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프리즘] 마음 정비가 필요할 때

권대익 2024. 2. 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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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수의 마음 읽기]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게티이미지뱅크

의사가 아닌 동료들을 만나 저녁을 먹을 때나 오랜만에 중고등학교 동기를 만나 이야기하다 보면 누군가 한명은 꼭 물어보는 말이 있다.

우선 요즘 정신건강 클리닉을 찾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는지 묻는다. 그 다음엔 어떤 사람들이 오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또,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사람들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이전에는 과도한 스트레스를 오랜 시간 참다가 심각한 우울증상으로 위험한 일을 저지르거나 환청·망상 같은 정신병적 증상 때문에 오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소위 정신과를 방문하는 문턱이 많이 낮아진 것은 사실이다.

직장내 인간관계 때문에 겪는 스트레스로 오는 경우도 많이 있고, 시험 준비나 업무 과다 때문에 적응의 어려움을 느껴 방문하는 학생과 직장인들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학교나 직장에 처음 들어가서 새로 만나는 수많은 동료와의 관계를 어찌할 바 몰라서 오는 경우도 있다.

이들이 호소하는 증상은 아주 다양하다. 오래 전 심한 고부 갈등과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남편 바람기로 인해 ‘화’가 많이 쌓여 있었다는 노년기 여성은 지금은 그런 스트레스가 없는데도 유독 올해 체력이 떨어지면서 심해진 불면증과 분노 조절이 어려워져서 클리닉을 찾는다.

젊은 시절에는 비교적 건강한 마음과 몸으로 짜증과 울분을 다스리면서 살았는데, 나이가 들어 몸이 약해지고 마음도 여려지는 등 ‘회복력’이 약해지면서 신경에 쌓여 있던 화와 울분이 우울과 불안, 분노 폭발 형태로 들고 일어나는 것이다.

아침부터 이유 없는 불안감에 시달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심장이 조이는 증상 때문에 내원한 직장인은 우선 내과에서 심혈관 질환 가능성을 자세히 조사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아무래도 스트레스에 기인한 ‘신경성’ 같다는 말을 들은 뒤에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를 만나기 시작해 공황장애나 불안 증상을 조절하면서 마음 다스리기에 대한 상담을 시작한다.

어떤 직장인은 너무 원하던 직장에 입사해서 정말 열심히 일을 해 오고 있었는데, 직급이 승진되면서 다른 매장으로 옮긴 이후부터 올라오는 불안감과 인간관계의 어려움으로 클리닉을 찾기도 한다.

또, 성인기에 막 접어든 젊은 청년은 학업과 미래 준비를 여지껏 잘해오다가 시험에 합격한 어느 날 문득 ‘내가 이걸 왜 해야 하는지’를 회의하기 시작하면서 오랜 기간 집에 틀어박혀 있다가 부모 손에 이끌려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이들을 만나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우선 그들의 힘든 증상을 줄여 학업이나 직장 일상을 유지할 수 있게 도우면서 왜 이런 증상이 생겨났는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약으로 조절할 수 있다면 증상 평가와 유전 검사 등을 통해 적합한 처방을 하면 되겠지만, 마음 문제로 시작된 증상은 대부분 물리적 치료로 완전히 치료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자면 불안·불면·우울 같은 증상의 70%는 약으로 조절되기 때문에 일상 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 주지만, 나머지 30%는 내 마음을 잘 다스리는 노력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 다른 회복력을 평가하고, 그 분에게 맞는 스트레스 관리법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마음 정비사의 역할이다.

흔히들 병원에 가면 의사가 병을 완치시켜 줄 수 있다고 믿는 분들도 있지만, 실상 그 병을 이겨내는 것은 본인의 체력과 면역력, 그리고 마음 회복력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외과 의사가 악성 종양을 다 들어낸다 하더라도 몸 건강을 회복하는 정도는 개인의 면역력에 따라 다르고, 내과 의사가 약을 잘 처방하고 난 후에는 생활 습관을 조절하면서 그 병을 이겨내는 건 본인 스스로인 것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아무리 정신 분석을 잘 한다고 해도 내담자가 인생을 잘 살아가느냐 문제는 사실 본인에게 달린 것이다.

사람마다 성격이나 체력, 지적 기능 및 역경에 대한 대처법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가장 맞는 스트레스 관리법을 찾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등산이나 걷기 같은 운동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경우도 있고, 음악이나 독서를 통해 해결하는 경우도 있다. 기도나 명상이 가장 잘 듣는다고 하는 분도 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작은 몸의 이상이 있을 때 정비소를 찾듯이 병원을 찾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인생의 전환점이나 역경의 순간에 본인의 마음 상태를 점검하고 적절한 조절법을 찾아내기 위해 마음 정비소를 찾는 것도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는게 좋겠다.

한창수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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