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대학원생에 월 80만~100만원?... 과학계 "R&D 예산 깎고 조삼모사" 떨떠름
재원은 어차피 과학자가 딴 국가 연구비
연구실별 떼내 기관이 모아 인건비 배분
도덕적 해이 우려 vs 신진연구자에 도움
정부가 국가연구개발(R&D) 사업에 참여하는 이공계 대학원생들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생활비를 보장하는 '연구생활장학금' 제도 도입을 추진한다. 석사과정생은 80만 원, 박사과정생은 110만 원 수준을 보장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미 R&D 예산 삭감으로 일부 대학원생들은 월급이 깎이는 등 타격을 입은 터라, 총선용 민심 달래기 정책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학생인건비 풀링제 확대가 전제
16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올해 상반기 안에 '한국형 스타이펜드(Stipend)' 제도를 마련한다고 밝혔다. 스타이펜드는 학생연구원들이 학업과 연구에 전념할 수 있게 학교가 매월 일정 수준 이상의 생활비를 지원하는 제도로, 미국·영국·독일 등 주요 과학기술 선진국에서 실시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2018년 4대 과학기술원을 중심으로 도입돼 운영 중이다. 이번에는 제도 설계를 마치는 대로 하반기 중 학교별로 신청을 받아 확대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과기정통부 설명에 따르면 스타이펜드에 사용되는 재원은 기본적으로 연구책임자가 따낸 국가 R&D 사업 예산이다. 현재 대다수 대학 연구실은 안정적인 대학원생 인건비 지급을 위해 '학생인건비 풀링제'로 사업별 인건비를 통합해 관리하고 있다. 그런데 개별 연구실마다 연구사업 참여 정도나 여건 등이 달라, 같은 학과 내에서도 인건비 수준이 천차만별이다. 이에 정부는 스타이펜드 제도하에서는 풀링제를 학과를 비롯한 기관 단위로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기관 단위 풀링제에 참여 중인 대학은 56곳뿐이다. 즉 여러 연구실에서 나온 인건비를 함께 적립해두면, 같은 학과인데 어느 연구실은 넉넉하고 어느 연구실은 학생들이 생활고를 겪는 상황이 생기지 않을 거란 설명이다.
생활비 보장 규모는 현재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수준(석사과정생 80만 원, 박사과정생 110만 원)으로 고려하고 있다. 만약 풀링제를 통해 모인 인건비 재원이 이 수준을 보장하지 못할 정도로 부족하다면 정부에서 일정 부분 재정 지원을 하겠다는 방침이다. 또 연구실 여건에 따라 이보다 더 많은 생활비를 지급할 수도 있다. 정부는 이 외에도 △이공계 대학원생 대통령 과학장학금 △젊은 과학자 연구지원 프로그램 등을 확대하겠다는 방안을 내놨다.
R&D 예산 파이가 이미 줄었는데...
하지만 현장 반응은 떨떠름하다. 올해 R&D 예산이 대규모로 쪼그라들었기 때문이다. 이미 연구비 삭감으로 인건비가 줄었는데, 100만 원 수준의 생활비 지급이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다. 정두호 전국대학원생노조 지부장은 "R&D 예산으로 월급을 받는 식이라 이미 월급이 삭감됐거나 계약이 해지된 학생들도 있다"며 "본질을 그대로 두고 생활비 보장 방안을 만들겠다는 건 조삼모사"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기관별 풀링제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있다. 연구실별로 사업 수주 상황이 다를 텐데, 이 중 일부를 떼내 '모아서' 지급하기 시작하면 도덕적 해이나 형평성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연구자는 "연구비는 각 교수가 노력한 결과물이다. 노력을 크게 하지 않아도 학생인건비를 지급해줄 수 있으면, 누가 열심히 하겠는가"라고 꼬집었다. 한 학생연구원은 "교수는 학생인건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스타이펜드를 통해 받은 생활비를 연구실 운영비로 토해내게 할 수도 있다"며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정적인 생활비 확보가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시각이 없진 않다. 이동헌 KAIST 대학원 총학생회장은 "많은 대학에 이 같은 제도가 도입되는 것은 연구 확대를 위해 좋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학업에 뜻이 없는데 생활비를 받으려고 진학하는) 공급 과잉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고 했다. 한 신진연구자는 "R&D 사업을 따기 힘든 신진연구자에게는 학생을 모아 연구실을 운영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고마운 제도로 보인다"고 평했다.
오지혜 기자 5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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