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혼합… 세계사 결정적 장면 만들었다

김용출 2024. 2. 16.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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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 유일신 혁명, 유대교에 반영
로마는 그리스 문학 활용 국가시조 창조
인도 간 현장법사, 불교 중국 것으로 수용
시대·장소 초월한 15가지 문화성취 소개
문화 차용·재해석으로 더 큰 영향력 발휘
“싸이 등 한류 열풍도 문화 혼합 결과” 분석
상호 접촉이 선택지 늘려 문화 발전 자극

컬처, 문화로 쓴 세계사/마틴 푸크너/허진 옮김/어크로스/2만2000원

고대 이집트의 젊은 파라오는 테베의 수호신 아멘을 전략적으로 무시했다. 대신 별로 중요하지 않던 태양신 아톤을 격상시킨 뒤 유일신으로 숭배했다. 아멘을 제사 지내는 신관들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15가지 문화 이야기를 통해서 인간이 어떻게 다른 문화를 접촉하고 받아들이면서 세계사의 결정적인 장면을 만들었는지를 살펴나간 책이 나왔다. 사진은 고대 이집트 아멘호테프 4세의 왕비 네페르티티, 모세, 아소카 대왕의 석주, 로마의 베르길리우스, 인도에서 불경을 가져온 현장법사, 싸이의 뮤직비디오 ‘강남스타일’. 어크로스 제공
기원 전 1352년 왕위에 오른 제18왕조의 파라오 아멘호테프 4세는 왕비 네페르티티와 함께 아멘 숭배를 완전한 단절시키기 위해 천도까지 단행했다. 테베에서 나일강 하류 아마르나 지역으로 옮기고 아톤을 숭배하는 각종 신전을 세웠다. 도시 이름을 ‘아케타톤’이라고 지었고, 자신의 이름도 ‘아크나톤’으로 바꿨다.
다신교 사회였던 이집트에서 이들이 일으킨 유일신 혁명은 소수 상류층에만 받아들여지고 다수 국민들에겐 스며들지 못하다가 아크나톤이 죽은 뒤 다시 아멘 신앙과 다신교로 회귀했다.
마틴 푸크너/허진 옮김/어크로스/2만2000원
그럼에도 이들이 시도한 유일신 혁명은 이집트에서 행정관으로 일한 요셉과 모세 등에 의해 받아들여졌고, 나중에 유대교, 히브리 성경 등으로 변형돼 반영됐다. 다만, 아크나톤 시대에는 다른 신을 숭배하는 것을 금지하진 않았지만,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는 히브리 성경처럼 유대교와 기독교는 다른 신을 완전히 배제한 일신교로 발전했다.

인간은 존재의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서 문화를 주목해 왔고, 더 좋은 문화를 위해서 다른 시공간의 경험이나 문화에 눈길을 돌려왔다. 즉, 문화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사례처럼 한 공동체의 자산으로만 만들어진다기보다 시간이나 공간이 다른 문화와의 접촉을 통해서 형성되거나 풍성해져 왔다.

베스트셀러 ‘글이 만든 세계’의 필자이자 하버드대 교수인 저자는 신간 ‘컬처, 문화로 쓴 세계사’에서 인류의 문화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 어떻게 다른 문화를 접촉하고 받아들이면서 세계사의 결정적인 장면을 만들었는지를 찬찬히 살펴간다.

책에 따르면, 기원전 168년 보병 2만3000명과 기병 3500명으로 이뤄진 로마군은 그리스 도시국가 연맹을 정복했다. 로마는 지중해 동부를 장악했고, 그리스는 군사적 정치적으로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로마는 그리스의 문화를 경멸하지 않았다. 도리어 700년 전 그리스 문화를 적극 받아들이고 활용했다. 로마 곳곳에 그리스 희곡을 묘사한 그림을 그렸고, 그리스어를 사용했으며, 그리스 작가의 이름을 외우는 것을 유행으로 만들었다.

심지어 그리스가 로마의 정체성 일부가 되자, 자신들의 기원과 그리스를 어떻게 연결해야 할지도 고민했다. 이때 베르길리우스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의 등장인물 가운데 아이네이아스를 로마의 시조로 하는 서사시를 썼다. 즉, 트로이가 그리스에 의해 패배하자 도망친 아이네이스가 바다를 건너와 로마를 건설했다고 그렸다.

“문화 접목은 패배나 열등함으로 인한 행동일 필요가 없다… 오늘날 우리는 국가 통치 기술과 기반시설, 군사 조직, 정치적 통찰력 때문에 로마를 우러러본다. 그러나 로마의 가장 놀라운 유산은 접목 기술이다.”

역사의 연쇄는 문화에 대한 재해석이 어떤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아울러 원작자라는 직함은 그리 큰 힘을 갖지 않는다는 것도. 때론 오해나 재해석이 더욱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는 것도. “모두는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는다. 모든 독창성은 다른 사람에게 빌린 것에서 비롯된다. 문화 저장 기술이 발전하여 과거를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게 된 이후 우리 모두는 후발 주자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차용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차용했느냐, 또 우리가 발견한 것으로 무엇을 하느냐이다.”

중국 당나라 현장법사는 인도에서 불교 경전을 구하기 위해서 16년 동안 구법 여행을 다녀왔다. 마침내 인도에서 많은 불경과 불상을 들여옴으로써 부처가 꼭 인도에만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도의 불교를 수용해 중국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그가 성지를 방문하는 경험이 과대평가됐다는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다는 점이다. 현장이 가지고 돌아온 경전과 물건, 관찰과 경험 덕분에 중국 불교는 부처의 고향인 인도의 불교에 열등감을 느낄 필요 없이 번성할 수 있었다.”

이슬람 이전의 지식을 집대성한 바그다드, 서양 예술에 파괴적 영향을 준 중국 경극, 에티오피아 서사시 ‘케브라 나가스트’, 소설가 조지 엘리엇의 역사 소설…. 최초의 예술가가 작품을 남긴 3만5000년 전의 쇼베 동굴에서 시작해 마거릿 애트우드와 한강 작가가 함께한 2114년 ‘미래의 도서관’ 프로젝트까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15가지 문화적 성취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히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부상한 한류 이야기도 재미있다. 저자는 2012년 가수 싸이의 뮤직비디오 ‘강남스타일’이 수십억뷰를 돌파하면서 한류가 정점에 이르렀다며 한류의 성공 배경에는 문화의 혼합과 착종, 변형에 있다고 분석한다.

“한류가 이토록 많은 청중에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은 처음부터 록, 재즈, 레게, 아프로비트 등이 뒤섞인 스타일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이다. 음악적 특징은 주로 묵직한 비트, 듣기 좋은 브리지 부분, 부드러운 랩이 중간에 들어간 R&B 댄스 트랙이며, 대부분 한국어로 부르고 가끔 영어가 들어간다. 뮤직비디오에 딱딱 맞는 군무를 종종 끼워 넣는데 이는 발리우드 같은 문화권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만 미국 대중문화에서는 그다지 흔하지 않다.”

책은 문화의 고유성에 대한 통속적 신화를 파괴하면서 역사를 앞으로 전진시키는 진정한 힘은 무엇인지를 묻는다. 그러면서 최근 팽배해진 국수주의 흐름 속에서 폐쇄된 사회는 결코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고 역설한다.

“순수주의자는 과거와 다른 사회의 의미 생산 전략을 차단하여 자신의 문화로부터 귀중한 자원을 빼앗는다. 문화는 다양한 표현 형식과 의미 생산에 쉽게 접근할 수 있을 때 가능성과 실험을 통해서 번영한다. 문화 접촉으로 선택지가 증가하면 문화 생산과 발전은 자극을 받는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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