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하고 선명한… 기억 속 풍경, 감각의 잔상 [박미란의 속닥이는 그림들]
오직 기억·상상 기반해 구현
경험 스며든 독자적 풍경화
안개처럼 희미한 이미지 속
형체 선명하게 드러내는 선
아크릴릭 과슈 맑은 붓터치
시간의 층위처럼 겹겹이 중첩
학고재서 3 초까지 개인전
“장면 속 특유의 대기 형상화
프레임 밖으로 공간영역 확장”
장재민의 말에 따르면 전시의 명제가 환기하는 ‘선’과 ‘연기’는 각각 “형체를 붙들려 하는 선과 그 안을 채우던 것들이 연기처럼 허무하게 빠져나가 버리고 마는 상태”를 가리키는 상징이다. 형상을 이루는 요소에 관한 고민인 한편 대상의 본질에 대한 고찰이기도 하다. 전시명은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지는 이미지에 반하여 더 선명해지는 어떤 윤곽들, 시각적 껍질과 대비되는 비가시적 알맹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을 포괄적으로 은유한다.
회화 재료의 전환에 앞서 주제 및 소재를 바라보는 방식에서의 변화가 있었다. 전시에 선보인 근작은 실제 현장을 답사하는 과정을 생략한 채 오롯이 기억과 상상에 기반해 그린 장면들이다. 서문을 쓴 문소영 큐레이터는 “그림 속 이미지들은 실재하지 않는 곳이며, 경험으로부터 자라났지만 상상을 통해 열매처럼 맺히고 개별적인 그림으로 수확된 독자적인 풍경”이라고 설명한다. “작가의 필적을 통해 마음에 스며있던 시간들이 캔버스 위로 우러난다”는 것이다. “기존 작업에서 유화의 점도 있는 물성을 통해 형용할 수 없는 감각을 손으로 빚어내듯 비유의 형태로 구현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건조한 듯 얇은 레이어들이 뭉근한 깊이감을 자아내고, 관찰자의 시선을 구름처럼 드러난 풍경 속으로 스며들게 한 그림을 보여준다.”
기억의 출처로부터 그림을 그리는 당시에 이르기까지 겹겹이 쌓인 시간의 층위처럼, 깃털처럼 가뿐한 붓의 흔적들이 화면에 중첩된다. 그러한 시각의 층계를 전시장 내 공간 연출에도 응용하고자 했다. ‘깊은 웅덩이 끝’은 관객의 시선 방향에 변화를 주고자 기울어진 각도로서 설치되었다. 한편 전시장 안쪽 방에 걸린 ‘새들의 자리’(2023)와 ‘먼 곳의 밤’(2023)은 서로의 뒷면을 맞댄 채 허공에 떠오른 모습이다. ‘불꽃’(2023)과 ‘Boards’(2023)도 마찬가지다. 시각적 중첩을 은유하는 장치인 동시에 부유하는 캔버스들로 하여금 공간을 낯선 방식으로 구획하도록 한 의도다.
장재민이 고백하기를 “어떠한 장면이 저마다의 대기를 형성하여, 프레임 밖으로 그 공간적 영역을 확장하는 상태를 떠올렸다”고 한다. 장소에 대한 주관적 기억을 객관적 세계의 풍경 속으로 끌어들여 새로운 공명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노력일 것이다. 다분히 입체적인 세상으로부터 건져 올린 감각을 평면 위 그림으로 거듭 번역해 내는 작업의 주된 과제이지 않을까. 회화의 물성 안에 붙잡아 둔 감각들이 현재의 공기를 어렴풋이 물들인다.
박미란 큐레이터·미술이론 및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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