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거대한 악어가 나타나…미술계 주목 받는 선주민 예술[영감 한 스푼]
태초에 인간이 땅을 밟으며 기나긴 여정을 떠났는데, 땅끝에서 바다를 만나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때 바다에서 거대한 악어가 나타나 자신의 등을 밟고 바다를 건너가도록 다리가 되어주었다고 합니다.
악어는 인간에게 도움을 준 대가로 자신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여기엔 조건이 있었습니다. 아직 어린 동물을 바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악어에게 바칠 먹이가 부족해진 인간은 새끼 악어를 거대한 악어에게 주고 맙니다.
화가 난 악어는 바닷속으로 가라앉아 버렸고, 이때부터 인간은 바다를 건너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져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의 중앙 파빌리온을 벽화로 장식할 ‘후니 쿠인 예술가 운동’(MAHKU, Movimento dos artistas Huni Kuin)‘의 작품 속 이야기입니다. 2주 전 뉴스레터에 이어 베니스 비엔날레의 이야기를 더 전해드립니다.
대안 찾는 국제 미술계
선주민 예술은 최근 국제 미술계에서 새로운 형태의 미술을 찾으려는 움직임에 따라 주목받고 있습니다. 뉴스레터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던 북미의 이누이트 예술, 북유럽의 사미족 예술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들은 유럽과 미국 중심의 미술사가 규정하는 예술이 아니라는 점에서 신선하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후니쿠인 예술가 그룹의 작품에서도 볼 수 있듯 기존 미술사에서 ‘나이브 아트’라고 여겨졌던, 아카데미 예술의 규칙에서 완전히 벗어난 조형 언어가 첫 번째 특징입니다. 이런 조형 언어를 통해 어떻게 다른 형태의 예술이 가능할 수 있을지를 가늠해 보려는 움직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점은 이들이 세계를 보는 시선입니다. 후니 쿠인의 전설은 세계가 원래는 하나로 연결되었다는 인식을 보여줍니다. 서구 중심적 사고가 모든 것을 분류하고 분석하는 것과는 다른 접근 방식이죠. 이런 세계관은 기후 위기나 도시에서 사라진 커뮤니티와 연대 등 여러 현대사회의 문제에 관한 대안으로도 여겨집니다. 시스템이 고장 난 현대 사회의 다른 방식을 찾아보려는 움직임이지요
손에서 손으로 내려온 예술
그러면서 페드로사는 텍스타일(자수) 작업은 그간 예술에서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는데, 이것이 주로 여성의 일이며 공예적인 것이고, 손기술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오히려 다시 한번 제대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합니다.
또 손에서 손으로 내려온 예술은 바꾸어 말하면 그것이 역사나 문자로 기록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짚어볼 수 있습니다. 그간 미술의 역사가 시각 언어가 아닌 조르조 바사리의 책이나 왕실의 기록 등 텍스트가 중심이 되어서 쓰였다면, 이제는 그것을 넘어 기록되지 않은 것까지 편입해서 넓게 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점에서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전의 중앙 파빌리온 외벽은 ‘후니 쿠인 예술가 운동’이 대형 벽화로 장식하게 됩니다. 또 국제전의 시작은 뉴질랜드 마오리족 여성 예술가로 구성된 ‘마타아호 콜렉티브’의 대형 설치 작품이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간 집중 조명된 ‘북반구’를 벗어나 남미 오세아니아, 아시아 등 변두리의 지역을 더 자세히 본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관건은 이들 예술이 정말로 ‘나이브 아트’를 넘어 어떤 대안을 제시해줄 수 있느냐라고 생각합니다. 여기부터는 정말로 좋은 큐레이팅으로 승부를 걸어야 할 영역이겠지요. 물론 이번 전시에는 잉카 쇼니바레 등 유명 작가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뚜껑을 열어보면 어떤 모습이 나올지, 이후 뉴스레터에서 더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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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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