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에 대한 인내와 존중[살며 생각하며]

2024. 2. 16.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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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만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현대·전통 어우러진 한국인
일상생활 속 갈등·대립 잦아
90년대까진 ‘나’보단 ‘우리’
요즘은 ‘우리’보다 ‘나’우선
‘나만이 절대 옳다’ 인식 대신
상대방을 존중하고 인정해야

올해도 두 번이나 새해를 맞이했다. 우리는 매년 양력과 음력 새해를 맞이한다. 달력은 신정(新正)에 새해로 넘어가지만, 마음은 음력 설날이 돼야 새해를 받아들인다. 설 연휴에 먼 길을 달려 고향으로 가서 흩어져 살던 가족과 친인척을 만나 세배드리고 차례를 모시고 성묘도 하고 음식을 나누면서 새해임을 확인한다. 어수선했던 설 연휴가 지나야 본격적으로 새해의 삶을 시작하기 위한 마음의 시동을 건다.

양력과 음력 새해를 맞이하듯이, 우리의 마음에는 현대식과 전통식의 이중적 의식구조가 공존한다. 설에 고향을 찾는 사람이 많지만,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대개 설을 즐거운 명절로 여기지만 괴로운 부담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가족 구성원 간에도 설 연휴를 어떻게 보낼지 각기 생각이 다르다. 교통 체증을 겪으며 꼭 부모님을 뵈러 가야 하는지, 남편과 아내의 부모 중 누구를 먼저 찾아뵈어야 하는지, 차례상 준비를 누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와 같은 문제로 가족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다. 설 연휴가 끝나면 부부 갈등으로 심리상담소를 찾는 내담자가 늘어난다.

모든 사회에는 구성원의 생활 방식과 가치관에 영향을 미치는 주류 문화가 있다. 네덜란드 사회심리학자인 헤이르트 호프스테더는 다국적 기업인 IBM에 근무하는 66개국 11만 명의 종업원을 대상으로 의식구조를 조사해 여러 나라의 문화를 4개의 차원, 즉 개인주의-집단주의, 평등-불평등, 남성성-여성성, 불확실성 회피-수용 문화로 구분했다. 1990년 전후의 우리 사회는 집단주의, 불평등, 여성성, 불확실성 회피가 우세한 문화로 평가되었다.

세월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우리 사회는 집단주의 문화에서 개인주의 문화로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사람들이 ‘나’보다 ‘우리’를 중요하게 여기고 가족과 집단에 대한 강한 소속감을 느끼면서 관계를 중시하고 조화를 추구한다. 반면에,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우리’보다 ‘나’를 우선시하고 집단에 대한 소속감이 약하며 사생활을 중시한다. 우리 사회에 1인 가구와 비혼주의자가 늘어나고 결혼율과 출생률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것도 개인주의 문화의 확산과 관련되어 있다. 직장에서는 강력한 개인주의로 무장한 MZ세대의 출현으로 기성세대가 당황스러워한다.

또한, 우리 사회는 불평등 문화에서 평등 문화로 바뀌고 있다. 불평등 문화에서는 조직의 상급자와 하급자가 지니는 권력의 불균형을 당연시하기에 하급자는 권력의 불평등을 수용하고 상급자의 명령에 순종한다. 반면, 평등 문화에서는 하급자들이 상급자와 조직 내의 역할은 달라도 권력은 대등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상급자에게 일방적으로 순종하지 않는다. 그래서 호된 시집살이를 했던 시어머니들도 요즘은 며느리의 눈치를 보는 세상으로 변하고 있다. 직장에서도 상사가 부하 직원을 함부로 대하면 ‘갑질’로 여겨져 곤욕을 치른다.

이와 더불어 우리 사회는 겸손·보살핌·협동의 가치가 강조되는 여성적 문화에서 자기주장, 경쟁, 물질적 성취가 선호되는 남성적 문화로 변모하고 있다. 동시에 불확실성을 위험으로 여기며 회피하는 문화에서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수용하는 문화로 변화하고 있다. 그래서 누구나 불이익을 받으면 머리에 빨간 띠를 두르고 나서는 시위 문화가 일반화했을 뿐 아니라, 주식이나 코인 투자에 올인하는 사람이 늘어난다.

우리 사회는 기존의 문화와 새로운 문화가 혼재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가치관이 부딪치는 ‘문화의 충돌’이 일어난다. 집단주의 문화에 익숙한 노인들은 개인주의 사고방식을 지닌 젊은이들을 이해하기 어렵다. 평등 문화를 선호하는 젊은이들은 불평등 문화에 익숙한 기성세대의 행동을 혐오한다. 이러한 문화와 의식구조의 충돌은 세대 갈등, 남녀 갈등, 노사 갈등, 보수와 진보의 갈등과 같은 사회적 문제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는 부모-자녀 갈등과 부부 갈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문화의 충돌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다름에 대한 인내와 존중’이다. 인간은 자신과 다른 생활 방식과 가치관을 지닌 사람을 본능적으로 혐오하며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혐오는 분노와 공격성을 유발하고 대립과 갈등으로 비화하여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 뿐이다. 다름을 인내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활 방식과 가치관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는 동시에 자신과 다른 견해를 지닌 사람에게 느끼는 이질감과 불쾌감을 참고 견디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양한 사람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 서로의 다름을 혐오하게 되면 대립과 갈등이 심화하지만, 다름을 수용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면 새로운 창조의 문화로 발전할 수 있다.

정치는 정치인들만 하는 것이 아니다. 가정에서도 정치가 필요하다. 정치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타협과 절충을 통해 모두의 이익을 최대화하려는 노력이다. 가정에서도 부모와 자녀는 서로의 생활 방식과 가치관이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남편과 아내는 자신의 바람을 분명하게 주장하되 적절한 선에서 타협하는 것이 지혜롭다. 올해는 설 연휴에 고향을 방문했지만, 내년에는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이번 명절에는 시집에 먼저 가고, 다음 명절에는 처가에 먼저 갈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제 생각이 옳다고 믿는다. 상대방의 생각을 변화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생각이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의 바람을 절충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하는 지혜로운 노력이 필요한 시대다.

권석만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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