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컷] 외로운 무인 매장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상가 건물, 1층 점포에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밤에도 불을 환히 켜고 영업하는 가게들이 있다. 파는 사람이 없는 무인 점포들이다. 이곳엔 아이스크림과 과자를 파는 무인매장부터 고기나 과일만 파는 무인매장도 성업 중이다.
길 건너 다른 상가에서도 문구나 셀프사진관이 모두 무인으로 운영되고 있다. 주변에 중고생들이 다니는 학원이 많아 최근에 라면 전문 무인점포도 생겨서 들어가 봤는데 마트에서 못 보던 라면도 팔고 있었다.
먹어도 바로 배고픈 시절, 동네의 어둠을 밝히는 24시간 편의점을 다닌 적이 있다. 냉동 음식을 골라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뜨거운 물로 컵라면을 끓이기 전에 배고픔 보다 외로움이 먼저 사라졌다. 한밤중에 느닷없이 찾은 손님 때문에 졸다가 깬 편의점 직원에게 값을 치르며 나눈 짧은 소통은 건조했지만 그래도 대화였다. 이제 무인 매장을 가면 그런 퍽퍽한 사람의 말도 들을 수 없다. 아예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설 연휴 때 제주에서 무인 점포가 또 털렸다. 얼굴을 가리기 위해 오토바이 헬멧을 쓴 남자들이 무인매장을 들어와 셀프계산대의 자물쇠를 쉽게 따고 현금 70 만원을 털어갔다. 무인 매장은 사람은 없어서 좀도둑들의 표적도 되지만 사람 대신 카메라가 감시한다.
혼자 물건을 고르고 셀프 계산대에서 계산하는 동안 매장 천정에 붙은 카메라가 나를 보고 있는 것이다. 서비스를 기대하는 대신 손님으로서 나의 행동이 어떠한지 CCTV로 감시 되고 기록된다. 누구한테 물을 수도 없고, 필요하면 사든지 아니면 나가면 그만이다.
살기 위해 모두 마스크를 쓰던 코로나19 시절, 대면 소통과 모임조차 자제하던 때부터 비대면 소통이 시작되었지만 그것은 마스크를 벗게 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불편하고 낯선 것들이 시간의 강으로 흘러가면 이렇듯 익숙해진다.
시간을 더 거슬러보면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서로 자리를 양보하거나 무거운 가방을 들어주던 것을 자랑스러워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모두 스마트폰을 보거나 눈을 감고 간다.
식당이나 카페에선 키오스크로 주문하고, 여러 식당에서 배달용 로봇이 사람을 대신다. 사람들이 떠난 사무실이나 식당에선 AI나 로봇들이 일을 대신한다. 사람들의 따뜻한 서비스가 그립다.
갈수록 사람과 대화하기 힘든 세상이다. 어디든 전화하면 자동응답기의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은행에 내 계좌나 신용카드 확인하려고 해도 기계음과 여러 단계를 거쳐야 겨우 교환과 통화가 된다.
언제든 연락하라고 만들어진 휴대폰은 오히려 오지 않는 메시지를 기다리게 하고 사람을 외롭게 한다. 세상이 편해지면 이렇게 외로워져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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