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석화 '조카의 난'…결국 '자사주'가 화약고

안정준 기자 2024. 2. 1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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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속으로]

결국 '자사주'가 화약고였다. 박철완 전 금호석유화학 상무가 행동주의펀드와 손잡고 자사주를 전량 소각할 것을 금호석유화학에 제안했다. 삼촌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명예회장과 2021년부터 자사주를 화두로 경영권 분쟁을 이어온 박 전 상무가 다시 자사주 카드를 빼 든 것. 이 제안 역시 경영권 분쟁의 연장선상에 있다. 명분은 경영권 분쟁이지만 박 상무의 속내는 주가를 올려 빠져나가는 '출구전략'이라는 말도 나온다.

17일 재계에 따르면 박 전 상무는 지난 15일 공시를 통해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이하 차파트너스)과 공동보유자로서 특별관계가 형성됐다고 밝혔다. 박 전 상무가 차파트너스에 권리를 위임해 양측이 향후 주주총회 의결권 행사에 같은 목소리를 내겠다는 뜻이다. 권리를 위임받은 차파트너스는 다음달 열리는 금호석유화학 정기주주총회 안건으로 △자사주 소각에 관한 정관 변경의 건 △자사주 소각의 건 △감사위원회 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선임의 건 등을 주주제안했다. 핵심은 자사주 소각이다. 차파트너스는 금호석유화학 전체 지분의 18.4% 수준인 자사주를 전량 소각하라고 했다.

자사주 소각에 대한 박 전 상무의 의중은 그가 15일 낸 입장문에 담겼다. 그는 "금호석유화학 전체 주식의 18%에 달하는 미소각 자사주가 소액주주의 권리를 침해하며 부당하게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 독립성 결여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이사회로 인해 현재 금호석유화학이 저평가돼있다는 점에 대해 차파트너스와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입장문 문구 중 '미소각 자사주가 소액주주의 권리를 침해하며 부당하게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미소각 자사주가 경영권 방어 등의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뜻이다. 금호석유화학 개인 최대주주(지분율 9.1%)인 박 전 상무는 2021년 박 명예회장과 함께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고 독자 행보에 나서겠다고 선언하며 경영권 분쟁을 이어 왔다. 그가 그동안 자사주를 지렛대로 박 전 명예회장측을 상대로 진행해온 경영권 분쟁 과정을 살펴보면 이번 자사주 소각 제안도 맥락이 다르지 않다.

박 전 상무가 2022년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금호석유화학과 OCI의 자사주 맞교환과 관련해 신청한 의결권행사금지가처분 신청이 대표적 사례다. 2021년 12월 금호석유화학그룹의 금호피앤비화학과 OCI그룹의 말레이시아 자회사 'OCIMSB'는 315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시간 외 대량매매 방식으로 상호 교환했다. 박 전 상무는 의결권행사금지가처분 신청을 내며 "OCI가 보유한 금호석유화학의 자기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게 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자사주 자체는 의결권이 없지만, 이를 백기사에 매각할 경우 의결권이 살아나기 때문에 자사주는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된다. 박 전 상무가 자사주에 집착한 이유다. 당시 그는 "경영권 분쟁 상황이 계속될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금호석유화학이 경영상 필요 없이 현 경영진 및 지배주주의 경영권을 강화할 목적으로 자기주식을 처분한 것은 법률상 효력이 부인돼야 한다"고 했다. 박 전 상무는 금호석유화학을 상대로 '자기주식처분 무효확인 청구 소송'도 제기했다. 법원은 지난해 각하 판결을 내렸고 박 전 상무가 항소해 현재 2심 단계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번 제안도 앞선 의결권행사금지가처분 신청 및 자기주식처분 무효확인 청구 소송 등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며 "박 전 상무 입장에선 금호석유화학이 자사주를 모두 소각하게 되면 앞으로 백기사를 통해 경영권을 방어할 카드를 잃는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만, 박 전 상무의 핵심 노림수는 경영권이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그동안 금융권에선 그가 여러 경로를 통해 지분 매각 제의를 받아왔다는 말이 나온다. 지분율을 늘리는데도 공격적이지 않았다. 박 전 상무가 경영권 분쟁을 선언한 2021년부터 3년간 그의 지분율은 0.52% 오르는데 그쳤다. 현재 박 전 상무측의 우호지분율은 10.8%이며 박 명예회장 측 지분율은 15.7%다. 현 경영진의 실책을 조목조목 지적하거나 경영개선책과 신사업 비전 등을 내놓지 않는다는 점도 의아한 부분이라는 게 재계의 해석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경영권 분쟁을 선언하면, 추후 지분을 매각할 때 경영진과 뜻이 맞지 않았다는 출구를 마련할 수 있다"며 "경영권 분쟁은 일종의 명분이고 사실 의중은 주가를 올려 빠져나가는 엑시트 전략일 수 있다"고 말했다.

안정준 기자 7u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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