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철을 몇 개 박은 거야?” 이범호 감독 츤데레 리더십…김도영도 KIA도 웃었다 ‘이젠 일상이다’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아니, 몸에 철을 몇 개 박은 거야?”
9일부터 15일(이하 한국시각)까지 KIA 타이거즈의 호주 캔버라 스프링캠프를 취재했다. KIA 이범호 감독이 아닌, 이범호 타격코치의 얘기였다. 감독으로 선임되기 며칠 전, 나라분다 볼파크 3루 덕아웃 바로 앞에서 다음 훈련을 준비하기 위해 잠시 물을 마시고 쉬던 김도영(21)에게 했던 얘기다.
실제 김도영은 데뷔 후 2년간 자주 다쳤다. 2022시즌에는 시즌 도중 SSG 랜더스 외국인타자 후안 라가레스의 타구에 손바닥을 맞아 다치면서 약 1개월간 결장했고, 2023시즌에는 4월2일 SSG전서 홈을 파고 들다 중족골 부상, 11월19일 일본과의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서 좌측 엄지 중수지절관절 내측 측부인대 파열 및 견열골절 했다.
손과 다리에 임시로 몸을 보호하는 철을 꽤 박았던 셈이다. 이범호 감독은 자신은 현역 시절 몸에 철을 몇 번 박은 적이 없었다면서 김도영을 계속 놀렸다. 이범호 감독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와 짓궃은 말투에 주변에선 폭소가 터졌다. 김도영도 딱히 원망할 수 없었던 분위기.
김도영이 KT 위즈 내야수 김상수(34)에게 얻은 방망이로 타격이 잘 풀렸는데, 정규시즌 최종전서 부러지는 바람에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에 그 방망이를 들고 갈 수 없었다는 사연을 공개한 적이 있다. 이범호 감독은 이번에도 웃으면서 김도영을 놀렸지만, 따뜻한 말 한 마디를 잃지 않았다.
“그러니까 어릴 때는 방망이 가리면 안 돼. 이 방망이로 쳐보고, 저 방망이로도 쳐보고 그래야지. 그러다 자기한테 맞는 방망이를 찾아가는 거지”라고 했다. 알고 보니 이범호 감독은 타격코치 시절 김도영 등 젊은 타자들에게 다른 팀 선수들이 쓰는 방망이를 얻어 자주 선물했다고 한다. 이 방망이, 저 방망이 써보면서 자신에게 맞는 방망이를 찾아보라는 배려였다.
이른바 ‘츤데레 리더십’이다. 이범호 감독은 김도영이 김상수 방망이를 좋아하자 김상수를 연결해준 것으로 보인다. 김상수가 두 차례나 김도영에게 방망이를 줬는데, 이범호 감독이 힘을 써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듯하다.
이범호 감독은 현역 최고참 시절, 현재 주축 야수로 자리 잡은 최원준이나 박찬호에게 참 좋은 얘기를 많이 해줬다고 한다. 경상도 사나이라 겉으로 조금 무뚝뚝할 수 있어도, 뒤에선 정말 잘 챙겨주고, 따뜻한 말로 후배들의 마음을 녹였다.
최원준은 “감독님이 현역 시절 내게 문자를 보내주고 그랬다. ‘넌 우리 팀의 미래야. 넌 잘 할 수 있어’라고 했다. 감독님 위치에 저 같은 선수에게 절대 그렇게 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감독님은 슈퍼스타다. 선수시절부터 존경했던 분”이라고 했다.
박찬호도 “이범호 감독님을 지켜드려야 한다”라고 했다. 남다른 존경심이 있지 않으면 하기 어려운 얘기다. 선수는 팀을 위해 뛰는 게 맞지만, 감독을 위해 뛰겠다는 마음이 곧 팀을 위한 진심이니, 박찬호의 가슴이 뜨겁게 타오르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투수들과의 신뢰관계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범호 감독이 먼저 정재훈, 이동걸 코치를 절대적으로 존중한다. 투수들 역시 이범호 감독에 대한 감정이 남다르다. 이의리는 "원래 감독님이 코치 시절에도 내 투구에 대해 타자 입장에서 얘기를 많이 해줬다"라고 했다. 투수들과의 관계도 잘 맺어왔다.
이범호 감독은 2011년 입단 후 동료, 선, 후배, 코칭스태프, 프런트 등 많은 구성원에게 신뢰받는 인물이었다. 은퇴 후 지도자 생활을 한 이후에도 그랬다. 특별한 계기가 있는 게 아니라 행동 한번, 말 한 마디가 쌓이고 쌓여 리더십이 형성됐고, 리더십이 쌓여 차세대 리더로 꼽혔다. 언젠가 감독이 될 사람이라는 평가는, 2024년 2월 현실화됐다. 당장 첫 미팅에서 "여러분 하고 싶은대로 하세요"라는 말에 감동 받거나 가슴 뭉클했다는 선수가 여럿이다.
어느 팀이든 감독과 선수단, 감독과 외부의 허니문 기간이 있다. 이범호 감독의 허니문은 오래갈 것으로 보인다. 현대조직론에서 구성원이 진심으로 리더를 존경하는 케이스는, 정말 거의 안 나온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KIA는 이례적이다. 야구만 잘 하면 엄청난 시너지가 날 가능성이 크다. 올해 성적만 나면, 이범호 감독 체제가 롱런할 발판이 마련될 전망이다.
Copyright © 마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