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발 가로수’ 올해도 봐야 할까요?[반경 18.4㎞ 내 환경 이야기]

강한들 기자 2024. 2. 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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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는 무슨 뜬금없는 숫자일까요? 바로 통계청이 지난해 연말 발표한 ‘평균 통근 거리’입니다. 노동자는 평균 1시간 13분 정도를 출·퇴근에 쓰고 있다고 해요. 경향신문 환경팀은 ‘반경 18.4㎞ 내 환경 이야기’로 18.4㎞, 1시간 13분 이동하는 동안 고민해볼 만한 ‘생활 밀착형’ 환경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주변의 환경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분들은 누구나 환영합니다.
서울 영등포구 한국방송공사(KBS) 인근 나무가 좌측에는 ‘강전정’돼 있고, 우측에는 가지치기가 진행되지 않은 상태로 있다. 강한들 기자

지난 1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과 한국방송공사(KBS) 사이를 걷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걷는 거리 왼쪽에는 굵은 가지가 ‘뎅강’ 잘린 나무가, 오른쪽에는 가지가 무성한 나무가 서 있었어요. 도보를 따라 700m쯤 한 블록을 쭉 걸어봤습니다. 차도와 가까운 나뭇가지는 무성하고, 건물과 가까운 나무는 모두 앙상했습니다. 아파트 단지 내에는 큰 줄기만 남은 수준으로 잘려져 있는 나무도 있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요? 올해도 ‘닭발 가로수’를 봐야 하는 걸까요?

당장 우리 집 앞 나무들은 어땠지?

나무를 과도하게 가지치기 한 사례는 이곳뿐만이 아닙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 그룹 ‘가로수시민연대’에는 종종 과도한 가지치기 사례가 올라오고 있어요. 한 시민은 인천 연수구 아파트 단지 내 가지치기 된 은행나무 사진을 올리며 “나무가 무척 힘들어 보여 나도 따라 기운이 쏙 빠지는 것 같다”고 적었어요.

인천 연수구 건영아파트 단지 내 은행나무가 지난 7일 잘려있다. 박지현씨 제공

나무를 왜 이렇게 자르는 걸까요? 상가 근처에서는 나무가 간판을 가린다는 민원이 들어온다고 해요. 신호등, 전기줄에 닿아 사고가 날 수 있는 경우도 자르고, 낙엽이 너무 많아 잘라버리기도 한다고 합니다. 저렇게 굵은 가지까지 베어버리는 것을 ‘강전정’이라고 하는데요, 2022년 기준의 한국표준품셈을 보면 강전정을 하는 경우가 비용은 더 높지만, 시간은 덜 걸린다고 해요.

강전정을 하면 무엇이 문제일까요. 서울환경연합이 낸 ‘2023 시민과학 리포트’를 보면 “과도하게 잘린 나무는 부족한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 가늘고 긴 가지를 대량으로 발생시키고, 구조적으로 불안정해서 바람에 쉽게 떨어진다”라며 “굵은 가지의 잘린 면이 아물지 못해 나무를 썩게 하는 공기 중의 세균이 스며들면 나무 속까지 썩어 나무가 쓰러질 수도 있는 위험한 상태가 된다”고 말해요.

경기 김포시 장기동 한 아파트에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16일 가지치기 돼 있다. 노건우씨 제공

가지치기가 ‘지나치다’는 시민들의 반응이 늘기 시작하자, 정부·국회도 방안을 마련하기 시작했어요.

지난해 말에는 잘못된 가로수 가지치기를 개선하기 위해 도시숲법이 일부 개정됐어요. 도시숲 등의 기본계획을 수립할 때 ‘경관 자원을 보전’하도록 하고, 가로수 연간 유지·관리 계획을 매년 심의하도록 강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어요. 가로수에 대한 전문가 진단조사도 강화돼요. 산림청이 지난해 만든 ‘도시숲·생활숲·가로수 조성·관리 기준’을 봐도 ‘약한 가지치기’를 원칙으로 하고, 가지 직경이 10㎝ 이상이거나 줄기 직경의 3분의 1 이상 되는 ‘굵은 가지’는 최대한 제거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해요.

환경부에서도 지난해 3월 “생물다양성과 도시 그늘 증진을 위한 ‘도시 내 녹지 관리 개선 방안’을 마련해 관련 기관 도시 녹지 관련 정책과 사업에 고려될 수 있도록 협조 요청했다”라고 밝혔어요. 내용을 보면 도시의 나무가 ‘다양한 종’으로 구성되도록 하고, 가정·학교·직장에서 잘 관리된 3그루 나무를 볼 수 있고, 도시 나무 그늘이 도시 면적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최단 공공녹지 공간이 300m 이내에 위치할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이에요.

가지치기에 관한 내용을 보면 나무 가지치기와 관련해서도 나뭇잎이 달린 수목 부분의 25% 이상이 잘려 나가지 않도록 권고했어요. “과도한 가지치기가 대기 오염 정화, 녹지 생태·환경 기능을 훼손하고, 잎마름병에도 취약하며, 미관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결과를 반영”한 결과였어요.

강원 삼척시 중앙시장 인근 가로수가 지난 13일 강전정된 뒤 자라고 있다. 독자 제공
그런데 왜 아직도 ‘닭발 나무’가?

하지만 여전히 ‘닭발 나무’ 사례는 나오고 있어요. 우선 개정된 도시숲법 시행은 오는 7월입니다. 이번 봄의 가지치기에는 적용되지 않아요. 게다가 도시숲법은 ‘가로수’만을 대상으로 해요.

제가 처음 소개한 사진 같은 사례가 곳곳에 있을 수 있어요. 길가의 나무는 ‘가로수’로 분류되지만, 상가 근처에 있는 나무는 건축법상 ‘대지 안의 조경’에 해당하는 나무에요. 가로수는 지자체가 관리하지만, 조경수는 상가 등에서 직접 관리합니다. 환경부의 ‘도시 내 녹지 관리 개선 방안’은 도시의 모든 나무에 적용되지만, 권고 수준에 그치고 있어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인근의 가지치기가 되지 않은 가로수에 16일 새의 집이 지어져 있다. 강한들 기자

요즘같이 ‘이상 기상 현상’이 일상일 때에는 나무가 더욱 중요할 수 있어요. 서울환경연합에 따르면 가로수 그늘은 여름철 뜨거워진 도시를 최대 2.7도 식힌다고 해요. 폭염에 그늘막을 설치하는 것뿐 아니라 잘 자란 나무가 주는 그늘이 있다면 좋은 ‘기후 적응’ 수단이 될 수 있는 거죠. 최진우 서울환경연합 생태도시전문위원은 기자와 통화하며 “나무를 어느 정도로 키우고, 관리하는 게 공익적 예산 지출을 줄이고, 에너지 저감에 이바지하는지 정책에 고려되지 않고 있다”라며 “가로수가 떨어트리는 도심 기온과 생태적 기능도 정책에 고려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어요.

대부분 지자체에서는 곧 가로수 가지치기를 할 예정이라고 해요. 기자가 사는 마포구에 전화해보니 마포구 관계자는 “가지치기 공사 발주를 했고, 2월 말부터 시작해 3월까지 마칠 계획”이라고 밝혔어요. 독자님들이 사시는 마을의 가로수 가지치기는 어떻게 되는지 알려주세요!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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