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싸게 주고 산 내 그림이 혹시 위작은 아닐까?
(시사저널=조명계 미술시장 분석 전문가(전 소더비 아시아 부사장))
많은 사람이 미술 작품 구입에 관심을 갖는 시대가 왔다. 하지만 미술품은 까다롭게 구입해야 한다. 슈퍼마켓에서 음식 재료 고르듯 구입할 수 있는 상품이 아니다. 환금가치를 보유한 미술품은 대부분 '세컨더리 마켓(미술품 재판매 시장)'에서 구입한다. 다른 사람의 손을 거쳐 평가받은 작품이라 주의할 점이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도 경매 회사나 상인들은 하나같이 "(미술품을) 사두면 좋습니다. 좋은 가격입니다. 값이 올라갑니다" 등의 말만 되풀이한다. 소비자가 미술품을 구입할 때 고려해야 할 요소가 있다. 작품의 가치와 위작 문제를 함께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소비자는 이 사안에 대해 확인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구입 전에 전문가 의견 받는 것이 안전
피카소 유화를 들고 찾아온 한 컬렉터가 내게 말했다. "(작품을 보고) 교수님 딱 보면 모르세요?" 마음속으로 답을 해줬다. "모르긴. 딱 보면 가짠데." 필자는 작품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을 할 수 없다. 해서도 안 된다. 그저 피카소 작품에 첨부된 서류들을 검토한 후 작품을 소장자 스스로 확인하는 순서와 방법 등을 자세히 알려줬다. 당시를 회상하면, 참 답답했다.
홍익대 재직 시절, 연구실로 한 분이 찾아왔다. '쉬베이훙'의 《분마도》 한 점을 갖고 왔는데, 낙관도 명확하고 준마를 그린 작품이었다. 우선 붓 선을 따라 발생하는 먹의 잔존량을 100배 고해상 돋보기로 확인했다.
위작 의심은 없었다. 쉬베이훙의 '말' 그림은 워낙 유명한 작품이어서 그런지 기분까지 좋아졌다. 그러나 중국 현지에 확인해본 결과, 해당 작품은 현재 중국 모 국립미술관에 걸려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 작품은 '모작(남의 작품을 그대로 본떠 만듦)'이었던 것이다. 지난 35년 동안 접한 수많은 미술품, 특히 이미지 파일이 저장되기 시작한 이후부터 위작은 족히 2000여 점이 넘는다. 워낙 정교해 일반인들은 분간하지 못한다. 중국 도자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얼마 전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를 놓고도 진위 논쟁이 벌어졌다. 위작 여부를 판단할 아무런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법 기관이 위작을 진품이라고 판단했다. 판사가 천경자 그림을 보기나 했을까. 알기나 할까. 어딘가 찜찜하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박수근·김환기·이우환 등의 위작 시비 사건에 결코 자유롭지 못한 국내 미술계다. 미술품 위작을 만드는 행위를 현행법으로 막기 어렵다. 소비자 스스로 피해 가야만 하는 현실이다. 미술품 유통법은 아직도 계류 중이다. 미술시장 자체가 법에 의해 제어당하는 것을 싫어하므로 법 제정에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또 미술품 유통법으로 무얼 제어할지도 의문이다.
미술품 도난은 형법으로 다스리면 되지만, 위작은 막을 길이 없다. 미술품에 서명을 넣은 행위만 법에 저촉된다. 서명이 없는 작품을 파는 것은 범죄가 아니기 때문이다. 작품에 첨부된 보증 서류 없이 구입하는 경우 파는 자는 로또 당첨, 사는 사람은 지뢰를 밟은 것이다. 세상 언어로 복불복이다. 결국 사는 사람이 주의해야만 한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이자 20세기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김환기의 작품 24%가 위작이라는 보도가 이미 10년 전에 나왔다. 김환기 작품의 익숙한 소재인 달, 항아리 등을 합성해 새로운 김환기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20년 전에 한 갤러리 오너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당시 시장을 뜨겁게 달궜던 한 화가 작품을 너도나도 구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화랑 주인은 어렵게 화가를 만나 작품 하나를 받았다. 20~50호짜리 작품 대부분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가져갔고, 100호짜리 큰 작품 하나만 남았다. "이 작품이라도 가져가야지" 하고 들고 나왔는데, 화가의 작품이 대부분 동일한 주제로 화폭에 꽉 차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는 100호짜리 작품을 가위로 4등분했다. 그러고선 서명을 그럴듯하게 집어넣으니 20호짜리 네 점이 만들어졌다. 집에 걸기에 적합한 사이즈의 작품들이었다. "이 잘린 작품은 진작일까, 위작일까?" 갤러리 오너의 질문에 필자는 웃었다. 말할 것도 없다. 100% 위작이다. 지금도 그 작품들이 시장에 돌아다니고 있는지 모르겠다. 왜 위작을 만들까 궁금하다. 위작 한 점을 만들고, 상대방이 잘 넘어가기만 하면, 로또 당첨과 비슷한 효과라 계속 만들어내는 것일까.
위작을 연구하다 보니 미술사라는 학문도 생겼다. 지금 이 순간에도 위작은 만들어지고 돌아다닌다. 바스키아, 피카소, 워홀 등 필자가 지난 석 달간 리서치를 의뢰받은 유명 작가 작품만 수십 점이 넘는다. 모두 위작이다. 제언한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구입하기 전에 반드시 전문가에게 의뢰해 의견을 받아야 한다.
미술 작품에 따라오는 보증서들
지금도 수많은 의혹의 미술품들이 돌아다닌다. 해외에서 상당수 명작까지 유입되고 있다. 이제 미술품 평가를 알아보자. 평가에는 두 종류가 있다. 진품 감정과 작품 가치 평가다. 진품 감정은 작품의 진위만을 가르는 작업이다. 작품 가치 평가는 진위와는 상관없이 현재 가치를 평가해 주는 일이다. 국내에는 이들 작품을 평가하고, 리서치해줄 전문가가 극히 드물다. 한 예로, 오래된 위작이지만 가치를 보유하는 경우가 있다. 위작이라고 해도, 당시 작품에 쓰인 '종이'의 가치가 있으므로 이에 준하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증서도 발급한다.
두 가지 모두 고도의 지식과 경험을 필요로 한다. 그렇지만 감정가의 실수가 발생하고, 시장과의 담합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평가사 또한 사람이므로 자기 마음대로 평가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신뢰 있는 진품감정서가 무엇보다 필요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미국 미술시장의 경우 1만 달러 이하 작품 거래에는 구매자가 보증서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략 5만 달러가 넘어가면 대개 보증서를 요구한다. 그런데 이 보증서라는 것이 구입한 갤러리의 보증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티스트의 확인서를 말하는 것이다.
생존 작가의 경우에는 얻을 수 있지만, 사망한 아티스트의 경우에는 지명도 있는 감정인으로부터 보증서를 확보해야 한다. 그래야 훗날 재매각하기가 용이하다. 대부분은 갤러리가 발급하는 보증서를 수령한다. 그러나 이는 구매자가 심리적인 안도감만 느낄 뿐이지, 작품의 절대 보증용은 아니다. 단지 영수증 역할을 하는 것뿐이다. 따라서 어디까지나 평가를 담당하는 인물 혹은 기관의 신용도와 평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연예인·유튜버 ‘스캠 코인’ 연루 의혹 일파만파…대체 뭐길래 - 시사저널
- “손흥민, 요르단전 전날 선수들과 언쟁 중 손가락 탈구” - 시사저널
- ‘위약금 70억?’ 커지는 ’클린스만 책임론’에 코너 몰린 정몽규 - 시사저널
- 소화제 달고 산다면?…소화불량 잡는 건강차 3 - 시사저널
- 제부도 풀숲에 신생아 시신 버린 男女…차 트렁크에 넣고 다녔다 - 시사저널
- “부모님 가슴에 대못”…女 26명 불법촬영 경찰관 감형 - 시사저널
- 출소 한 달 만에…설 새벽 만취해 50대母 살해한 30대 - 시사저널
- ‘한 지붕 두 가족’…민주당, ‘문명대전’ 전운 고조 - 시사저널
- ‘변기보다 박테리아 많다?’…주말 청소에서 빼놓으면 안되는 물건 3 - 시사저널
- ‘과일은 살 안쪄’…의외로 다이어트 방해하는 식품 3가지 - 시사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