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림에서 하룻밤…누구도 다치지 않는 공존을 위해 [ESC]
친구들 ‘마운틴가이드’ 자격증
숲 관리하며 등산문화 조성 중
‘자연과 연결된 삶’ 찾아 산으로
땅거미가 서서히 내리깔리던 산속은 이제 완전한 암흑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휴대전화의 배터리는 10%쯤 남아 있었으나 진작에 먹통이 됐기에 무용지물이었다.
혼자 마을로 내려가겠다고 나설 수도 없었다. 눈앞이 온통 수풀로 우거져서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돌아가자고 떼를 쓰는 나에게 아랑곳하지 않고 친구들은 캠프사이트를 만드는 데 여념이 없었다. 발로 땅을 고르게 다져가며 파이어존을 만든 뒤 주변에 마구잡이로 떨어진 고사목과 낙엽 등을 주워 와 불을 지폈다. 주변은 금세 따뜻하고 환해졌다.
원시림 드나들어도 괜찮을까
유진은 나에게 현재 서 있는 위치에서 마음에 드는 나무를 선택하라고 했다.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침대를 준비해주겠다고. 그러면서 유진이 배낭에서 꺼낸 것은 해먹(기둥이나 나무 사이에 달아매어 침상으로 쓰는 그물)이었다. 텐트도 아닌 해먹이라니. 캠프사이트를 만들고, 순식간에 땔감을 구해 불을 지피고, 튼튼한 나무 기둥 두 개를 골라 능숙하게 해먹을 달아매는 친구들의 모습은 자연스러웠다. 오랜 세월, 숱한 야영 경험을 통해 우러나오는 자세였다. 친구들은 물과 불, 해먹만 있으면 세상 어디서든 먹고 잘 수 있다고 했다.
이들은 하늘을 지붕 삼고 땅을 이불 삼아 잠드는 자유로운 삶에 대한 경계가 낮았다. 유진과 제시와 아즈리는 나에게 국가에서 공인한 마운틴 가이드 자격증을 꺼내 보였다. 우리가 지금 이 산에 들어올 수 있는 일종의 통행권이었다. 티오만의 산 대부분은 야생 동물 보호 구역으로 지정돼 있기에 일반인이 산행하려면 반드시 마운틴 가이드와 동행해야 했다. “엄청난 프리패스권이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런 험난한 산속에서 어떻게 밤을 보내냐고 정색했는데 갑자기 세상 유일무이한 특권을 얻은 기분이었다.
이들은 오래전부터 티오만 지방정부의 허가 아래 정기적으로 숲을 정찰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해오고 있었다. 관광객이 공식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트레킹 코스를 정비하고 숲의 생태를 돌아보는 것도 이들의 소임이었다. 이날 산행도 표면적으로는 타국에서 건너온 나를 위한 선물로 보였지만 친구들은 몇 해 전부터 지역사회와 협력해 티오만에 등산 문화를 조성하고 있었다. 이번 산행 또한 티오만을 찾은 사람들이 산을 오를 수 있게 작은 길을 닦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언젠가 이 산을 달리는 소규모 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 지독한 밀림을 달린다고? 상상이 되지 않았다. 산을 오르고 달리는 것을 좋아하고 그 길 위에서 만난 우리였기에 정말 흥미로운 이벤트가 될 것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동시에 의구심도 들었다. 원시림에 사람이 드나들어도 괜찮을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우리는 산을, 자연을 어디까지 있는 그대로 두어야 할까? 그리고 어디까지 이용할 수 있을까? 인간과 자연은 어디까지 공존할 수 있을까? 과연 공존 안에 자연 본연의 자리가 있을까? 인간과 자연의 건강한 관계는 어떤 형태일까?
이 시대의 공존이란 애초 인간이 자신의 이기와 편의를 위해 만든 개념인 것만 같다. 이름 그대로 스스로 존재하는 자연에 그동안 인간은 ‘문명’이라는 미명 아래 너무 많은 개발과 파괴를 자행해왔다. 우리가 이 산을 오르고 달려도 될까? 일렁이는 모닥불 앞에서 친구들에게 물었다. 유진, 왜 산을 오르는 거야? 너 원래 잘나가는 국제변호사였잖아. 그리고 제시, 아즈라, 너희는 왜 지금 여기 있는 거야? 나는 어쩌다 이 먼 곳까지 흘러들어온 걸까. 무엇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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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산속의 나, 무한한 존재
냄비에 팔팔 끓인 물에 찻잎을 진하게 우린 뒤 다섯 개의 티타늄 컵에 나눠 따랐다. 비화식 간편 식사 후에 갖는 환상적인 산상 티타임. 컵을 움켜쥔 손에서부터 온몸 구석구석 온기가 퍼졌다. 길고 무료한 밤을 보내려면 천천히 아껴 마셔야 했다. 유진이 말했다. 자신은 어렸을 때 크로스컨트리 선수였다고. “법률 공부를 하고 변호사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달리기와 멀어졌어. 그렇게 20년이 흘렀는데 어느 순간 내가 나와 아주 멀어졌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유진은 2010년부터 다시 산을 달리기 시작했다.
싱가포르에서 은행을 다니던 제시가 산을 찾게 된 이유도 유진과 비슷했다. 일이 너무 많았고 그 속에 자신은 없었다. 이러다가 건강마저 잃을 것 같아 조바심에 산을 오르기 시작했는데 그때 유진과 만났다고 한다. 아즈리가 고향으로 돌아온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산은 흩어져 있던 것들을 이어줬고 사라져가는 것들을 찾아줬다. 나는 어떤가.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산을 오르고 달리면서 나는 비로소 내 삶의 궁극적인 목적을 찾을 수 있었다. 자연과 연결된 삶, 결국 나 자신과 연결된 삶.
그곳이 이러한 야생의 산이라면 더할 나위 없었다. 커다란 원을 기점으로 주변으로 밀어내고 밀려나는 곳이 도시라면, 한줄기로 끊임없이 이어져 있는 산은 모든 곳이 중심이었다. 높이 오른 산에서 나는 한없이 작았으나 그 어느 때보다 무한한 존재였다. 이들이 산을 오르는 이유도 이러한 설명할 수 없는 충만함 때문은 아닐까. 그리고 사랑하는 티오만에 지속 가능한 등산 문화를 만들고 싶은 이유가 아닐까. 산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너 자신이 되라고 전해주고 싶어서. 누구도 다치지 않는 진정한 의미의 공존을 추구하면서 말이다.
지금 몇시쯤 됐을까. 궁금했으나 묻지 않았다. 눈앞에 쌓인 어둠의 결을 헤아리다 보면 알게 되겠지. 날짐승이 다가오지 않게 주변을 대충 치우고 각자의 침대로 돌아가 누웠다. 약속이라도 한 듯 누구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당장 잠들었을까. 아마 모두가 한동안은 같은 하늘을 바라봤을 것이다. 어둠보다 더 짙은 어둠이 스민 나무와 나무 사이로 하늘이 하얀빛을 내고 있었으니까. 어느 순간 잠들었던 건지 누군가의 코 고는 소리에 잠깐 깨어났고 눈을 떴을 때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반딧불이가 소리 없이 허공을 날고 있었다.
글·사진 장보영 등산여행가
스물다섯 살에 우연히 오른 지리산에 매료된 이후 히말라야와 알프스, 아시아의 여러 산을 올랐다. 그러다 산을 달리기 시작했고 산악 잡지도 만들었다. 지은 책 ‘아무튼, 산’은 산과 함께한 청춘의 후일담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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