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 향한 재기발랄 회초리질…영화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오보람 2024. 2. 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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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는 아빠의 정수리를 유심히 바라보던 동춘(박나은 분)이 엄마에게 묻는다.

김다민 감독이 연출한 영화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주인공 동춘의 삶은 이때부터 고달파진다.

영화는 동춘이 신비한 막걸리를 만나 삶의 이유를 깨닫게 되는 과정을 로드 무비 형식으로 보여준다.

막걸리와 의사소통을 하고, 인형인 털북·숭이가 비밀 친구로 나오는 등 비현실적 설정이 많아 언뜻 판타지물이나 동춘의 상상 속 이야기로 보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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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ㅇ난감' 각본가 김다민 감독 데뷔작…사교육 열풍 풍자
영화 '막걸리가 알려줄 거야' 속 한 장면 [판씨네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대머리가 영어로 뭐야?"

밥을 먹는 아빠의 정수리를 유심히 바라보던 동춘(박나은 분)이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혜진(박효주)은 숟가락을 탁 내려놓더니 진지한 얼굴로 말한다.

"우리 동춘이가 영어유치원에 갈 때가 됐구나."

김다민 감독이 연출한 영화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주인공 동춘의 삶은 이때부터 고달파진다. 부모는 초등학교 입학도 안 한 딸을 살벌한 사교육 현장으로 밀어 넣는다. 동춘은 국·영·수는 물론 미술, 태권도, 논술, 코딩, 한국사 학원을 뺑뺑이 돌고 늦은 밤 집에 오면 숙제하기 바쁘다.

자야 할 시간에 잠을 못 자 키가 자라지 않자 엄마는 '키 크는 병원'에 아이를 데려간다. 동춘에겐 성장마저도 이뤄내야만 하는 과업이다.

그를 줄곧 따라다니는 질문 하나.

'대체 이걸 왜 해야 하지?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하지만 시원스레 답해주는 어른은 없다. 실은 엄마 아빠도 선생님도 정확한 이유를 모른다. 자기들 역시 누군가가 살라는 대로 살았기 때문이다.

동춘이 정답을 알 기회는 뜻밖에 찾아온다. 수학여행에 갔다가 발견한 막걸리 한 병을 집으로 챙겨오면서다.

조용히 발효 중이던 막걸리는 어느 날부터인가 기포를 톡톡 터뜨린다. 평범한 아이라면 무심히 지나칠 법하지만, 사교육으로 단련된 동춘은 이 소리가 페르시아어를 모스 부호로 변환한 신호라는 걸 알아챈다.

영화 '막걸리가 알려줄 거야' 속 한 장면 [판씨네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영화는 동춘이 신비한 막걸리를 만나 삶의 이유를 깨닫게 되는 과정을 로드 무비 형식으로 보여준다.

막걸리와 의사소통을 하고, 인형인 털북·숭이가 비밀 친구로 나오는 등 비현실적 설정이 많아 언뜻 판타지물이나 동춘의 상상 속 이야기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웃픈' 현실을 반영한 블랙코미디에 가깝다.

극 중 아이들이 살아내는 일상은 판타지가 아니라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다. 제삼자의 시각에선 막걸리와 인형이 말을 하는 것보다, 열한살짜리 아이가 미적분을 배우는 게 더 비현실적인 일일지 모른다.

영화는 사나운 질책 대신 유머와 풍자를 통해 어른들의 양심을 쿡쿡 찌르는 방법을 사용한다. 군데군데 코믹 요소를 배치하고 이른바 'B급 감성'을 활용하지만, 그 안에는 어른들에게 건네는 단단한 당부가 있다.

재기발랄함으로 무장한 감독의 회초리질은 결말에 이르면 더 아프게 느껴진다. 동춘의 대사처럼 "말이 안 되는" 일을 어린이들에게 강요하고 있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되면서다.

김 감독은 막걸리, 페르시아어, 모스 부호, 학원, 우주 등 도저히 한 데 섞이지 않을 것 같은 소재를 솜씨 좋게 엮어 독특하면서도 묵직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그의 장편 데뷔작인 이 영화는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오로라미디어상을 받고 4회차 상영회가 매진되는 등 평단과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는 최근 세계적으로 흥행 중인 넷플릭스 시리즈 '살인자ㅇ난감'의 각본가이기도 하다.

28일 개봉. 91분. 전체관람가.

영화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속 한 장면 [판씨네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ram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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