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마흔 살의 직업 탐색

2024. 2. 16.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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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국가기술자격 시험 중 한 분야의 필기시험을 치렀다.

문제를 풀고 정답을 맞히는 일을 힘들어해서 요즘에도 교실에 앉아 시험 보는 악몽을 꾸는데, 그런 내가 제 발로 시험장에 들어선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농업 분야의 기술자격 시험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글쓰기라는 내 직업을 좀 더 좋아하기 위해서였다.

해당 분야에서 일한 경력이 있어야 시험을 치를 자격이 주어진다는 특정 요건을 보면서 나는 내가 아직 초보의 반열에도 끼지 못하는 입문자라는 걸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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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답, 해석 없는 소설 쓰다
암기·정답 맞히는 첫 자격시험
좋아하는 것 더 알고 싶어 공부
배우는 설렘 점수 매길 수 없어

얼마 전 국가기술자격 시험 중 한 분야의 필기시험을 치렀다. 문제를 풀고 정답을 맞히는 일을 힘들어해서 요즘에도 교실에 앉아 시험 보는 악몽을 꾸는데, 그런 내가 제 발로 시험장에 들어선 것이다. 시험을 준비하며 나는 생전 처음 보는 개념어를 익히고, 동영상 강의를 듣고, 기출문제를 풀었다. 형광펜으로 중요 내용을 표시하면서 이렇게 공부하는 게 참 오랜만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일하는 곳은 정해진 정답이나 해석은 없다고 말하는 예술 분야이니 말이다. 하지만 낯선 용어를 달달 외우고, 빈칸에 숫자를 채우는 방식이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열심히 암기해서 틀렸던 문제를 맞히면 머리가 상쾌해지며 뿌듯함이 일었다. 어찌 됐든 시험이란 건 성실하게 시간을 쏟은 사람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공평한 테스트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런데 소설 쓰는 사람이 웬 기술자격 시험이냐며 고개를 갸우뚱거릴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내가 식물의 구조를 외우고, 작물의 특징을 공부하게 될 줄 몰랐다. 단지 좋아하는 대상을 좀 더 잘 알고 싶은 마음이 그 시작이었달까. 처음엔 그저 나무와 숲이 있는 풍경에 더 오래 머물고 싶은 바람이 컸다. 글을 쓰다 보면, 여러 인물의 내면과 사건을 따라 머릿속이 쉴 새 없이 요동치지만, 실제로 내 몸은 컴퓨터 앞 의자에 붙박여 있다. 정신은 마치 한계가 없는 듯 시공간을 넘나드는데, 현실의 몸은 웅크린 허리를 펴거나 집 안을 배회하는 것뿐이다.

그러다 밖으로 나가 가로수를 올려다보면 갑갑했던 숨이 탁 트인다. 공원을 걸으며 숲의 풍경과 나무들 사이를 오가는 새를 보고 있노라면, 나를 괴롭게 한 허구 속 문장들이 저만치 멀어진다. 한동안 흙과 나무 냄새에 푹 젖어 있으면, 복잡한 내 머릿속과 무관하게 세상은 잘 존재한다는 걸 깨닫는다. 무엇보다 내가 쓴 글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나 자신과 내 주변 사람을 못살게 구는 일이 줄어든다.

그러니까 내가 농업 분야의 기술자격 시험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글쓰기라는 내 직업을 좀 더 좋아하기 위해서였다. 내게 주어진 일을 지나치게 무겁게 받아들여 거기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 세상에는 무수한 직업과 일이 있다는 걸 확인하며 그 튼튼한 노동의 기초를 나도 조금이나마 배우고 싶었다.

원서를 제출하며 나는 관련 사이트에 들어가 다양한 시험 시행 종목을 살펴봤다. 건설, 화학, 광업, 에너지환경 등 여러 갈래로 나뉜 종목 안에는 기능사부터 기술사까지 자격 단계가 구분돼 있었다. 해당 분야에서 일한 경력이 있어야 시험을 치를 자격이 주어진다는 특정 요건을 보면서 나는 내가 아직 초보의 반열에도 끼지 못하는 입문자라는 걸 실감했다.

드디어 시험 날, 나는 시험장 대기실에 앉아 오답 노트를 봤다. 한 문제라도 더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걸 보니 영락없는 수험생이었다. 시험 시간은 총 1시간이었는데, 무슨 일인지 몇 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사람들이 하나둘 시험장을 나갔다. 나는 그 문소리에 초조해하면서도 쉽게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어느새 시험장엔 나와 감독관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다행히 결과는 합격이었다. 아직 2차 필답고사를 치르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첫 단계를 무사히 통과한 게 기쁘다. 나는 운전면허증이 없어서 만약 내가 최종 합격한다면, 생애 최초로 국가공인 자격증을 얻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 설마, 이렇게 공개적으로 말해놓고 다음 시험에서 똑 떨어지는 건 아니겠지? 마흔이 되어서도 삶을 위한 직업 탐색은 끝나지 않고, 배움의 길은 때론 예술처럼 정해진 규칙을 벗어난다. 어떤 세계를 더 알고 싶은 마음, 그 호기심과 시작하는 이의 설렘은 점수를 매길 수 없을 테니까.

[김멜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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