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돌려차기’ 피해 여성의 발걸음, 세상을 바꾼다 [김동진의 다른 시선]

김동진 페페연구소 대표 2024. 2. 17.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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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다움이란 편견과 2차 가해 넘어서서, 자신과 같은 범죄 피해자들과 적극적으로 연대

(시사저널=김동진 페페연구소 대표)

2022년 5월 발생했던 '부산 돌려차기'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던 것으로 기억되고 있다. 오전 5시경, 30대 남성 이현우가 20대 여성을 10여 분간 뒤따라간 후 오피스텔 건물의 엘리베이터 앞에 서있던 이 여성의 뒷머리를 돌려차기로 가격하고 계속 여성을 폭행한 후, CCTV가 없는 곳으로 둘러메고 가서 성범죄를 저지른 사건이다. 당시 이 사건의 CCTV 영상이 공개되면서 그 잔혹함으로 인해 전 국민적인 관심을 끌었다. 긴 재판 끝에 가해자는 2022년 10월 1심에서 징역 12년을, 지난해 6월 항소심에서는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최근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이 사건의 피해자인 20대 여성 김진주씨(가명)의 활동과 관련한 소식이었다. 보통 언론을 통해 접하는 여성 대상 범죄 사건의 경우, 사건의 경과나 판결 정도까지는 알 수 있지만, 그 이후 피해자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까지는 알기 어려웠다. 그런데 가해자의 보복 협박에도 좌절하거나 숨지 않고 자신과 같은 피해자를 돕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진주씨의 삶 자체가 그냥 묻혀버릴 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부산 서면 돌려차기 사건을 다룬 JTBC 《사건반장》 영상 캡처 ⓒJTBC '사건반장' 영상 캡처
부산 서면 돌려차기 사건을 다룬 JTBC 《사건반장》 영상 캡처 ⓒJTBC '사건반장' 영상 캡처

'범죄 피해자 커뮤니티' 온라인 카페 만들어

피해자 김진주씨가 범죄 피해자들을 위해 살겠다는 인생의 목표를 세우기까지 그는 사실상 수많은 벽에 부닥쳤다. 사건 발생 직후 김진주씨는 두피가 열리는 심각한 외상과 뇌신경 손상으로 인한 다리 마비, 해리성 기억상실까지 겪어야 했다. 이에 더해 경찰은 피해자인 그에게 개인정보 보호라는 명목으로 가해자 및 수사와 관련된 정보를 주지 않았다. 첫 공판에 방청객으로 참석했을 때에야 범행 장면이 담긴 CCTV 영상을 보았고 7분의 사각지대가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인지하게 되었다. 항소심부터는 수차례 의견서를 제출해 자신이 입고 있던 바지 안쪽의 DNA 재검사 및 강간살인미수 혐의로의 공소장 변경을 요청했고, 그렇게 해서 얻은 DNA 덕분에 공소장은 '살인미수'에서 '강간살인미수'로 변경될 수 있었다.

피해자 지원제도 내용이 담긴 한 장짜리 안내문만 받은 채 별다른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던 김진주씨가 병원 치료비 등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그가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렸던 글이 높은 조회 수를 얻고 나서였다. 또한 그는 언론 인터뷰에도 적극 응했고,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도 증인으로 출석해 비공개 증언을 하기도 했다. 국정감사 이후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전화로 피해자 지원제도에 관한 의견을 질문받았을 때, 피해자 지원제도가 너무 미진한데 전화 한 통화로 얘기를 끝낼 수 없다며 자신의 의견을 조목조목 정리한 문서를 이메일로 보내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김진주씨가 해오고 있는 중요한 일은 자신과 같은 범죄 피해자 여성들과의 연대다. 2022년 10월 가해자 이현우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건 후에야 그는 범행 장면이 담긴 CCTV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해당 영상이 언론에 공개되고 이 사건이 널리 알려지자, 유사한 피해를 경험한 피해자 및 유가족들이 김진주씨에게 먼저 연락해 왔다. 그는 온라인에서 피해자들과 소통하는 것을 넘어 반 년간 부산에서 서울을 오가며 피해 당사자와 가족들을 포함해 50여 명이 넘는 사람을 만났고, 자신과 같은 강력범죄 피해자 3명과 함께 자조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이렇듯 온라인과 대면으로 피해자들을 마주하면서 김진주씨는 자신이 경험한 피해, 자신이 그간 되뇌었던 질문들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성폭력' '무차별' '강간' 등의 키워드로 검색하면 가해자들의 커뮤니티나 가해자를 돕는 변호사 홍보 글이 대부분인 것을 보고, 그는 피해자들만을 위한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지난해 7월 김진주씨가 만든 '대한민국 범죄 피해자 커뮤니티'라는 온라인 카페에는 현재 피해자 및 일반 시민 300여 명이 가입해 활동 중이다. 피해자들은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어떻게 법적 대응을 해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 등을 공유한다. 무엇보다도 혼자 고립되어 있지 않고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 커뮤니티가 갖는 의미가 있다.

피해자 아닌 이들에게도 변화 계기 만들어

또한 김진주씨는 자신에게 조언을 구해 오는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자신의 SNS를 피해자 상담 창구로 열어둔 끝에, 지난해 6월 '피해자를 구하자'라는 유튜브 채널을 열었다. 범죄 피해자가 될 경우 해야 할 일, 범죄 피해 사건 후에 일어나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변호사 고르는 법 등 실제 범죄 피해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들을 담은 동영상을 찍고 직접 편집해 올린다. 현재 2900여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흔히 범죄 사건, 특히 성범죄 사건 피해자인 여성에게는 피해자다움이라는 편견이 씌워진다. 사법부부터 일반 시민, 피해자의 주변 지인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많은 구성원은 피해자라면 이러이러해야 할 것이라는 편견으로 피해자를 바라본다. 그러나 한 가지로 정해진 피해자다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각각의 피해자는 그가 가진 성품과 삶의 배경, 현재 처해 있는 사회·문화·경제적인 위치 등에 따라 자신에게 닥친 범죄 사건을 겪어나가는 방식이 모두 다르다.

김진주씨의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 '피해자 같지 않다'는 말을 한 것도, 이런 사건의 피해자가 가져야 할 전형적인 모습이 무의식중에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컨대 피해자는 우울하거나 힘들어하거나 의기소침하거나 어두운 분위기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는 편견이다. 반대로 웃거나 크게 즐거워하거나 씩씩하거나 적극적이거나 활달한 모습은 전형적인 피해자 상에 어긋나는 모습일 것이다. 이런 편견에 기반해 피해자를 판단하게 된다면 그것이 전형적인 2차 가해가 된다.

우리가 경험하는 많은 일은 단지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닌 경우가 많다. 나와 같은 일을 경험한 사람이 세상에 더 많이 존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내가 경험한 문제는 단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문제일 수 있다. 김진주씨는 자신에 대한 피해자다움이라는 편견들과 숱한 2차 가해를 넘어서서, 자신과 같은 범죄 피해자들과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있다. 이는 피해자 개개인을 도와주는 데 일차적인 의미가 있을 뿐 아니라, 피해자들이 연대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초석이 된다는 점에서도 사회적인 의미를 지니는 일이다.

피해 당사자의 말이기에 그 말에는 더욱 힘이 실린다. 같은 피해자들에게는 공감과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피해자가 아닌 이들에게도 우리 사회 시스템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변화의 계기를 이끌어내는 활동이다. 피해 당사자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이 사회 구성원인 시민으로서 이와 같은 활동을 지켜보며 연대한다면, 좀 더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로 한발 더 나아가는 일에 함께할 수 있다. 김진주씨의 발걸음으로 인해 이미 그 길은 시작되었다.

김동진 페페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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