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행동주의 펀드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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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기업 주식을 사들인 다음 경영 개입 혹은 인수합병(M&A)에 나서 주가를 끌어올리는 행동주의 펀드로 정평이 나 있다.
소액주주를 대변한다는 평가가 있지만 기업의 장기발전이나 미래 경쟁력에는 아랑곳 없이 단기시세 차익만 노리는 '벌처(동물 사체를 먹는 독수리)펀드'라는 악명도 높다.
앞서 외환위기 때 미국계 헤지펀드 타이거 펀드가 SK텔레콤을 상대로 적대적 M&A에 나서 6300억원의 시세차익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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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는 악연이 깊다. 엘리엇은 2018년 현대차그룹이 추진하던 지배구조 개편을 무산시킨 데 이어 이듬해 3월 주총에서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에 8조원대의 고배당을 요구했다. 사측이 제시한 배당금의 5∼6배에 달했는데 결국 주총 표 대결에서 패배했다. 2015년에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제동을 걸기도 했다. 앞서 외환위기 때 미국계 헤지펀드 타이거 펀드가 SK텔레콤을 상대로 적대적 M&A에 나서 6300억원의 시세차익을 챙겼다. 2006년에는 KT&G가 미국계 사모펀드 칼 아이칸의 경영권 위협에 시달리며 순이익뿐 아니라 내부 유보금까지 탈탈 털렸다.
한동안 뜸했던 행동주의 펀드가 최근 ‘기업 밸류 업(가치상승)’ 바람에 편승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시티 오브 런던 등 국내외 펀드 5곳은 삼성물산에 1조2364억원의 주주환원(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하라고 으름장을 놨다. 내년까지 자사주 5000억원어치를 사들이고 배당액도 75% 이상 높여달라는 요구다. 삼양그룹 계열사 삼양패키징은 순이익 대부분을 배당(배당성향 93%)하는데도 자사주 매입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금호석유화학, KT&G, 현대엘리베이터 등도 펀드들의 무리한 요구에 시름이 깊다.
한국의 낮은 주주환원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기업가치 저평가)’의 주범이다. 최근 10년간 배당성향이 29%로 미국(92%)의 3분의 1 수준이다. 정부는 오는 26일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기업 밸류 업 프로그램’을 발표한다. 그렇다고 주식시장이 펀드의 놀이터로 전락해서는 곤란하다. 선진국들은 대부분 대주주에게 싼값에 신주를 발행하는 ‘포이즌 필’이나 대주주 등 일부 주주 주식에 더 많은 의결권을 주는 ‘차등의결권’과 같은 경영권 방어장치를 허용한다. 기업이 투기자본의 공세를 막을 제도 보완책이 필요한 때다.
주춘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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