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만 하다 잘렸다...‘무전술·무책임’ 클린스만의 11개월

장민석 기자 2024. 2. 17. 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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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 때부터 논란, 결국 중도하차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16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경질을 발표하기 위해 굳은 표정으로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정몽규 회장은 "팬들의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대표팀을 재정비하겠다"고 말했다. /뉴스1

지난 1년가량 한국 축구 대표팀을 이끈 위르겐 클린스만은 ‘스마일 감독’으로 통했다. 침통한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태도는 본인에겐 활력을 줬을지 몰라도 팬들에겐 불편했다. 그는 이미 선임 당시부터 논란을 불렀다. 현역 시절엔 독일 국가대표 주 공격수로 1990 월드컵과 유로 1996 정상을 이끌며 화려한 이력(108경기 47골)을 자랑했지만, 지도자로선 낙제점이었기 때문이다.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전력이 이전만 못하다’는 자국 대표팀을 맡아 3위까지 오르며 나름 성과를 냈지만 이 역시 유능한 코치들(요하임 뢰브 등) 덕을 봤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후 바이에른 뮌헨(승률 57%), 미국 대표팀(56%), 헤르타 베를린(30%) 등에서 감독을 했으나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헤르타 베를린에선 감독을 맡은 지 3개월 만인 2020년 2월 소셜미디어를 통해 일방적으로 사퇴 의사를 밝히고 팀을 떠났다. “무책임한 감독”이란 비판이 쏟아졌다. 그 뒤로 어느 팀도 불러주지 않던 감독을 한국이 부른 것이다.

클린스만, 인스타로 이별통보 -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16일 경질 통보를 받고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 /클린스만 인스타그램

독일 출신 마이클 뮐러 대표팀 전력강화위원장은 클린스만을 선임하면서 “단순한 지도자가 아니라 관리자이며, 선수들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감독”이라고 강조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자유분방한 팀 운영을 훈장처럼 내세웠지만 그 이면에는 선수단 통솔 실패라는 부작용이 따랐다. 그 결과 핵심 선수들끼리 충돌이 있었는데도 이를 적절하게 관리하지 못하고 경기력에 악영향을 끼쳤다. ‘원 팀’을 조직화하는 데 무능했다는 얘기다.

새로운 선수 발굴에도 소극적이었다. 검증된 유럽파 대신 국내 리그 선수들을 관찰해 새 유망주들을 수혈했어야 하는데 대부분 시간을 외국에서 보내면서 이 임무도 방기했다. 아시안컵에서 이 같은 맹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짧은 기간에 많은 경기를 치러야 하는 대회 특성상 전체 선수단을 골고루 활용하면서 체력을 안배해야 하는데 조별리그에서 4강까지 특정 선수군(群)만 집중 투입했다. 평소 다양한 선수들을 분석하고 장단점을 파악해 놓지 않았던 탓이다.

숱한 논란을 겪으면서도 그는 “아시안컵으로 가는 과정에 있다. 대회 결과를 지켜봐 달라”고 했지만 그 약속도 지키지 못했다. 지난 15일 전력강화위원회에 화상으로 참여한 클린스만은 “전술이 없었다는 지적에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선수단 불화가 경기력에 영향을 미쳤다”고 책임을 돌리는 듯한 자세를 보였다.

그래픽=송윤혜

클린스만이 경질되면서 한국 축구 국가대표 감독 ‘흑역사’가 되풀이되는 양상이다. 성인 축구 국가 대표 전임 감독제가 도입된 건 1992년. 거스 히딩크(78·네덜란드) 감독이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1년 6개월 재임)를 달성한 이후 22년간 12명 전임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그중 월드컵 본선을 위해 4년여 기간을 온전히 준비한 감독은 2018년 8월 부임해 2022년 12월까지 지휘했던 파울루 벤투(55·포르투갈)가 유일하다. 2010 남아공 월드컵 16강을 이룬 허정무(71) 감독도 2007년 12월부터 2010년 7월까지 사령탑을 맡아 비교적 길었다. 히딩크 이후 가장 오래 감독을 수행한 이 둘만 원정 월드컵 16강을 달성했다. 하지만 다른 감독들은 대부분 1~2년을 버티지 못했다.

클린스만 경질은 피할 수 없는 수순이었지만 문제가 남는다. 현재 한국 축구는 북중미 월드컵 2차 예선 도중이다. 당장 다음 달 21일(홈), 26일(원정) 태국(FIFA 랭킹 101위)과 경기를 갖는다. 새 감독을 물색하고 선정하기엔 시간이 없다. 일단 당분간 임시 감독 체제로 갈 가능성이 높다. 현재 한국(2승)은 중국, 태국(이상 1승1패), 싱가포르(2패)와 한 조에서 경쟁하고 있다. 정몽규 회장은 “월드컵 예선을 위한 차기 감독 선임 작업을 바로 착수하겠다. 새로운 전력강화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장도 선임하겠다”고 말했다.

축구협회는 이번 아시안컵 기간 중 선수들 간 충돌 사태에 대해 자세한 정황을 파악해 후속 조치를 내릴 것으로 보인다. 이 결과에 따라 일부 선수들이 대표팀 소집에서 빠질 수 있어 흔들리는 한국 축구 재건은 이제부터 본경기에 돌입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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