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숨 쉬게 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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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가 수천년간 살아남은 것은 오늘날 지구 위에서 살고 있는 인간들의 애환에 빗댈 수 있는 이야기들이 가득하기 때문일 것이다.
책상 위에 두꺼운 신화를 여러권 두고, 짬이 날 때마다 이야기 하나씩 읽고 곱씹어 보면 그 이야기에 기대어 하루, 한해를 반성도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 새로운 계획도 잡아 본다.
그 이야기들이 사람들 사이를 흘러, 새로운 신화가 되면 나는 새로운 시대의 호메로스가 되는 것일까? 여생의 취미로 달성하기엔 너무나 원대한 꿈이긴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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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에
그리스 신화가 수천년간 살아남은 것은 오늘날 지구 위에서 살고 있는 인간들의 애환에 빗댈 수 있는 이야기들이 가득하기 때문일 것이다. 책상 위에 두꺼운 신화를 여러권 두고, 짬이 날 때마다 이야기 하나씩 읽고 곱씹어 보면 그 이야기에 기대어 하루, 한해를 반성도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 새로운 계획도 잡아 본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는 호메로스의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구전되어온 집단창작의 결과물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4000년 전의 크레타 문명에서 출발해서 3500년 전의 미케네 문명을 지나면서 사건들과 사고들이 구전되는 이야기에 스며들어 남았으리라. 이후에도 아시아·유럽·인도 등에서 유입되는 사람들에게 섞여 든 이야기들이 신화에 흔적을 남겼다. 이야기를 집대성한 사람은 호메로스로 알려져 있지만, 그에 대한 이야기들 중에 증거가 남아 있는 분명한 것은 하나도 없다. 만약 존재했다면 기원전 8~9세기에 이오니아 키오스섬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는 정도가 학자들이 합의할 수 있는 수준이다.
‘신통기’를 쓴 헤시오도스나 ‘아이네이스’를 쓴 베르길리우스 같은 시인들이 호메로스의 전통을 잇는다. 이 사람들은 작품의 저자인 것이 분명해 보이고, 그들의 개성과 의도도 읽을 수 있다. 2000년 전 사람인 베르길리우스는 로마 최고의 시인이었는데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청탁으로 로마의 역사를 그리스 신화와 연결하는 작업을 했다. 그리스 신들의 후예를 로마의 시작으로 잡으면서 로마의 위상을 높였다. 이 작업을 보면서, 역사가 생명력을 가지려면 문학에 기대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은 기록으로만 남지 않는다. 기록이 이어져 이야기가 만들어져야 비로소 숨을 쉰다.
‘히스토리에’는 마케도니아의 서기였던 에우메네스의 전기다. 마침 호메로스·베르길리우스 등의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있던 참이라 더 즐겁게 읽었다. 에우메네스는 스키타이 출신이라 강인한 몸을 갖춘 인물이지만, 그리스의 식민 도시에서 유력자 집안에서 아들처럼 성장해서 도서관의 책도 모조리 섭렵했다. 사고로 양부모를 잃고 노예로 전락하지만 기지를 발휘해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 2세의 눈에 띄어 문관으로 발탁되었다. 기록하는 사람으로 시작해 나중에는 장군이 되어 기록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다.
책은 11권까지 나왔고 아직 필리포스 2세가 살아 있고 알렉산드로스의 전쟁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책이 2~3년에 한권씩 띄엄띄엄 나오니, 기다리기 괴롭다. 플루타르코스가 쓴 ‘영웅전’으로 에우메네스의 발걸음을 쫓아가 본다. 그는 알렉산드로스가 죽은 후에도 살아남아 그의 유복자에게 충성을 다한 인물로 남아 있다. 지금까지 ‘히스토리에’에서 읽은 에우메네스의 행보로는 상상이 어렵다. 사실과 사실 사이를 앞으로 작가는 어떻게 이어갈까? 이런 이야기들이 다른 이야기를 만나 앞으로는 어떤 신화가 만들어질까?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박물관에서 마주친 신기한 고대의 유물들에 매혹되어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이렇게 상상력을 심하게 자극하는 물건들에 대한 설명은 상대적으로 빈약했다. 그때 결심했다. 나중에 시간이 많은 할아버지가 되면, 여기에서 저 유물들에 이야기를 붙이는 일로 여생을 보내리라. 그 이야기들이 사람들 사이를 흘러, 새로운 신화가 되면 나는 새로운 시대의 호메로스가 되는 것일까? 여생의 취미로 달성하기엔 너무나 원대한 꿈이긴 하구나.
주일우│만화 애호가
종이나 디지털로 출판되어 지금도 볼 수 있는 국내외 만화를 소개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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