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평범하지 않았던 ‘논란 제조기’···“멋진 여정이었다” 쿨한(?) 굿바이 인사 남긴 클린스만
마지막까지 ‘도대체 어떤 멘털을 가졌을까’를 궁금하게 만드는 행보였다. 16일 오전 10시 서울 신문로 대한축구협회에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의 주재로 긴급 임원회의가 열렸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의 경질 여부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약 2시간30분에 걸친 회의가 끝났고, 축구협회는 약 2시간 뒤 오후 2시40분에 정 회장의 공식 발표를 예고했다.
그런데 클린스만 감독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먼저 경질 사실을 암시하는 글을 올렸다. 마지막 인사였다. 클린스만 감독은 대표팀이 모인 사진과 함께 “모든 선수와 코치진, 모든 한국 축구 팬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아시안컵 준결승까지 갈 수 있도록 응원해주셔서 고맙다. 준결승전 전까지 지난 12개월 동안 13경기 무패 행진과 함께 놀라운 여정이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계속 파이팅”(Keep on fighting)이라고 대표팀을 응원하는 말까지 덧붙였다.
공식 발표에 앞서 클린스만 감독이 팀을 떠나는 것을 직접 알린 것에 대해 대표팀 관계자는 “정 회장님이 회의가 끝난 뒤 클린스만 감독과 통화한 것으로 안다. 공식 발표에 앞서 예의상 본인에게 먼저 설명하는 절차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전날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회가 아시안컵에서의 전술적 준비와 선수단 관리 실패, 재임 기간 적은 국내 체류 기간에 등을 이유로 클린스만 감독의 교체를 건의했다. 클린스만 감독 역시 어느 정도 자신의 운명을 짐작하고 있었던 듯하다. 협회가 회의 종료 시점으로 알린 시간과 클린스만 감독이 SNS를 업데이트된 시간의 차이가 크지 않다. 게다가 클린스만 감독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경질 소식에도 너무나도 쿨한(?) 굿바이 인사를 남겼다.
지난해 2월 대표팀 사령탑으로 부임한 뒤 클린스만 감독은 늘 논란과 함께였다. 전술적 역량 부족도 문제였지만, 비판 여론을 아랑곳하지 않는 즉흥적이면서 고집스런 태도도 늘 지적받았다. K리그 선수들을 보는 시간 보다 잦은 미국·유럽 출장, 대표팀 사령탑에 온전히 집중하기 어려운 많은 외부 활동에 비판이 이어졌음에도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했다. ‘세계적인 공격수 출신이라 멘털이 좋은 것 같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이미 클린스만 감독의 독특한 성향을 경험한 미국이나 독일 매체들은 “논란에 익숙한 감독”이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지난해 9월 웨일스와의 친선경기에서는 실망스런 경기 내용에도 불구하고 상대 선수의 유니폼을 받고 인터뷰한 상식 밖의 행동이 논란이 됐다.
결국 우려대로 클린스만 감독과 한국 축구의 동행은 채 1년을 채우지 못했다. 한국 축구는 64년 만의 우승을 노린 아시안컵에서 4강에서 탈락했다. 16강 사우디아라비아전, 8강 호주전에서 극적인 승부를 연출하며 준결승에 올랐지만, 매 경기 졸전이 이어졌다. 역대 최고 전력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대표팀은 6경기를 치르면서 매 경기 실점하며 무려 10골을 허용했다. 한 수 아래 상대로 여겨졌던 요르단에도 유효슈팅을 하나도 만들어내지 못한 채 역사상 처음으로 패했다. 참사로 기억될 만한 패배의 현장에서도 클린스만 감독은 마치 다른 별에서 온 듯한 미소와 환한 표정으로 국민적 분노를 유발했다.
성난 여론을 마주한 귀국 인터뷰에서도 여유있는 웃음을 보였고, ‘사퇴 의사가 있나. 계속 대표팀을 이끌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는 날선 취재진의 질문에도 미소와 함께 “나이스 퀘스천(좋은 질문이다)”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아쉬움 보다는 “준결승까지 진출한 것을 실패라고 말할 수는 없다”, “지난 1년 동안 성장하면서 새로 발견한 부분도 있다. 대표팀이 옳은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등의 거리감 있는 평가도 거리낌없이 내놨다.
그는 또 ‘재택(원격) 근무’ 논란으로 시달리는 상황에도 “내가 일하는 방식에 대해 지속적으로 말하고 있지만 국가대표팀 감독은 출장을 비롯한 여러 업무를 프로팀 감독과는 다른 방식으로 해야 한다. 많은 지적이 나오는 것을 알고 있고 그 의견을 존중하지만, 제가 일하는 방식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눈치 없는 고집을 이어갔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 대회를 분석하겠다”던 클린스만 감독은 이틀 뒤에 거주지인 미국으로 떠나 사퇴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클린스만 감독은 2019~2020시즌 도중 헤르타 BSC(독일) 사령탑에 부임했다가 시즌이 진행 중이던 2월 구단과 상의도 없이 SNS 라이브 방송을 통해 사임을 발표해 전 세계적인 논란의 주인공이 됐다. 당시 그 동발 행동으로 클린스만 감독은 한국 대표팀 지휘봉을 잡기까지 약 3년간 공백기를 가져야 했다.
이정호 기자 alp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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