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스트는 웃을 줄 모른다? 움베르토 에코가 놓친 사실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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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가 10살 때 "모든 청소년들에게 강요된 일종의 자유 참가 경연 대회"가 열렸다.
에코는 '무솔리니의 영광과 이탈리아의 불멸의 운명을 위해 우리는 목숨을 바쳐야 하는가'라는 주제를 잡아, 뻔한 말을 늘어놓고 "그렇다"고 결론지어 1등 상을 받았다.
미국 가서 강연할 때 에코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에코가 파시즘에 반대하는 지식인임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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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농담
움베르토 에코가 10살 때 “모든 청소년들에게 강요된 일종의 자유 참가 경연 대회”가 열렸다. 에코는 ‘무솔리니의 영광과 이탈리아의 불멸의 운명을 위해 우리는 목숨을 바쳐야 하는가’라는 주제를 잡아, 뻔한 말을 늘어놓고 “그렇다”고 결론지어 1등 상을 받았다. “나는 눈치 빠른 소년이었으니까요.”
미국 가서 강연할 때 에코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청중은 웃었을 것이다. 에코가 파시즘에 반대하는 지식인임을 알기 때문이다. 에코는 소설 ‘장미의 이름’과 에세이 ‘프란티에게 보내는 찬사’에서, 파시즘에 순응하는 자들은 웃을 줄 모른다고 꼬집었다.
그런데 에코 선생이 놓친 사실이 있다. 나치도 웃을 줄 안다는 것이다. 독일의 강제노동 수용소 대문에는 “노동이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는 문구가 걸려있었는데, 수용소에 끌려오는 좌파를 비웃는 나치식 농담이었다. 좌파가 평소에 노동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이런 농담이 재미있나? 나는 거북하다. 하지만 나치는 웃었다. 그래서 나는 궁금하다. 웃음은 파시즘에 맞서는 무기인데, 파시스트도 웃을 줄 안다. 두 웃음을 우리는 어떻게 구별할까.
뇌 과학자 빌라야누르 라마찬드란의 글(책 ‘라마찬드라 박사의 두뇌 실험실’)에서 실마리를 찾는다. 어떤 사람이 거만하게 걷다가 바나나 껍질에 미끄러져 넘어지는 광경을 보았다고 하자. 그가 안전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는 웃음을 참지 못할 거라고 라마찬드란은 썼다. 반면 ”그의 머리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면 웃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를 돕기 위해 달려갈 것”이라고 했다. 넘어져 다치지 않았을까. 보통 사람은 걱정이 앞선다. 공감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고민 없이 웃음을 터뜨릴지 모른다. “바나나 껍질 밟고 넘어지라고, 누가 칼 들고 협박했냐”며 비웃을 것이다.
파시스트는 공감과 연민을 위선이라며 비웃었다.그러면서도 세상에서 자기네 집단이 가장 우월하지만 '역차별'을 당하기 때문에 가장 피해 보는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남의 고통을 보고도 웃었다. 반면 남이 자기네를 두고 웃는 일에는 발끈했다. 파시스트가 권위를 앞세우는 이유다. 에코는 그런 권위를 흔드는 웃음의 힘을 긍정했다.
어린 에코의 글짓기 이야기를 읽고 나는 어머니 이야기를 떠올린다. 어머니 초등학생 시절, 학교에서 강제로 ‘이승만의 생일을 축하하는’ 글짓기를 시켰다고 한다. 어머니는 영리한 분이셔서 뻔한 말을 써서 큰 상을 받았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생각하며 웃어야 할지 찌푸려야 할지 나는 잘 모르겠다.
올해 큰 선거가 다가온다. 많은 풍자가 쏟아질 터인데, 어떤 농담은 유쾌하고 어떤 농담은 불편할 것이다. 지지하는 쪽에서 나온 유머라고 해도, 공감과 연민을 저버린 농담은 싫을 것 같다.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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