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341] 잘 익은 상처
이전 소설에서 이런 구절을 썼다. “인생이 서글픈 건, 승자도 결국은 얻어맞기 때문이다. 한 대도 맞지 않고 상처 없는 얼굴로 인생에서 승리할 수 있는 복서 따윈 없다. 단지 덜 맞고, 더 맞고의 차이가 있을 뿐.” 살다 보면 누구나 상처가 생긴다. 어떤 사람은 상처를 느끼고 살고, 어떤 이는 잊으려 노력하며 산다. 하지만 우리는 ‘내 안의 어린아이’와 살며, 어른이 돼도 상처 입은 마음속 아이는 여전히 웅크리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폭력, 어떤 이에겐 냉정함이나 가난이 어린 시절 상처로 남는다. 내 친구 중 하나는 양철통에 들어있는 ‘데니시 버터쿠키’만 보면 사는데, 어릴 적 짝꿍이 혼자 먹던 그 쿠키가 자신에게는 상처였다고 한다. 오래전, 배우 최진실 사후 TV 추모 프로그램에서 그녀가 쓰던 옷장에서 나온 공책과 연필을 보았다. 모친은 어릴 적 형편이 나빴던 그녀가 커서도 학용품을 사 모았다고 했다. 상처받은 사람은 누구나 무의식 속의 충족되지 않은 뭔가를 찾아 헤맨다. 데니시 쿠키와 학용품은 그녀들이 어른이 되어 ‘내 안의 아이’에게 주는 치유의 선물이었을 것이다.
상처가 적은 인생이 좋지만 더 좋은 건 상처를 넘어서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상처를 극복해야 좋은 인생은 아니다. 현재의 고통이 모두 과거의 상처 때문이라고 믿고, 굳이 과거로 돌아가 상처를 헤집을 필요도 없다. 바닥에 떨어진 화살을 스스로 주워 자꾸 자신의 몸에 꽂으며 아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때로 이미 생긴 상처를 잘 받아들이는 게 좋을 때도 있다. 가수 임영웅이 어릴 적 사고로 생긴 얼굴의 상처를 “내 얼굴에는 나이키가 있어요!”라고 말하는 장면은 어떤가.
축복을 뜻하는 ‘bless’는 상처를 뜻하는 프랑스어 ‘blessure’와 어원이 같다고 한다. 우리 몸의 근육도 상처 받고 찢어지며 더 단단한 근육으로 성장한다. 비를 맞은 사람은 무지개를 볼 수 있고, 어둠 속의 사람은 별을 볼 수 있다. 복효근의 시 ‘상처에 대하여’에 이런 구절이 있다. “잘 익은 상처에선/ 꽃향기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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