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돈 냄새’ 기가 막히게 맡았네…골드러시 광부들 손마다 ‘이것’ 팔아 떼돈 [추동훈의 흥부전]

추동훈 기자(chu.donghun@mk.co.kr) 2024. 2. 17. 08: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흥부전-43][브랜드로 남은 창업자들-37]도밍고 기라델리

3세기 로마제국. 당시 로마군 병사들의 결혼은 엄격히 금지됩니다. 가족이 생길 경우 군역에 집중하지 못하고 탈영을 할 수 있다는 우려 탓입니다. 드넓은 제국을 지키고 방어하기 위한 로마의 군율은 악명이 높았습니다. 하지만 어찌 사랑을 막을 수 있을까요.

2월 14일 순교자 성 발렌티누스
사랑하는 연인을 지키기 위해 법을 어겨가며 결혼을 택한 군인들. 그리고 이들의 결혼을 축복하기 위한 신부님이 바로 발렌티노입니다. 법을 어긴 신부는 황제로부터 처형당했고 그가 순교한 그날, 바로 2월 14일을 기리기 위해 성 발렌티누스 축일이 기려지기 시작합니다. 매년 추운 겨울을 지나 봄이 다가옴을 알리는 2월의 기념일, 밸런타인데이의 유래로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초콜릿 기업의 마케팅으로 시작된 밸런타인데이 선물문화
밸런타인데이하면 초콜릿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브랜드로 남은 창업자들 역시 이를 놓칠 수 없겠죠. 흥미롭게도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을 선물하는 문화는 한 초콜릿 회사의 마케팅에서 시작했는데요. 1861년, 영국의 초콜릿 제조사 캐드버리의 초콜릿 선물 광고를 그 시초로 봅니다.
캐드버리 초콜릿
국내에서는 인지도가 그렇게 높진 않지만 캐드버리 역시 리처드 캐드버리가 창업한 초콜릿 회사로 창업자의 이름을 딴 브랜드입니다. 서양에서 시작한 초콜릿 선물 문화는 태평양과 대서양을 건너 동아시아로 진출합니다. 1936년 일본 고베 제과점의 밸런타인데이 감사 인사 캠페인으로 일본에 상륙한 선물 문화는 1958년 도쿄에 있던 메리 초콜릿이라는 양과자점에서 발렌타인 초콜릿을 만들어 판매하며 본격적으로 확산합니다. 그리고 이 문화는 고스란히 일본을 거쳐 국내로 넘어오며 지금처럼 성장했습니다.
서부개척시대를 연 초콜릿 브랜드, 기라델리
사실 밸런타인데이에 가장 바빠지는 초콜릿 브랜드는 저희 흥부전에서도 여러번 다뤘습니다. 허쉬 초콜릿을 창업한 밀턴 허시(32화), 페레로 로셰를 창업한 피에트로 페레로(30화)가 대표적이죠. 재미있는 내용이니 한번 찾아보셔도 좋습니다. 그리고 오늘 소개해드릴 달콤한 주인공은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대표하는 초콜릿 브랜드, 기라델리를 창업한 도밍고 기라델리입니다.
도밍고 기라델리
1817년 2월 21일, 이탈리아의 사르데냐 왕국 라팔로에서 도메니코 기라델리가 태어납니다. 그의 아버지는 라팔로와 가까운 제노바에서 향신료를 파는 상인이었습니다. 상인의 아들답게 그 역시 장사와 사업에 관심이 많았고 특히 향기롭고 달콤한 초콜릿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결국 10대였던 기라델리는 제노바 지역의 유명한 초콜릿 장인 로마넹고로부터 일을 배우고 견습생으로 일했습니다.

초콜릿의 매력이 푹 빠진 20대 청년 기라델리는 1838년 새로운 도전을 위해 남아메리카 대륙으로 향합니다. 우루과이를 거쳐 페루의 수도 리마에 도착한 그는 이 곳에서 자신의 제과점을 열고 초콜릿과 과자를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합니다.

기라델리 초콜릿 이미지(출처=기라델리)
특히 남미에서 통용되는 스페인어에 맞춰 이름 역시 이탈리아식인 도메니코를 스페인식 이름인 도밍고로 개명합니다. 이름을 바꿀 만큼 장사에 진심이었고 초콜릿을 사랑한 남자였습니다.
골드러시에 편승한 초콜릿 러시
남미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장사 수완을 발휘하던 그는 기회의 땅, 미국으로 향하기로 결심합니다. 페루에서 알게된 사람들이 하나둘 미국으로 떠나자 그 역시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귀동냥을 해보니 미국 서부에 가면 황금이 나오고 떼돈을 벌 수 있단 이야기도 들렸습니다.
기라델리 초콜릿
당시 미국은 금광을 필두로 한 서부개척시대가 한창이었습니다. 그 역시 이 곳에서 기회를 포착한다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달콤한 초콜릿 냄새 뿐 아니라 돈 냄새도 기가 막히게 잘 맡는 그였습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1849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그는 페루에서 600파운드에 달하는 초콜릿을 공수해 옵니다. 캘리포니아의 골드러시로 수많은 사람들이 이 곳 서부로 몰려들었고 그는 광산 근처 캠프에 자리를 잡고 미국에서의 첫 매장을 엽니다. 초콜릿 뿐 아니라 과자와 기타 공급품들을 판매하며 돈을 벌었습니다.

초창기 기라델리 스퀘어
당시 힘들고 고된 광산 일을 마친 광부들은 달고 맛있는 초콜릿과 과자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광산에서 몇 달간 고생을 한 끝에 제법 두둑한 돈을 손에 쥔 기라델리는 당시 서부 최대도시 중 하나였던 샌프란시스코로 향합니다. 이 곳을 돌아다니며 목이 좋은 입지를 찾아 ‘기라델리 초콜릿 컴퍼니’를 1852년 설립합니다. 지금의 기라델리의 시작입니다.

창업 초기 기라델리는 초콜릿 뿐 아니라 커피, 시럽, 술 등 여러 제품을 만들어 판매했습니다. 주력은 초콜릿이었지만 사업 다각화에도 나름 신경을 쓴 것이죠.

또한 기라델리는 제품을 만드는 전 공정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관리하며 최상급의 품질을 균질하게 유지하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만큼 품질에 자신이 있었고 그 덕에 초콜릿 뿐 아니라 초콜릿을 이용한 핫초콜릿과 관련 제품들의 품질도 무척 좋았습니다.

기라델리 신문광고
행운의 여신이 도운 브로마 공정
사업에 열중하던 1865년, 행운도 기라델리의 편에 섭니다. 기라델리 초콜릿 공장 직원은 우연히 카카오 열매 봉지를 방 한 쪽에 놓아두었습니다. 그런데 방이 따뜻했던 탓에 카카오 열매에서 코코아 버터가 녹아 떨어져 나왔습니다.

이 코코아 버터는 걸쭉한 버터를 만드는데 활용됐습니다. 또한 코코아 버터가 사라져버린 건조된 카카오 열매를 갈아 만든 코코아 가루는 입자가 고운 초콜릿 분말로 그 활용도가 더욱 높아졌습니다. 이는 현재 초콜릿 공정에서 두루 쓰이는 브로마 공정으로 명명되며 보다 강렬하고 진한 초콜릿 풍미를 품은 초콜릿 제작의 필수적인 과정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기라델리 로고
세계 최초로 브로마 공정을 개발한 기라델리는 초콜릿 업계의 스타가 됐습니다. 그의 초콜릿은 더욱 유명세를 높여갔고 그와 함께 세 아들은 미국 서부를 넘어 동부 등 미국 전역으로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멕시코 등 전 세계 곳곳으로 자사의 초콜릿 제품들을 실어 나르며 글로벌 초콜릿 브랜드로의 입지도 돈독하게 다졌습니다.
샌프란시스코 해변에서 본 기라델리 스퀘어
샌프란시스코 명소 된 기라델리 스퀘어
회사가 계속 성장하자 기존의 본사 부지도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결국 기라델리는 샌프란시스코 북쪽 해안가에 있는 피오니아 울런 빌딩을 구입해 제조시설을 이 곳으로 이전했습니다. 그리고 이 곳은 현재 기라델리 스퀘어로 유명한 샌프란시스코의 명소가 됐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 방문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곳 기라델리 광장은 한번쯤 들려볼 수 밖에 없는 곳입니다.

사세가 점차 커져감과 동시에 기라델리의 은퇴시점은 점차 다가왔습니다. 1892년 기라델리는 75세의 나이로 은퇴를 선언하고 아들들에게 회사를 물려줍니다. 그는 치열했던 사업전선에서 떠나 여행을 하며 노년을 즐겼습니다. 그러나 그런 즐거움도 잠시, 1894년 그는 이탈리아 여행 중 사망하며 생을 마감합니다.

기라델리 스퀘어(출처=기라델리)
기라델리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초콜릿 가게로 세계 3대 초콜릿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매년 9월이면 이 곳 샌프란시스코에선 기라델리 초콜릿 축제가 열려 초콜릿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행복할 수 있는 행사도 열리는데요. 설레는 연인들의 기념일인 밸런타인데이. 올해는 마음의 부담은 내려놓고 진심을 담은 초콜렛 하나 정도 선물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흥’미로운 ‘부’-랜드 ‘전’(傳). 흥부전은 전 세계 유명 기업들과 브랜드의 흥망성쇠와 뒷야이기를 다뤄보는 코너입니다. 기자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더욱 알차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