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4·10 총선 이후가 더 걱정이다

이정민 2024. 2. 1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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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칼럼니스트
4·10 총선을 앞둔 정치판이 상식을 뒤엎는 꼼수와 탐욕으로 뒤죽박죽 난장판이 돼가고 있다. 무엇보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와 위성정당이 되살아난 게 치명적이다. 오염된 토양에서 자라난 농작물의 독소가 인체에 치명적인 질병을 퍼뜨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형적인 선거제도는 민의를 왜곡시키고 민주주의의 정상적인 작동을 막는다. 벌써부터 총선 후가 걱정되는 건 출발선부터 궤도를 이탈한 ‘총선 열차’가 불러올 막장 국회가 연상되어서다.

지난 4년 우리는 위성정당이란 괴물이 낳은 후과로 고초를 겪었다. 거대 양당으로의 표 쏠림으로 군소정당의 존재감이 사라지자 타협점 없는 격렬한 정쟁 속 거대 정당의 ‘적대적 공생’이 정치의 순기능을 마비시켰다. 양곡관리법·간호법 등 민주당의 입법 폭주,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시계추처럼 반복되면서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는 무능 국회, 막장 정치가 일상화됐다.

「 ‘위성정당 금지’ 말 바꾼 이재명
조국 신당·송영길 신당 길 터줘
22대도 막장·무능국회 될까 걱정
막지 못한 한동훈, 과오로 남을 것

선데이 칼럼
21대 총선(2020년)에서 각각 위성정당 더불어시민당·미래한국당을 만들어 비례대표 의석을 싹쓸이하다시피 한 민주당(180석)과 미래통합당(103석)은 전체 의석의 94.3%를 독차지하며 양당 독주 체제를 열었다. 이렇게 해서 얻은 건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 뿐이다. 후보들에 대한 자질 검증 없이 급조된 위성정당으로 운좋게 배지를 단 의원들은 위법과 부정행위로 공분을 샀다. 위안부 할머니 후원금을 유용한 윤미향 의원, 거짓으로 드러난 윤석열 대통령의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퍼뜨린 김의겸 의원은 위법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났는데도 수치심을 느끼기는커녕 사과 한마디 없이 지금껏 의원석을 지키고 있다. 조국 전 법무장관 자녀에게 허위로 인턴증명서를 발급해 유죄 판결을 받은 최강욱 전 의원은 입에 올리기 민망한 막말과 기이한 행동으로 정치를 조롱거리로 만든 장본인이다.

이쯤되면 위성정당은 폐지하는 게 마땅하다. 그게 정치 개혁이고 진보다. 더욱이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지난 2022년 대선 유세때 위성정당 금지를 공약했고, 대표로 나선 전당대회에선 당원 90%이상의 동의를 얻어 결의문까지 채택하지 않았나. 위성정당 출현을 막는 의원 입법도 쏟아졌다. 그러나 이 대표와 민주당은 이번에도 정공법 대신 꼼수를 택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멋지게 이기는 길”을 이끌어 달라며 박수로 이 대표에게 권한을 위임했고, 이 대표는 “멋지게 지면 뭐하냐”며 “통합형 비례정당을 추진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그의 습관성 말바꾸기야 새삼 놀랄 일은 아니지만, ‘게임의 룰’을 결정하는 것조차 제 입맛대로 손바닥 뒤집듯 하고, 그걸 당 대표 한 사람이 좌지우지할 수 있게 일임한 민주당의 정신세계가 놀랍다.

또 민주당이 위성정당 창당을 위해 만든 논의체인 ‘민주개혁진보 선거연합’엔 한미자유무역협정(FTA)반대, 제주 해군기지 반대, 국가보안법 폐지 시위를 이끌었던 인물이나 한미 연합군사 훈련 중단, 한미 동맹 반대 등을 주요 정책으로 내세우는 운동권 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정체성이 불분명한 극단주의 세력을 무슨 민주진보세력인양 둔갑시켜 우군화하겠다는 것인데, 자질 검증이 안 된 인사들이 국회에 들어온다면 22대 국회에서 무슨 해괴한 일이 벌어질지 아찔하다.

막장 정치의 정점은 ‘조국 신당’ ‘송영길 신당’이 아닐까 싶다. 조국 전 장관은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2심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은 직후 신당 창당을 공식화했고,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으로 구속된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도 최근 옥중 창당(민주혁신당)을 선언했다. 민주당은 이들과의 연대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지만, 두뇌 회전이 빠른 이재명 대표가 과연 이들의 방탄 창당을 예상하지 못하고 위성정당 창당의 빗장을 열어놓았을까. 물론 형(刑)의 최종 확정 전까지는 누구든 창당도, 출마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위선과 거짓으로 나라를 두쪽 내고 사회를 뒤흔들어 국민에게 충격과 좌절을 안겨준 장본인들이다. 법의 심판 이전에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느끼고 자중하는 게 마땅하다. 부끄러움을 알고 지난 일을 성찰하는 게 한때나마 주권자의 권한을 위임받아 국록을 받았던 공복(公僕)다운 처신이다. 그런데도 위성정당이란 틈새를 이용해 선거에 나오겠다니 위선과 막장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설사 이들이 배지를 달더라도 대법에서 유죄가 확정되면, 선거를 다시 치러야 된다. 국민에게 2중, 3중의 피해를 입히게 되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의 의도를 간파하는 건 어렵지 않다. “윤석열 정권 창출에 책임있는 인사 공천 배제”와 위성정당이라는 두 축으로 당내에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 범야권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려는 것이다. 국회를 반 윤석열 정부 총공세의 기지로 삼으면 안전판이 마련될 것이라고 보는 것 같다. 그 대가는 무법 천지의 난장판 국회, 막장 정치가 될 공산이 크다. 22대 국회가 ‘역대 최악’ 기록을 갈아치우게 될까 벌써 두렵다.

국민의힘도 책임을 면키 어렵다. 아무리 “우리가 내는 비례정당은 민주당의 꼼수와 협잡에 대응하기 위한 도구”(한동훈 비대위원장)라고 합리화를 해도 위성정당 유혹을 벗어던지지 못한 건 두고두고 국민의힘과 한 위원장의 발목을 잡을 정치적 과오로 남을 것이다.

이정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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