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취, 하면 병원행?”…세계 최고 의료 이용, 절반 줄여야 의대 증원도 의미있죠 [나기자의 데이터로 세상읽기]

나현준 기자(rhj7779@mk.co.kr) 2024. 2. 17.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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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의대 정원 2000명 늘려
내년부터 5058명 의대생 모집
미국·영국·독일도 의사 수 증가
韓 의사, OECD 평균대비 고임금
환자 3.7배 더 보고 임금 1.6배 받아
‘고노동-고수입’ 구조로 돈 버는 셈
고령화로 건강보험 올해부터 적자
환자 의료이용도 줄여야 개혁 성공
지난 8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이동하는 의료진. <연합뉴스>
정부가 이대로 갔다간 2035년 의사 수가 1만명이 부족해진다며 내년도 부터 의대 정원을 3058명서 5058명으로 무려 2000명을 늘리겠다고 최근 발표했습니다. 현재 의협은 의사 수가 부족하지 않다면서 반발하고 나섰죠. 과연 누구의 말이 맞는 걸까요? 통계를 통해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韓 의사 1인당 연간 진료 6000회, OECD 3.7배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OECD 보건 의료통계 2023’ 자료를 살펴보면, 한국 전문의 중 봉직의 평균 임금 소득은 지난 2020년 기준 19만2749달러(1300원 환율 적용시 2억5000만원)로, OECD 평균(11만5818달러·1억5000만원)보다 많습니다. 2020년 기준이고 매년 임금이 오르는 것을 고려하면, 봉직의 평균 임금 소득은 현재 연봉 3억원(세후 월 1600만원)에 달할것으로 예상됩니다. 대기업 임원급에 해당하는 소득입니다.
2021년 기준 국내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6명으로 OECD 평균(3.7명)보다 적다. <보건복지부, OECD>
정부가 밝힌 바처럼 국내 의사 수는 부족한 편입니다. 국내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6명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3.7명)보다 적습니다. 한국 의사 수는 멕시코 다음으로 적은 편입니다. 오스트리아와 노르웨이는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5.2~5.4명으로 우리의 2배에 달합니다. 의사 수가 희귀해서 상대적으로 고연봉을 누린 측면이 있는 겁니다.

하지만 또 다른 진실도 있습니다.

2021년 기준 국민 1인당 외래 진료 횟수.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보건복지부, OECD>
국민 1인당 연간 외래 진료 횟수는 한국이 15.6회로 OECD 평균(5.9회) 보다 2.6배 많습니다. 위 통계와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은 수치가 나옵니다.

의사 1인당 연간 진료 환자 수는 OECD 평균은 1594.6명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6000명입니다. 연간 근로일수를 토요일까지 포함해서 300일이라고 가정할 경우, 국내 의사는 하루당 20명의 환자를 보는 반면, OECD 의사들은 평균적으로 5명 남짓의 환자를 보는 겁니다. 즉, 우리나라 의사가 하루에 보는 환자 수는 OECD 평균 대비로 봤을 땐 3.7배가 많습니다. 그리고 임금은 OECD 평균 대비 1.6배를 더 벌어갑니다. 환자 입장에선 OECD 평균 대비 절반 가격으로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누리고 있는 겁니다.

美英獨 모두 고령화 맞춰 의대 정원 증원
종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국내 의사는 정원이 통제돼서 고수익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측면에서 봤을 때 정부 주장 대로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게 맞죠.

2021년 기준 의사(전문의) 평균 임금소득. <보건복지부, OECD>
다만 국내 의사들의 노동강도가 OECD 평균 대비 높고(진찰 환자 수 기준으로 3.7배), 이 때문에 환자들도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저렴한 가격에 누릴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나라 의료체계가 세계적으로 봐도 입증될 정도로 괜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비결이죠.

전 세계적인 고령화로 인해 각 나라들도 의사 수를 늘리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영국 정부는 2031년까지 의대 정원을 현행 대비 2배인 1만5000명으로 늘리고, 간호사·기타 의료 전문가도 대폭 충원하기로 했죠. 독일도 1만1752명인 의대 정원을 5000명 이상 증원한다고 지난해 밝혔죠. 미국도 2002년 1만6488명이던 의대 정원을 지난해 2만2981명까지 늘렸습니다.

자본주의의 선봉장 역할을 하는 사모펀드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자금들이 고령화 산업으로 흐르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말한 ‘2000명 증원’은 시대적으로 필요한 게 분명합니다.

의료 이용 수요 줄이지 않으면 의료비만 폭증
다만 국민의 의료 이용 수요를 줄이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입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건강보험은 올해부터 적자로 전환된 뒤 계속 적자 폭이 누적돼서 2032년엔 62조원에 덜하는 누적 적자를 기록할 예정입니다. 2032년 이후에도 적자 폭이 계속 늘어나게 됩니다. 고령화로 인해 의료수요가 더욱 늘어날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건강보험 재정전망. 2032년 누적 적자액이 62조원에 달한다. <국회 예산정책처>
현행 건강보험료율은 7.09%(직장가입자 기준)이고, 법정 상한선은 8%인데요. 적자가 계속 심화될 경우 건강보험료율을 높여야 할 수도 있습니다. 프랑스 독일 일본 등의 건강보험료율은 10~14%에 이르죠.

의대 정원 증원(공급 증대)뿐만 아니라, 국민의 의료 이용 수요를 줄여야(수요 감소) 합니다. OECD 평균 대비 3배나 많은 병상수, 2.7배나 많은 의료 진료 횟수를 제한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의사 수가 많아지는데도 국민 의료 이용행위가 줄어들지 않을 경우 자칫하면 전체 의료비가 오히려 폭등할 수 있습니다.

정부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최근 대책을 통해 △과다 의료 이용 지역엔 병상 신·증설 제한 △필요도가 낮은 의료에 대해선 본인 부담 상향조정 △외래진료비의 본인 부담 합리화 △혼합진료(도수치료 백내장 등) 금지 등 비급여 관리 강화 △미용 의료 개선(시술 자격 개선) 등을 추진하겠다고 최근 밝혔습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습니다(총론만 있고 각론이 없다는 것은 디테일이 없다는 의미). 감기와 같은 경증 부담률은 대폭 올리고, 심각한 질병이 아닐 경우 경증질환은 의원보다 약국에 가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합니다. 국민의 의료 이용행태를 OECD 수준까진 아니어도 지금의 절반까지 줄여야 합니다. 그래야 적정선에서 의료비 총액을 통제하면서, 의사 수를 늘려 1인당 진찰 횟수도 줄일 수 있습니다. 의사도 ‘중노동-고수입’ 구조에서, ‘적정노동-중수입’ 구조로 바뀔 수 있습니다.

의대 정원 확대로 의사단체들이 집단행동에 나설 준비를 하는 가운데 12일 서울 시내 한 대형 병원에서 의사들이 오가고 있다. 2024.02.12 [김호영기자]
오늘 내용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한국 의사의 고수입은 의대 정원 통제에 따른 의사 수 부족 + OECD 평균 대비 2.7배에 달하게끔 국민의 의료이용 행태가 복합적으로 나타난 결과다.

2. 의대 정원 증원은 미국 영국 독일 등 사례만 봐도 필요하다. 의사 절대 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3. 다만 지금과 같은 의료 이용 행태를 방치할 경우, 2032년이 되면 건강보험 누적 적자액이 62조원이 될 예정이다. 의사 수를 증원한다고 하더라도, 또 한편으로는 국민 의료 이용을 지금보다 줄여야 한다. 그래야 고령화 시대 건강보험이 지속 가능하다.

4. 정부는 의료 이용을 줄이는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정책 방향은 총론에서 맞다. 세부 디테일을 어떻게 정하느냐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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