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언어혁명' 꿈꿨던 김수경의 사랑과 좌절

조태성 2024. 2. 1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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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번역 출간
한자 폐지와 한글 풀어쓰기를 지향했던
월북한 천재 언어학자 김수경 생애 복원
한글민족주의의 원형 확인해볼 수 있어
1998년 48년 만에 평양에서 재회한 김수경(왼쪽)과 부인 이남재. 한국전쟁 당시 길이 엇갈리는 바람에 부인과 4명의 자녀는 남한에 남았고, 이후 캐나다로 이민 갔다. 이남재 여사는 이화여전 출신으로 이희승의 제자이기도 했다. 푸른역사 제공

월북한 언어학자 김수경(1918~2000). 그가 남한을 택했다면 우리는 지금 그의 이름을 'ㄱㅣㅁ ㅅㅜㄱㅕㅇ'이라 쓰고 있을까. 한글은 모아쓰기가 원칙이지만, 한글의 독창성이나 과학성을 강조하는 이들 중에는 여전히 영어의 알파벳처럼 풀어쓰기-kim sookyung처럼-를 했어야 했다는 이들이 있다. 표기법을 바꾸는 순간 들게 될 엄청난 비용과 혼란을 감안할 때 이제 와서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당대 최고의 언어천재 김수경의 복원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은 바로 그 사람, 그러니까 '한자 없는 풀어쓰기 시대'를 예비했던 김수경의 일생을 다룬 첫 평전이다. 저자는 이타가키 류타 일본 도시샤대학 교수. 캐나다에서 우연히 김수경의 딸을 만났던 인연이 이 책으로 이어졌다. 김수경과 아내 이남재 등 가족과의 개인적 삶, 그리고 언어학적 연구 내용을 씨줄과 날줄로 삼아 8년간 써내려 갔다.

1986년 김수경이 아내 이남재에게 보낸 편지의 서두 부분. 남쪽에 남은 이남재는 괜한 의심을 피하기 위해 남편을 사망처리하고 캐나다로 이민 간다. 북쪽에 남은 김수경 또한 괜한 의심을 피하기 위해 재혼한다. 분단은 그러했다. 푸른역사 제공

김수경은 천재였다. 경성제대 철학과를 거쳐 도쿄제대 대학원에서 언어학을 공부했다. 10여 개 언어를 다룰 줄 알았다. 당시 일본 최고의 언어학자 고바야시 히데오는 패전 뒤에도 김수경을 그리워했다. 김수경의 제자들은 서로 다른 언어로 된 여러 권의 원전을 한자리에 펴두고선 그 자리에서 직독직해하며 강의하던 스승의 모습을 기억한다. 이런 재능 때문에 일찌감치 김일성대학 교수가, 곧이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과학원에서 황장엽(1923~2010)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간부가 됐다.


일제하 언어혁명을 꿈꾸었던 민족주의자

암클, 언문 등으로 천대받던 한글이 부상한 건 일제 식민시기다. 우리 민족만의 그 무엇에 대한 열망이 들끓어 오르면서 민족, 혼, 얼 같은 개념은 한글과 붙어 다녔다. 광복 이후엔 더 강력한 관념이 됐다.

북한 인민위원회 간부들의 단체사진. 앞줄 오른쪽 네 번째가 김일성, 그 옆에 안경 쓴 이가 김두봉으로 알려져 있다. 김두봉은 언어학자이기도 했지만 의열단 등에 관여한 탓에 정치적 영향력이 컸다. 결국 숙청당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 뿌리엔 주시경(1876~1914)이 있었다. 주시경의 남한 제자가 최현배(1894~1970), 북한 제자가 김두봉(1889~1960)이다. 이들 모두 풀어쓰기, 한글 전용론 등을 주장했다. 최현배의 주장은 남쪽에서 지나치게 이상적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차차 깎여나갔으나, 북한에선 상황이 좀 달랐다. 김두봉은 북조선노동당 위원장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을 맡은 핵심 인물이었다. 그의 정치적 뒷받침에다 천재 김수경이 있었으니, 북한에선 한글민족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실현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조선 혁명에 몸 던진 한 언어학자의 조용한 흥분

김수경 등이 작업해 1948년 내놓은 '조선어 신철자법'은 바로 그 내용이다. 한자어는 차차 없어질 것이다, 중국어 표기를 위한 모아쓰기 대신 풀어쓰기를 해야 한다, 풀어쓰기를 하려면 의미를 가진 단위는 하나의 형태로 고정해야 한다, 이 형태주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절음부 등을 만들어야 한다 등의 대원칙이 도출됐다. 두음법칙 폐지 등 북한식 표기법의 뿌리를 알 수 있다.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이타가키 류타 지음·고영진, 임경화 옮김·푸른역사 발행·552쪽·3만 원

1949년에 쓴 글에서 김수경은 이렇게 밝혔다. "바로 이 순간을 포착하여 우리들의 리성(이성)으로 도달한 그 정연한 론리적(논리적) 체계를 철자법의 전부면에 걸치어 일관하게 실시한다면 종래의 불합리한 점을 시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장차에 있어 우리들의 언어와 문자를 진정으로 우수한 물건으로 무한히 발전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저자는 이 문장을 두고 "상아탑을 벗어나 '어학적인 올바름'이 '정치적인 올바름'과 연결되어 조선의 혁명사업으로 이어지고 있는 현장에 몸을 던진 한 언어학자의 조용한 흥분과도 같은 느낌"이라고 써뒀다.


1960년대 침묵에 들어간 김수경

김수경의 꿈은 곧 무너졌다. 김두봉은 종파사건에 연루돼 1950년대 말 숙청됐다. 1967년 주체사상을 내세운 김일성은 서양 이론을 많이 참조하고 언어혁명을 주장한 김수경의 주장을 내친다. 김수경은 연구와 무관한 중앙도서관 사서로 좌천된 뒤 1980년대까지 기나긴 침묵에 들어간다.

1986년 김수경이 아내 이남재에게 보낸 편지 속에 동봉한 사진. 1960년대부터 침묵했던 김수경은 이쯤부터 서서히 복권되기 시작한다. 푸른역사 제공

혹자에겐 이 책이 이제는 사라져버린 한글의 가능성에 대한 하나의 메모로도, 남북한 언어의 이질성이 그리 크지 않다는 약간은 뻔한 다독임으로도 읽힐 수 있다. 비극적 이산가족사에 주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주적 민족국가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언어학 연구를 어떻게 굴절시키는지, 그 관념에서 지금의 우리 또한 얼마나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는지, 밉든 곱든 수백 년간 어떤 방식으로든 유통된 언어를 급격히 바꿀 수 있다고 어떻게 믿을 수 있는지, 여러 생각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조태성 선임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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