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로 뜬 60년 전통 경동시장, 건물주-상인들 갈등 속사정은
건물주 바뀐 뒤 청년들 ‘핫플’로 떴지만
상인들 "손님은 안 늘고 임대료만 올라"
'자본 1억' 회사, 750억 빌려 시장 매입
"상한액 안 넘겼어도 위험 대출" 의견
<반박하는 건물주>
"감정평가액 한도 내 대출… 문제 없어"
"20~30년 보증금 못 올려 주변보다 싸"
"건물 유지 보수에 연간 1억 넘게 사용"
"전대차 거래 성행, 장사되니까 하는 것" 반박하는> 뿔난>
편집자주
새마을금고 계좌가 있으신가요? 국민 절반이 이용하는 대표 상호금융기관인 새마을금고가 창립 60여년 만에 전례없는 위기 앞에 섰습니다. 몸집은 커졌는데 내부 구조는 시대에 뒤쳐진 탓입니다. 내가 맡긴 돈은 괜찮은지 걱정도 커져갑니다. 한국일보 엑설런스랩은 새마을금고의 문제를 뿌리부터 추적해 위기의 원인과 해법을 찾아봤습니다.
"여기 맞아? 문 열어봐." "진짜 '스벅'(스타벅스)이네."
한약재 향이 코끝에 감기는 길을 지나 도착한 커피숍. 폐관한 극장 구조를 그대로 살린 독특한 공간 속에서 '인생 사진'을 찍는 손님들이 가득하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한덕수 국무총리 등이 잇달아 방문해 뜨거워진 경동시장 스타벅스(경동1960점)다. 작년에 함께 개점한 금성전파사 새로고침센터(LG전자 복합문화공간), 청년몰 등으로 경동시장은 젊은이들 사이에선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았다. 40년 넘게 경동시장에서 인삼·홍삼 판매를 해왔다는 70대 상인은 "가게(스타벅스) 생긴 뒤 젊은 사람들이 많이 온다"고 전했다.
하지만,화려한 시장의 이면에는 그림자도 짙게 깔렸다. 3년 전 시장을 산 건물주와 터줏대감 상인들 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었다. 상인들은 "청년층이 몰려도 한약재나 생선, 건어물 등 우리 물건을 사가는 건 아닌데 임대료만 올라 득될 게 없다"고 하소연한다. 특히 새마을금고에 대한 원성이 자주 터져나온다. "새마을금고가 자기 자본이 부족한 사람에게 거액을 빌려줘 건물을 사도록 도왔고, 건물주는 이를 갚느라 임차료를 올렸다"는 논리였다. 견디다 못한 상인들이 장사를 접고 떠나버린 탓에 시장 공실률이 20%에 달한다는 게 상인회 주장이다. 반면, 건물주는 "주변 상권과 비교해 임대료가 비싸지 않고 대출 과정에도 문제가 없었다"고 항변한다. 성공적으로 변신한 줄 알았던 경동시장에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상인회 "이자 부담 때문에…임대료 3년 새 9% 인상"
갈등은 2019년 불거졌다. 시장 건물(본관 신관 별관 및 토지)을 소유한 '경동시장주식회사'의 경영난이 최악으로 치달았다. 2019, 2020년 연속으로 재무제표에 대해 외부감사인으로부터 '감사의견 거절'을 받을 정도였다. 상인들은 보증금을 떼일까 불안한 날들을 보냈다.
그러다가 '희소식'이 들렸다. 2021년 3월 부동산 임대·개발업체 '케이디마켓주식회사'가 건물을 매입하기로 한 것이다. 상인들은 새 건물주로부터 '보증금을 보호해주겠다'는 서면 확약을 받고 마음을 놓았다고 한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새 주인이 빚으로만 건물을 샀다는 점이다. 자본금은 1억 원인데 새마을금고에서 750억 원을 대출 받아 매입 자금을 확보했다. 건물주가 된 케이디마켓은 최근 3년 사이에 임대료를 55만7,700원(2020년 8월)에서 60만8,300원(2023년 5월)으로 약 9% 올렸다. 전체 점포 620여곳(노점 제외) 중 상인회 소속 362곳의 평균치다. 김영백 상인회장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어려울 때 임차료 동결 소식이 나오던 인근 시장과 비교돼 더 아팠다"고 말했다. 근처 동서시장, 광성상가, 청량리종합시장의 경우 5년간(2019~2023년) 임차료가 동결된 점포가 90%를 훌쩍 넘는다는 주장이다. 주변 시장에 없는 '관리비'도 부담이다. 관리비를 처음 징수한 2018년에는 그 액수가 임차료의 5% 밖에 안됐지만, 어느새 20%(13만9,700원) 수준까지 올라가 '제2의 임차료'가 된 모양새다.
실매매가-감정평가액 수백억원 차이
상인들의 원망은 케이디마켓의 자금줄인 새마을금고로 향했다.전국 새마을금고 30곳과 새마을금고중앙회 충남지역본부 등 총 31곳이 2021년 3월 케이디마켓에 750억 원을 빌려줬다. 그 돈으로 시장 건물을 인수한 케이디마켓은 같은 해에 약 39억 원, 이듬해에 약 34억 원에 달하는 이자를 갚았다. 그동안 회사는 매년 20억 원 안팎의 순손실을 냈다. 임대 사업자의 손실을 메우려면 임차료 인상이 불가피하다. 일부 상인들이 '새마을금고가 대출 심사를 부실하게 해 자본력이 떨어지는 업체에 거액을 내주면서 결국 이자 부담이 임차인에게 전가됐다'고 주장하는 까닭이다.
상인들이 제기하는 새마을금고의 부실 심사 의혹은 크게 세 지점이다. ①우선, 건물 매매가(840억 원)에서 임차인 보증금(210억 원)을 제하고 남은 금액(630억 원)보다 더 많은 돈을 대출(750억 원) 해줬다. 40억 원이 넘는 취득세까지 포함해도 케이디마켓이 경동시장 건물을 살 때 자기 돈은 한푼도 들지 않은 셈이다.
시중은행 등 제1금융권 여신 담당자들은 이 대출 건을 두고 "대출금액이 규정상 상한액을 넘지 않았다고 해도 여러 위험 요소 탓에 승인받기 쉽지 않은 대출"이라고 평가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을 받아 건물을 사려면 취득가액의 최소 20%는 자기자금을 투자해야 대출 받을 수 있다"며 "이는 금융권에서 오랜 기간 유지된 대원칙"이라고 했다. 제2금융권의 한 관계자도 "무자본 거래는 투기 성격이 강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출해주지 않는 게 금융사에서 통용되는 상식"이라고 말했다.
②감정평가액과 실매매가가 차이가 많이 나는 것도 논란이다. 새마을금고 측은 "대출 당시 경동시장의 감정평가액이 1,500억 원이어서 700억 원대 대출은 충분히 내줄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감정평가액은 감정평가사가 고객(새마을금고) 의뢰를 받아 매긴 건물 가치인데, 실거래가뿐 아니라 당시 부동산 시장 상황이나 미래 가치 등을 반영해 책정한다. 금융기관은 감정평가액 등을 기준 삼아 대출해주기에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다. 당시 감정평가사는 경동시장이 향후 재개발될 가능성 등을 반영해 실거래가보다 훨씬 높은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재개발 논의는 현 시점에서 전혀 진척이 없는 상태다.
③건물주의 상환 여력을 충분히 조사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남는다. 임대수익이 사실상 전부인 수익 구조라서 기존 임대료 수익과 적자 상황을 면밀히 조사했다면 거액 대출 승인이 쉽지 않았을 거라는 얘기다.
건물주·새마을금고 "연체도 없고, 법적 문제 없다"
반면, 새마을금고는 대출 과정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새마을금고중앙회는 "내규에 따라 담보물 감정평가액의 80%인 1,200억 원이 대출 상한액인데 여기서 선순위 보증금(210억 원)을 제하면 990억 원 정도를 대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상한선 내 대출이었기에 회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얘기다.
건물주도 상인들이 제기한 의혹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했다. 지난달 31일 한국일보와 만난 서형원 케이디마켓 회장은 "20, 30년 넘게 보증금을 못 올렸고 임대료도 주변 시세보다 싸다"면서 높은 대출 이자 때문에 손실이 나는 상황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특히 안전등급 C등급인 낡은 건물을 유지보수하는 데 연간 관리비용이 1억4,000만 원 넘게 든다고 했다. 그럼에도 상인들의 어려움을 감안해 관리비로 4,000만 원밖에 받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서 회장은 "대출 이자도 꼬박꼬박 갚고 있고, 시장의 미래 가치를 보고 투자한만큼 상인들과의 상생과 시장 발전을 위해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스타벅스 유치나 청년몰 활성화 등 시장의 전체적인 발전을 위해 노력해왔고 엘리베이터 설치 등 투자도 많이 했다는 설명이다.
서 회장은 '장사가 안된다'는 상인들의 주장도 믿기 어렵다고 했다. 그 근거로 전대차 상가가 많다는 점을 들었다. 전대차는 임차 받은 상점을 다른 상인에게 재임대해주는 것이다. 서 회장은 "시장에 전대차로 운영하는 상가가 한두 곳이 아니다. 우리 시장의 임대료가 다른 시장보다 싸다는 뜻"이라면서 "상인들은 항상 어렵다고 하지만 (장사가) 되니까 (전대차 계약까지 해가며)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탈 많은 공동대출, 제동 건 중앙회…수익 구조 개선 주문도
그럼에도 부실 대출로 의심 받는 이유는 새마을금고의 건전성 악화와 허술한 공동대출 때문이다. 자산규모가 작은 개별 지역 금고가 금액이 큰 부동산·건설업 대출에 손을 대면서 여러 금고에서 돈을 모아 빌려주는 공동대출이 많아졌다. 경동시장 대출 건은 무리한 공동대출이 논란이 돼 중앙회가 공동대출 사전심사제를 도입(2021년 4월)하기 직전에 시행돼 철저한 심사도 받지 않았다. 한 금고 직원은 “각 금고가 책임감을 갖고 임해야 하는데, 친한 금고들끼리 믿고 참여하거나 중앙회가 하면 따라가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전했다.
지난해 중앙회의 혁신안에도 △대출금 200억 원 이상 중앙회 참여 의무화 △중앙회 사전 검토 대상 확대(대출금 100억 원 이상에서 70억 원 이상으로) △법인별 대출금 최대한도 축소(700억 원 이상에서 500억 원 이상으로) 등 공동대출 규제강화가 포함됐다. 전문가들은 개혁안에 더해 새마을금고가 수익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박웅용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금융 소외계층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정책금융을 취급해 비이자 수익을 낼 수 있도록 길을 터줄 필요가 있다"며 "기존 대출 위험도를 꾸준히 평가하고 규제할 방안도 강구돼야 한다"고 밝혔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원다라 기자 dara@hankookilbo.com
송주용 기자 juyong@hankookilbo.com
이오늘 인턴 기자 oneul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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