이 OECD의 전체 통계를 전하지 않고, 디지털 자원을 사용한 학생들의 성취도 점수 변화만 '시간당 -3점'이라 왜곡해 전한 것으로 판단했다.

평가원 연구진은 수정 전 KERIS 백서에 '디지털 기기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학생일수록 수학 성적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적었다. 자칫 OECD의 분석과 정반대의 결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교육부는 조사 권한이 없어 해당 연구진이 '의도적으로' 통계를 취사 선택했다고 판단하지는 못했으나, 디지털 교과서가 학생들의 교육 성취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여론이 확산되는 것을 우려했다.

이에 교육부는 백서를 발간한 KERIS와 평가원에 공문을 보내 정식으로 "해당 기술 내용이 PISA 2022 보고서의 핵심 내용과 다르다"고 항의했다. 동시에 현장의 오해가 유발되고 있다며 조속히 정정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KERIS엔 감수를 못한 점을, 평가원엔 잘못된 내용을 전했다며 경고한 것이다.

KERIS는 교육부 소관 공공기관이나 평가원은 다르다. 국무조정실 소관 경제·인문사회연구회(경인사연)에 소속된 정부출연연구기관으로 정부에서 독립돼 있다.

현행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의 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 제10조는 '연구기관은 연구에서 독립성과 자율성이 보장된다'고 적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중앙 부처가 직접 재발방지를 촉구한 것은 잘못된 정보의 확산을 조기에 차단하고 정책에 미칠 악영향을 신속히 바로 잡아야 한다는 필요성이 크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뉴시스는 집필진의 반론을 듣기 위해, 평가원 측을 통해 3차례 이상 접촉을 요구했으나 "본인이 부담감을 느낀다"는 이유로 답을 듣지 못했다.

평가원 고위 관계자는 "본인도 잘못을 시인했다"며 "평가원 시스템을 살피는 데 부족함이 있었다"고 답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ddobagi@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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