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채린의 뉴스어디] 모르는 게 나의 경쟁력, 영원히 몰라버리자
[미디어오늘 박채린 뉴스어디 기자]
기성 언론사 기자의 삶이 궁금할 때가 있다. 비영리 독립언론인 뉴스타파와 단비뉴스에서 취재를 배웠고, 시민단체에서 언론계에 첫발을 내디뎠으며, 비영리 매체 '뉴스어디'를 창간해 기자가 됐다. 한국 대다수 기자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기자가 됐다 보니 염탐하듯, 공부하듯 기성 매체를 기웃거린다. 출입처가 있는 기자의 취재는 무엇이 다른지, 새벽에 경찰서나 파출소를 돈 뒤 보고하는 훈련은 사건을 파악하는 눈을 키워주는지, 얼굴도 본 적 없는 다른 회사 기자를 선후배라 부르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물어본 적 있다.
최근에도 궁금한 게 생겼다. 지난 1월11일 가습기 살균제 주원료의 유독성을 인정한 서울고등법원의 판결 후 며칠 뒤 살균제 피해자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솔직히 말이죠, 그 언론사가 그 기사가 남아있다는 걸 아직 모를까요?”, “그게 아직도 (정정 등이) 안 된 게 남아있다는 건 성의의 문제일까요, 우습게 여기는 걸까요?” 피해자가 말하고 있는 건 가습기 살균제를 두고 “인체에 무해하다”, “온 가족 건강을 돕는다”라고 적은 홍보성 기사다. 필자도 궁금했지만 피해자와 함께 추측해 볼 뿐이었다. 정부가 인정한 공식 사망자만 1258명에 이르는 사건을 일으킨 상품을 홍보하고 있는 기사의 존재를 언론사가 정말 모르는지 알고 싶었다.
언론사는 정말 모르고 있었다. 먼저 홍보성 기사를 써본 경험이 있는 일간지 기자에게 물어봤다. “자기가 발제해서 쓴 것도 아니고 보도자료 받아쓴 거니 기억 못하고 있을 가능성 100%다. 바이라인도 없으면 더 신경 안 쓴다.” 살균제 홍보성 기사를 방치해두고 있는 언론사들은 이렇게 답했다.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들이 퇴사해 연락이 안 된다”, “살균제 피해가 드러나기 전 보도자료 기반으로 작성한 것”, “실무적 실수로 미처 삭제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 뉴스어디가 취재하기 전까지 어떤 언론도 이 기사에 대해 미리 검토하고 고민한 흔적은 없었다. 몇몇 언론사는 “논의 중”이라고만 하거나 답을 하지 않았다.
고민한 시간도 아까웠다. 언론 감시 시민단체에서 일했던 시절 “언론 현실을 모르고 비판만 한다”, “언론 혐오만 키운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기자가 아닌 시민 관점에서 기사를 보려 했던 노력은 외면당한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한국 언론을 너무 모르고 과한 비판을 하고 있진 않은지 자기검열했다. 가습기 살균제 홍보성 기사 취재 때도 그랬다. 정보 전달은 언론의 중요 기능 중 하나이고 홍보성 기사도 그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 기사가 하루에도 수백, 수천 개 쏟아지는데 하나하나 살피고 기사를 써야 한다는 주장이 현실성이 있을까. 그런데 그런 고민이 무색하게 언론사는 살균제 홍보 기사의 존재도 모르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해명을 내놓고, 취재를 시작하자 관련 기사를 '빛삭(빛의 속도로 삭제)'했다.
“모르는 게 '뉴스어디'의 경쟁력이다.” 미디어 감시 매체 뉴스어디 창간을 앞두고 '언론계에 대해 모르는 게 많은데 미디어 감시를 잘할 수 있을까' 걱정한 적 있다. 그러자 한 기자가 내게 뉴스어디의 경쟁력은 딱 하나인데, 그게 바로 “언론계를 모르는 것”이라고 했다. 기성 매체 기자로 일한 뒤 이런저런 현실을 다 알고 있다면 되레 비판할 수 없을 것이란 뜻이다.
아직 어디까지 몰라도 되고, 알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가습기 살균제 홍보성 기사를 취재하며 “모르는 게 뉴스어디의 경쟁력”이라는 말을 다시 한번 곱씹는다. 언론인 스스로가 만든 언론 윤리에 맞지 않고, 그 기사로 인한 피해자가 있고, 뉴스어디에는 절대 쓰고 싶지 않은 기사라면 “언론 현실 모르고 비판한다”는 지적을 받아도 “모르는 게 뉴스어디의 경쟁력”이라는 말을 되새기며 너무 많이 고민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독자와 후원자의 평가를 받자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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