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안 늘리면 배심원제 가는 수밖에"… 사법개혁 외친 대법원장

이승윤 기자(seungyoon@mk.co.kr) 2024. 2. 16.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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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대 취임 첫 기자간담회
법관 처우개선 목소리 높여
재판지연 문제 해결 위해선
경력법관 요건 완화 급선무
"배석판사, 경력 3년이 적정"
판사 정원법 국회 통과 호소
법원장 추천제엔 반대 입장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 1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본관에서 열린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자료를 가리키며 사법개혁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대법원

"미국처럼 국민이 배심하고 판사는 판결문을 안 쓰는 체제로 갈지, 아니면 판사 숫자를 대폭 늘려서 국민이 궁금해하는 재판을 하루 종일 심리하고 판사들이 판결문도 쓰는 방식으로 갈지 선택해야 합니다."

지난 15일 조희대 대법원장이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사법개혁'에 대해 묵혀뒀던 말을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그럼 제가 한번 물어보겠습니다'라며 기자들에게 질문하기도 하고 출력해 온 미국 판결문을 하나하나 넘기며 영미법과 대륙법의 차이, 각국의 사법제도와 한국 사법부의 과제를 설명하는 내내 눈이 빛났고 때로는 웃음기 있는 얼굴로 대화를 유도하기도 했다. 재판 지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즉시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최대한 취했고 중장기적으로 법관 증원, 처우 개선 등이 수반돼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모두 입법이 전제돼야 하는 과제다. 이를 위해 대국민 설명에 나서겠다고 밝힌 셈이다.

그는 "영미법계인 미국은 조정·화해와 플리바게닝(유죄협상제)으로 재판의 90~95%가 해결되고, 5% 재판도 배심원들의 판단을 위해 판사들은 진행만 하고 판결문도 짧다"며 "대륙법인 독일식으로 가자면 판사를 많이 채용해 보수도 많이 줘야 하고, 영미식으로 가면 판사는 적게 뽑되 국민이 나서서 생업에 지장을 받더라도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양쪽 입법례 중 선택해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미국 판결문 출력본을 하나씩 넘기며 미국과 한국의 사법제도 차이를 설명했다. 판사 정원을 늘려서 판사가 직접 판결문을 공들여 쓰는 충실한 재판을 받을지, 미국처럼 배심원제로 갈지 선택의 문제라는 것이다. 현재 판사 정원은 3200명으로 2019년부터 묶여 있고, 현원이 3100명을 넘어 올해 더 뽑을 수 있는 판사 수는 두 자릿수에 불과하다. 법관정원법 개정안이 몇 년 전 발의됐지만 함께 발의된 검사 정원 확대를 놓고 여야 의견이 갈리면서 국회에 몇 년째 발목이 묶여 있다.

그는 독일·프랑스같이 대륙법 체제로 운영되면서도 영미법계의 미국처럼 경력법관제를 도입한 나라는 세계에서 벨기에와 한국밖에 없고 벨기에가 겪은 사법 지체, 고령화 등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합의재판이라는 것이 1심에 기본적으로 없고, 무죄가 나면 상고도 되지 않지만 한국은 다르기 때문에 내년부터 7년 이상을 요구하도록 돼 있는 법조 경력 연한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벨기에처럼 (배석판사 등을 할) 경력법관에게 요구되는 경력은 3년 정도가 적당한 것으로 생각된다"며 "나머지 단독판사, 합의재판부는 국회안처럼 7년, 10년 등 경력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7년 이상 변호사를 한 법조인이 판사로 입문해 배석판사를 4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는 "경력법관들에게 들어보면 로펌에서 10년 차가 되면 파트너가 돼서 보수도 법관보다 2배 이상 받고 아이들도 커서 돈이 더 필요한데 왜 법관이 되느냐고 가족이 말리는 것을 뿌리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그는 "요즘 챗GPT에 한국어와 영어로 가장 훌륭한 사법제도를 가진 나라가 어디냐고 물어보면 싱가포르라고 대답한다"며 "10년 전 사법개혁에 성공한 싱가포르처럼 한국도 제도적 문제를 근본적으로 들여다보고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싱가포르는 법관 보수를 대형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 보수에 버금갈 정도로 인상하고 국제상사 재판부 문호를 외국인에게도 여는 등 사법개혁을 시행했다.

판결문 공개에 대해서는 찬성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대한변호사협회, 사법부, 언론이 동시에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입법화할 것을 제안했다. 또 그는 사법부의 예산 자율 편성권, 법률 제청권 필요성도 언급했다. 법률 제청권이 없으니 국회에 부탁하게 되고 정치권에서 그 대가로 사법부에 청탁하는 구조가 문제라는 것이다.

정치적 분쟁이 법원으로 옮겨 오는 '사법부의 정치화'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판결로 당당하게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법원장 추천제에 대해서는 "법원 구성원이 법원장을 추천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며 하반기에 구성원 의견을 들어보겠다고 설명했다. 임기 내 꼭 완료하고 싶은 것 을 묻는 질문에는 "'사소한 것이라도 절대 법과 원칙에 어긋나지 않게 하는 것이 법원'이라는 인상을 국민이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승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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