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하루 만에 입금 확인”…목숨 건 대북 송금

KBS 2024. 2. 17.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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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저희 남북의 창 시청자분들이라면 ‘한라산 줄기’라는 말 한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한국에 거주하는 탈북민을 가족으로 둔 북한 주민들을 지칭하는 말인데요.

최근 북한에서는 ‘한라산 줄기’가 경제적으로 가장 여유롭다는 인식이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고 합니다.

바로 한국에 정착한 가족으로부터 돈을 전달 받을 수 있기 때문인데요.

한라산 줄기가 북한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결혼 상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탈북민들은 어떻게 북녘 가족에게 돈을 전할 수 있는 걸까요?

문제점은 없는 걸까요?

탈북민 대북 송금의 현주소를 <클로즈업 북한>에서 자세히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고립된 국가 북한. 우리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지만, 갈 수 없는 땅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곳에 가족을 둔 탈북민만큼은 지속적인 연락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그 매개체는 다름 아닌 ‘대북 송금’입니다.

[임순희/북한인권정보센터 총괄본부장 : "보통 하나원을 졸업하고 한 1, 2년 안에 바로 송금을 시작하는 경향을 가지고 계세요. 평균을 내봤을 때는 현재 거주하고 계신 분들의 60% 가까이는 ‘북한에 송금해 본 경험이 있다.’ 이렇게 응답이 나오고 있습니다."]

탈북민 3만 4천 명 시대, 탈북민 10명 중 6명은 국내 입국 이후 대북 송금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송금 횟수는 연간 1회가 65%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1회 평균 송금 금액은 201만 원에서 300만 원이 가장 높게 나타났습니다.

우리 돈 200만 원이면 북한에서 쌀 약 800kg를 살 수 있는 금액입니다.

송금 목적은 북녘에 남겨진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을 꼽았습니다.

[박현숙/2014년 탈북 : "북한에서는 진짜 강물에 떠내려가서 죽은 돼지도 부패한 것도 끓여다 사람들이 먹거든요. 그런데 한국 국정원, 하나원을 거쳐 나오면서 정말 기름진 음식에 맛난 걸 먹으면 자연히 고향에 두고 온 가족 생각이 나거든요. 그리고 저는 제가 벌어서 가족이 먹고살았는데 제가 훌쩍 사라져 버리면은 두고 온 가족의 경제 활동은 엉망이거든요. 그러니까 거기에 대한 책임감은 항상 따르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탈북민 대북 송금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걸까요?

보통 송금은 탈북자 출신 국내 브로커와 중국 내 브로커 그리고 북한 내 브로커까지. 총 세 단계를 거치는데요.

탈북민들이 국내 브로커의 계좌로 돈을 보내면, 각각의 브로커들이 수수료를 제한 금액을 북한 가족들에게 전달하는 겁니다.

[박현숙/2014년 탈북 : "(국내 브로커는) 북한 탈북자인데 그분이 북한 사람들을 데리고 오는 탈북 브로커 역할을 했어요. 그 사람은 브로커를 하다 보니까 북한에 자기 인맥이 있는 거예요. 제가 돈을 보내겠다고 연락해서 그 사람한테 계좌번호를 받아서 거기다 돈을 보냈어요. 한국 돈으로 보내면 그게 중국에 가서 위안화로 교체돼서 북한에 중국 돈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전달하는 거는 북한에 있는 돈을 전달해 주는 사람이 제 가족한테 직접 가서 전달해 주는 겁니다. "]

송금에 걸리는 시간도 대단히 짧습니다.

한국에서 보낸 돈이 당일 안에 북한 가족에게 전달된다는 응답 비중은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게다가 돈을 보낸 탈북민은 가족과의 전화 통화를 통해 수신 여부도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박현숙/2014년 탈북 : "우리(북한 가족)는 중국 전화기로 국제 전화를 하거든요. 그러면은 (북한 가족이) 얼마 돈을 받았다. (나는) 얼마 보내는데 엄마 돈 받았소? 하면 (북한 가족이) 알았다 하고서 얼마 받았다고 또다시 맞전화(직접 통화)를 하거든요. 그러면서 (브로커의) 신뢰감이 계속 쌓이거든요."]

북한 거주 당시 송금을 받은 경험이 있는 탈북민도 전화 확인은 필수였다고 이야기합니다.

[김순영/2018년 탈북 : "(탈북민 가족과) 전화로 확인해야만 내가 돈을 받고 그러죠. 브로커가 전화로 확인시켜줘요. (가족에게) 돈을 받았다 하라 그러면 응 받았다 그렇게 말을 하고. 그래야 저기서도(한국에서도) 마음 놓고 나도 마음 놓고 그러죠. 그렇게 확인하고 돈을 받았어요."]

전문가들은 이러한 대북 송금 시스템이 2010년대 초 대규모 탈북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갖춰진 것으로 분석합니다.

[임순희/북한인권정보센터 총괄본부장 : "탈북민들이 2010년 초반에는 거의 연간 3천 명 가까이가 들어오셨거든요. 그런 어떤 ‘규모의 경제’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체계적이고 굉장히 큰 네트워크를 가지고 거의 일반 기업처럼 전국 각지의 북한 개별 지역마다 아래쪽 브로커를 다시 거느리고 활동을 할 만큼 굉장히 체계를 잘 갖춘 상황에서 진행이 되었던 것 같아요."]

고난의 행군 이후 붕괴된 경제를 회복하기 바빴던 북한 당국 역시 탈북민 송금에 대한 강력한 단속까지 벌일 여력은 없었습니다.

한국 정부 역시 인도주의적 차원 등을 고려해 현재까지도 탈북민의 대북 송금 부분은 묵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보내진 돈들이 탈북민 가족의 경제 사정 외에 북한 주민 인식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됩니다.

[김순영/2018년 탈북 : "옛날에 우리 아이들 학교 다닐 때는 한국이 못 살고 거지가 많고 깡통을 차고 이런 걸 계속 주입했고 지금까지도 그렇게 해서 노래도 있고 이랬는데 그 여자(브로커)가 할머니 아무래도 딸이 한국으로 간 것 같다. 그런데 한국은 지내(아주) 잘 산답니다. 걱정 안 해도 됩니다. 그래서 (탈북한) 딸한테서 돈이 와서 한국은 잘 사는 모양이다 (브로커) 말처럼..."]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강력한 내부 결속을 강조하며 탈북민 대북 송금 단속이 강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19 상황을 겪으면서 부터는 큰 변화가 감지됐는데요.

북중 국경 차단과 외부 정보 유입에 대한 북한 당국의 강력한 처벌이 더해져 대북 송금이 줄어든 겁니다.

탈북민 대북 송금 비율은 2019년 이후 감소하기 시작해 2022년 최저 수치를 기록했고 지난해 다시 상승했지만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론 회복되진 않았습니다.

커진 위험성 때문에 송금 일을 그만두는 브로커가 늘면서 수수료도 자연스럽게 높아지고 있습니다.

[북한 내 브로커 녹취/음성 변조/2022년 : "여기서 사람들이 (수수료) 40% 받았다고 대답은 해도 진짜 40% 아니고 보통 45~50% 떼고 우리가 40%라고 해도 옛날 30% 때보다도 우리가 더 못 먹는 형편이란 말입니다. 그런데다 목숨 내놓고 하는 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 지금 같은 일이."]

상황이 이렇다 보니 탈북민 대북 송금을 두고 종종 탈북민과 브로커 간에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는데요.

얼마 전 국내에선 대북 송금 일을 하던 브로커가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임순희/북한인권정보센터 총괄본부장 : "불법과 합법의 그 사이를 결국은 넘나드는 것이 북한과의 관계인 것 같고요. 브로커도 이미 많이 줄었고 북중 국경이 굉장히강화되고 더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돈을 보내야 하다 보니까 송금 사고도 자주 일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그런 식의 어떤 사건들을 (탈북민이) 경찰에 신고를 통해서 문제들이 발생한 것 같더라고요 신고가 들어온 것에 대해서 우리 정부가 못 본 체할 수는 없고."]

그럼에도 북한 가족들이 먼저 송금을 요청하는 경우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습니다.

[탈북민과 북한 주민 간 통화/음성 변조 : "여보세요. 기카고. (응) 돈을 5천 위안(90만 원) 못 맞추니? (응?) 이번에 5천 위안(90만 원) 못 맞추니? (뭐라고 하는지 안 들려. 뭐라지?) 이번에 5천 위안(90만 원) 못 맞춰? (5천 위안(90만 원) 맞춰 달라고?) 응. "]

경제난 속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탈북민 가족이 보내주는 돈이 유일하다는 겁니다.

[김순영/2018년 탈북 : "아무래도 자가(탈북 가족이) 그걸 보내주지 않았으면 지금 내가 거기 있었다면 살지 못했을 거예요. 내가 솔직히 말해 손자를 데리고 농사를 지어도 일 년 먹을 것을 짓지 못한다는 말이에요. 그러면 아이를 학교도 못 보내고 아이는 아이대로 고생하고 그다음에는 아마 나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죽었을지도 몰라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탈북민 대북 송금이 2010년대처럼 활성화되지는 못할거란 전망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북한 당국의 강력한 단속입니다.

[임순희/북한인권정보센터 총괄본부장 : "송금한다는 거에서 돈만 가는 게 아니거든요. 그걸 통해서 가족의 연락이나 주변의 환경이나 이런 것들이 정보가 같이 전달되면서 북한이 그런 것들을 거부하게 되는 거죠. 최근에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나 이런 것들처럼 원천 봉쇄, 외부 정보들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들이 포함돼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장기화된 대북제재와 코로나19를 겪으며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 주민들.

기댈 곳은 탈북 가족의 송금뿐이지만 보내는 사람도, 받는 사람의 상황도 녹록치 않은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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