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가 ‘스와팅’ 공포…“거짓 신고 넘어 신종 테러 위험으로” [세계는 지금]

윤솔 2024. 2. 17.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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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선 앞두고 공직자 위협 증가세
연방검사·경선후보 자격 박탈 州장관 등
최근 트럼프 사법리스크 관련 인물 타깃
1월엔 공화당 헤일리도 두 차례 당해
2013년 연예인 표적되며 전국에 알려져
출동 무장경찰 이용 겁주기 “사실상 테러”
2023년 5월 이후 500건 신고… 인명 피해도
트럼프 등 정치인 극단 발언이 더 부추겨
“장난전화 고도화… 디지털 테러리즘 진화”
일부州 “허위신고는 중범죄” 처벌 강화
“막 방송을 시작하려던 참에 제 손 위로 레이저가 보이는 겁니다. ‘누가 장난을 치나?’ 하면서 고개를 들었는데, 창밖으로 경찰들이 저격용 총을 겨눈 채 제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어요. 지하에서 생방송 중인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밖으로 나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경찰과 통화 중이던 (신고자가) 남편이 방송을 멈춘 것을 보고는 ‘내가 지금 밖으로 나가자마자 발포할 거다’라고 말했다더군요. 경찰이 제 남편을 쏘게 하려던 거죠.”

‘QT신데렐라’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미국 인터넷 방송인 블레어(29)는 지난해 자신이 ‘스와팅(Swatting)’을 당했던 경험을 한 유튜브 방송에서 털어놨다. 미 특수기동대(SWAT) 이름에서 따온 이 표현은 인질극이나 총격 사건 등 위중한 응급상황을 거짓으로 신고해 상대의 집에 대규모 무장 경찰을 출동시키는 행위를 뜻한다.

니키 헤일리 미국 공화당 경선후보. AP연합뉴스
주로 연예인이던 피해 대상이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 관련 인물로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특히 팬덤이 강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와 관련된 인물들이 줄줄이 스와팅의 표적이 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을 기소한 잭 스미스 연방특별검사, 트럼프의 주 경선 후보 자격을 박탈한 셴나 벨로우즈 메인주 국무장관은 지난해 12월 말 스와팅을 당했다. 벨로우즈 주 국무장관은 트럼프의 후보 자격을 박탈한 지 하루 만에 피해를 봤다. 트럼프 사건을 담당하며 그와 대립각을 세운 타냐 처칸 워싱턴 연방지법 판사, 아서 엔고론 맨해튼 연방지법 판사도 지난달 비슷한 일을 겪었다.

스와팅은 민주·공화 진영을 가리지 않는다. 비슷한 시기 버트 존스 조지아주 부주지사, 마조리 그린 조지아주 하원의원 등 친(親)트럼프 인사들도 표적이 됐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니키 헤일리 공화당 경선후보가 연초에 이틀 간격으로 두 차례 스와팅을 당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NBC방송에 나온 헤일리는 허위신고로 경찰이 87세, 90세인 고령의 부모님에게 총구를 겨눴다며 “이는 현재 미국을 둘러싼 혼란의 증거”라고 고개를 저었다.

지난달 15일에는 화재로 백악관에 사람이 갇혀 있다는 허위신고가 접수돼 여러 대의 소방차가 출동하기도 했다. 당시 조 바이든 대통령은 관저에 없어 혼란을 피했지만, 현지 매체들은 이 사건도 미 정가에 퍼지는 스와팅의 한 종류로 봐야 한다며 우려를 표했다.

◆무장 경찰이 ‘테러’ 수단으로

미국에서 스와팅은 2013년을 전후로 할리우드 연예인들이 표적이 되면서 전국에 알려졌다. 수년간 스와팅을 연구해 온 로렌 샤피로 뉴욕시립대 교수에 따르면 최초의 스와팅은 2000년대 초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일부 게임 이용자들이 게임 상대에 대한 분풀이로 경찰을 출동시켜 상대가 곤란을 겪는 모습이 웹캠에 실시간으로 포착되기를 바라던 일종의 온라인 괴롭힘 수법으로부터 시작됐다.

112 허위신고는 한국에서도 지난 5년간 매년 4000여건이 접수될 정도로 흔한 일이지만 미국처럼 이를 공격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미국에서 괴롭힘을 목적으로 한 경찰 허위신고가 퍼질 수 있었던 이유로는 경찰 군사화라는 특수한 배경이 존재한다.

총기 소유가 가능한 미국에서 시민들이 경찰 출동에 느끼는 두려움은 남다르다. 일반 경찰도 발포가 가능할뿐더러 인질극이나 총격 사건에 대응하는 SWAT는 저격소총, 자동소총, 수류탄 등으로 중무장한 채 현장에 도착한다. 스와팅은 중무장한 상대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공포와 무력함을 이용해 사실상 테러나 다름없는 행위를 경찰에게 대행시킨다.

미 연방수사국(FBI)이 지난해 5월부터 스와팅을 공식 집계한 이후로 미 전역에선 500건 이상의 스와팅 신고가 접수됐다. 인권단체 반명예훼손리그(ADL)는 스와팅 한 번으로 낭비되는 경찰력이 약 1만달러(약 130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했다.

스와팅은 실제 인명 피해도 초래했다. 2020년 테네시주에 사는 마크 헤링(60)의 집으로 살인 사건이 접수돼 경찰이 들이닥쳤고, 눈앞에 총이 보이자 두려움과 혼란에 빠진 헤링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스와팅에 동조한 20세 청년은 5년형을 선고받았지만, 직접 전화를 건 영국 국적자는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경찰 조사조차 받지 않았다.

2017년 캔자스주 위치타에서는 스와팅 신고를 받은 경찰이 상황을 잘못 판단해 무고한 제3자를 쏴 죽였다. 이를 주도한 25세 청년은 스와팅 상습범으로 밝혀져 징역 20년형을 선고받았다.

스와팅의 위험성에 비해 방법은 너무 간단하다. 발신자의 번호를 조작하는 ‘스푸핑’ 서비스나 앱은 구글 검색만으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여기에 인터넷전화(VoIP)를 활용하면 사전 녹음된 메시지를 통해 대량 허위신고를 하는 일도 가능하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 음성변조 프로그램을 사용해 자신의 목소리를 숨기는 등 관련 기술은 진화하고 있다.

미국 특수기동대(SWAT·스왓) 대원들. 로이터연합뉴스
◆“정치인 극단 발언, 스와팅 부추겨”

2019년 이코노미스트는 FBI 출신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2011년 400건에 그쳤던 스와팅이 2019년 1000건 이상으로 늘어났다고 보도했다.

권위주의를 연구하는 루스 벤기앗 뉴욕대 역사학 교수는 스와팅의 증가가 민주 시민사회의 쇠퇴를 의미한다며 우려를 표했다. 그는 지난달 비즈니스인사이더에 “(스와팅은) 테러리스트들이 가짜 폭탄 위협으로 공포를 퍼뜨리던, 과거에도 사용됐던 전술”이라며 “(스와팅의) 목표는 사람들에게 공포를 일으켜 자기 검열을 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벤기앗 교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폭력적인 수사가 이러한 행위를 부추기고 있다며 “자신이 누군가를 ‘쏠 수 있다’고 말하는 트럼프는 각종 극단주의자들에게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트럼프는 그들의 행동을 수사적으로 보상했을 뿐 비난한 적이 없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스와팅을 일으킨 사람들의 가장 큰 동기는 관심과 반응이다. 캔자스주 위치타에서 스와팅을 일으킨 타일러 배리스(25)는 한 다큐멘터리에서 자신이 스와팅 1회당 20∼50달러(약 2만∼6만원)의 요금을 받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스와팅의 스릴을 즐겼고, 트위터에 (내가 일으킨) 사건을 자랑하는 것을 즐겼다”고 고백했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1월 20일(현지시간) 미국 뉴햄프셔주 맨체스터에서 열린 집회에서 무대에 등장해 관중의 환호를 유도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올해 미 대선을 앞두고 공직자에 대한 위협이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CNN은 지난 한 해 동안 공직자를 대상으로 500건이 넘는 폭력 사태가 기소됐고, 미 국회의사당 경찰이 조사에 나선 의원 협박 사례는 2017년 3900여건에서 2023년 7300여건까지 늘었다고 보도했다. 가장 많은 협박 사례가 조사된 것은 트럼프 정권 때인 2021년으로 총 9600여건의 협박 사례가 접수됐다.

전직 로스앤젤레스 경찰이자 테러 위협 전문가 케빈 코페이는 지난달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장난 전화’ 수준이었던 스와팅이 고도화되면서 “디지털 테러리즘으로 진화했다”고 경고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는 일반적인 장난 전화와 달리 상대방을 괴롭힐 뚜렷한 목적, 한 사람을 표적으로 반복 신고하는 지속성, 해킹 등을 통해 남의 주소를 알아내는 치밀함 등을 고려하면 테러리즘에 준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다른 사람의 삶을 뒤집어엎고, 심지어는 사망에까지 이르게 하는 것은 테러나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연방 차원의 ‘스와팅법’ 도입은 지난 10년간 계속 실패했지만 일부 주에서는 처벌 강화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오하이오주는 허위신고를 중범죄로 규정했고, 버지니아주는 허위신고에 대한 처벌을 최대 징역 12개월까지 강화했다. 스와팅 피해자인 그린 하원의원도 스와팅 처벌 강화 법안을 가까운 시일 내 하원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윤솔 기자 sol.y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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