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은 왜 임종석을 밀어낼까…‘8월 전대’ 당권 누가 쥐나 ‘明-文 내전’ 격화
친명, ‘대선 패배 책임론’ 꺼내든 속내는…총선 이후 ‘당권’ 친문에 넘어갈까 우려
(시사저널=김종일 기자)
원내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지금 세 개의 전쟁이 치러지고 있다. 먼저 '공천 전쟁'이다. 4·10 총선의 공천 국면이 본격화되자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는 당권파인 친명(親이재명)계와 민주당 최대주주인 친문(親문재인)계의 갈등이 위험 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책임론' '86세대(80년대 학번·60년대생) 용퇴론' 등 다양한 명분이 제기되고 있지만, 갈등의 뇌관은 결국 '민주당의 주류를 누가 차지할 것인가'에 있다. 민주당이라는 한 지붕 아래에 있지만, 친명계와 친문계는 완전히 다른 세계관을 가진 세력이다. 즉 주류 교체 전쟁으로 연결되는 공천 전쟁은 '민주당의 주인이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직결된다. 양쪽 모두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인 셈이다.
사실 총선 공천 과정은 '전쟁' '내전' 등의 표현이 나올 만큼 늘 치열했다. '아름다운 공천'이란 말은 형용모순과 같다. 하지만 이번 공천 전쟁은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할 전망이다. 이미 친문 대 친명 계파 간 충돌이 시작됐다. 홍영표 대 이동주(인천 부평을), 도종환 대 이연희(충북 청주흥덕), 전해철 대 양문석(경기 안산상록갑), 윤영찬 대 이수진(경기 성남중원), 강병원 대 김우영(서울 은평을) 등의 대결이 펼쳐지고 있다.
'임종석 공천' 갈등의 숨은 함수
명실상부한 주류가 되고자 하는 친명계 입장에선 '공천의 정치적 공간'이 너무 좁다. 친문 세력은 2012년과 2016년, 2020년 총선 등 세 차례나 공천권을 행사했다. 그만큼 친문계는 두텁고 지역구 입지는 탄탄하다. 친명계 입장에선 '쳐내야 할' 전선이 너무 넓다는 뜻이다. 그런데 민주당의 2020년 총선 압승과 2022년 지방선거 대패로 정치 신인들이 나설 공간은 협소하기 그지없다. 친명계 대다수는 지금 원외 인사들로 구성돼 있다.
여기에 선거제가 준연동형으로 최종 결정되면서 이재명 대표가 행사할 수 있는 비례대표 공천권마저 현저히 줄어들었다. '통합형 비례정당'이라는 준위성정당을 만들기로 한 만큼 공천권을 범야권과 나눠야 하기 때문이다. 즉 이번 총선을 통해 '이재명의 민주당'을 완성하고자 하는 친명계 입장에선 결국 친문계를 더 많이 밀어낼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이 대표가 "새 술은 새 부대에"(2월13일), "떡잎이 져야 새순이 자란다"(2월14일) 등의 메시지를 연일 발신하고, 최근 탈당 이력이 있는 친명 출마자들에게 공천 심사에서 감점 규정을 적용하지 않기로 하는 결정을 당내 반발에도 밀어붙인 배경에는 이런 맥락이 자리한다.
두 번째 전쟁은 '당권 전쟁'이다. 민주당은 4월 총선을 치른 지 4개월 만인 오는 8월 새 당대표를 뽑는 전당대회를 연다. 공천 전쟁이 주류 교체 전쟁이라면, 당권 전쟁은 그 화룡점정을 찍는 일이다. 지금 친명계가 문재인 정부 초대 대통령비서실장인 임종석 전 실장의 출마를 문제 삼는 '진짜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분석이 있다. 친명계에서는 임 전 실장이 전면에 나설 경우 총선에서 전(前) 정권 책임론이 더 거세질 수 있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당 안팎에선 8월 전당대회에서 '친문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는 임 전 실장을 미리 밀어내는 차원이라는 해석이 더 많다.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이 대표를 제외하면 마땅한 대권주자가 없는 친명계는 임 전 실장이 이번 총선에서 서울 중·성동갑 공천을 받으면 민주당 강세 지역이니만큼 총선에서 어렵지 않게 승리하고 오는 8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권을 접수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재명의 민주당'이 '2년 천하'로 막을 내리고 다시 비주류로 전락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이에 친명계에서는 최근 심심찮게 이 대표의 8월 전당대회 재출마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당내 주도권을 뺏기지 않기 위해 이 대표가 상례를 깨고 대표직 연임에 도전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실제 임 전 실장은 이 대표의 대항마로 떠오를 만큼 민주당에서 다양한 정치적 자산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친문·86그룹의 대표주자이면서 동시에 호남 출신(전남 장흥)이기 때문이다. 현재 민주당에서 뛰고 있는 선수 중 86그룹의 적자이자 친문의 적자라는 두 개의 상징성을 모두 보유한 인물은 그가 유일하다. 현재 친문계는 당내 최대주주지만 뚜렷한 원내 구심점이 없다는 한계를 노출해 왔는데, 86그룹의 대표 격이자 친문 세력과도 우호적인 임 전 실장이 국회에 입성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특히 '민주당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호남이 다음 대선의 새로운 선택지로 호남 출신의 임 전 실장을 미는 전략적 선택을 한다면, '임종석 바람'은 예상보다 크게 불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이재명 대표는 경북 안동 출신이다.
현재 민주당에서 치러지는 두 개의 전쟁은 자연스럽게 차기 대권주자 자리를 둘러싼 세 번째 전쟁으로 연결된다. 세력(총선)과 당권(전당대회)을 둘러싼 내전은 결국 다음 대권으로 가는 길을 더 탄탄하게 하기 위한 과정이다. 대선후보는 두 명일 수 없다. 당연히 양보는 없다. 지금 민주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 개의 전쟁은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고 격렬하게 진행 중이다. 세 개의 전쟁은 각각 다른 시기에 진행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여러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향후 정국도 요동치게 될 게 틀림없다. 시사저널이 지금 민주당에서 펼쳐지고 있는 세 개의 전쟁의 다양한 시나리오와 변수를 점검한 이유다.
양지 출마하는 이재명, 임종석에겐 험지 출마 요구
민주당에서 '공천 전쟁'과 '당권 경쟁'이라는 두 개의 전쟁은 포개져서 치러지고 있다. 그 전쟁의 중심에는 이재명 대표의 유력한 당권·대권 경쟁 상대일 수 있는 임종석 전 실장이 자리한다. 수면 아래서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던 양상은 친명계가 2월초 선전포고를 날리면서 폭발 직전의 갈등 수준까지 치달았다. "선배 정치인"들과 "윤석열 검찰정권의 탄생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의 자발적 용퇴를 요구한 임혁백 공천관리위원장의 2월6일 발언이 시작이었다. 시점이 묘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가 2월4일 회동을 갖고 '단결'과 '통합'이라는 메시지를 낸 지 불과 이틀 만에 결이 다른 메시지가 나왔기 때문이다.
같은 날 친명계 중진인 정성호 의원의 발언으로 친문계의 의심은 곧 확신이 됐고, 갈등은 빠르게 확전 양상으로 악화됐다. 정 의원은 이날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노영민·임종석 전 비서실장 관련해서는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데에 대해, 문재인 정부에서 가장 책임 있는 역할을 했던 분들이 책임을 져야 되는 게 아니냐는 일부 여론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이에 임혁백 위원장의 메시지가 친명 지도부와 교감 아래 나왔다는 해석이 당내에 급속히 퍼졌고, "뺄셈정치가 극에 달했다"(고민정 최고위원), "이 상황을 그대로 두면 이 대표가 동의하고 있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윤건영 의원) 등 친문계의 강한 반발이 나왔다. 임종석 전 실장은 "여기서 더 가면 친명이든 친문이든 당원과 국민들께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까지 했다.
갈등이 악화일로로 치닫자 "단결만이 답입니다"라는 이 대표의 메시지가 2월9일 나왔다. 이 대표는 "계파를 가르고 출신을 따질 여유가 없다"며 "친명·비명 나누는 것은 소명을 외면하는 죄악"이라고 했다. 임혁백 위원장도 자신의 발언이 특정인을 겨냥한 게 아니라는 설명을 내놓으면서 사태는 잠시 소강 국면으로 접어들었지만, 임종석 전 실장 공천이란 민감한 폭탄을 사실상 지도부가 넘겨받으면서 향후 공천 여부에 따라 계파 갈등은 중대 고비를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취재에 따르면, 최근 민주당 내부에서는 친명계가 총선을 불과 60일도 남겨두지 않고 임종석 전 실장 등 친문계 핵심의 2선 후퇴를 강하게 요구하는 것이 과연 정무적·전략적·타이밍적으로 적절했는지에 대한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명분'과 '자기희생' 등 사전 정지 작업이 뒷받침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다. '대선 패배 책임론'에서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표도 자유로울 수 없는데, 정작 이 대표는 험지 출마나 불출마 대신 민주당 텃밭으로 평가받는 인천 계양을에 출마하기 때문이다. 또 여당이 프레임으로 제기하고 있는 '86 운동권 심판론'을 그대로 받는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한 지적도 제기된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당의 한 의원은 "옳고 그름을 떠나서 보면, 친문계를 향한 이 대표의 압박은 정치 문법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며 "자신과 핵심 측근들의 자기희생 없이 상대를 밀어붙이는 태도로는 당내 호응은 물론 여론의 지지도 얻기 힘들다. 2020년 당시 이해찬 대표는 총선 불출마를 일찌감치 선언하며 정치의 공간을 열고 당의 기강도 잡았다. 지금 이 대표는 일의 순서를 뒤집어서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민주당에서 주요 당직을 맡았던 한 관계자는 "이 대표가 86 운동권 출신을 몰아내면 민심이 그걸 혁신이라고 평가해줄 것이라는 오판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공천만 보면 민주당의 대여(對與) 전략은 부재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공천의 결과에 따라 지지층의 투표율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한다.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는 2007년 대선 때 정동영 후보 사례를 들며 "민주당 유권자들은 이런 갈등이 있을 때마다 투표장에서 이탈한 경험이 있다"며 "큰 전쟁을 막는 상징적인 제스처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임종석 아웃' 강수 두는 속내엔 '원내대표 경선' 트라우마
사실 이재명 대표와 친명계가 자기희생 없이 친문계를 압박했을 때 어떤 반발과 반작용이 있을지 예상하지 못했을 가능성은 작다. 정치는 사실의 게임이 아니라 인식의 게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중요한 질문은 '그럼에도 왜 밀어붙였나'가 된다.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친명계는 당권을 쥐고 있음에도 여전히 당을 충분히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이 있다고 한다. 그 결정적 계기가 바로 지난 원내대표 경선이다. 지난해 9월 당시 경선은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가결 후폭풍으로 기존 박광온 원내지도부가 물러나면서 치러져 친명계가 미는 홍익표 의원이 넉넉하게 당선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하지만 홍 의원은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에 실패해 남인순 의원과 결선투표까지 치렀다. 민주당은 결선투표의 구체적 결과를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남 의원은 과반에 조금 못 미치는 득표를 했다고 알려진다. 이런 결과에 친명계는 내부적으로 새파랗게 질렸다는 후문이다. 친문계가 대거 남 의원을 밀었고, 까딱 잘못했다면 경선에서 질 수 있었다는 사실과 함께 자신들이 여전히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친명계 입장에서는 일종의 트라우마"라고 했다.
최근 이 대표가 최고위원들을 일일이 설득하면서까지 탈당 이력자 16명에 대해 총선 경선에서 감점 규정을 적용하지 않기로 한 결정을 내린 것에도 이런 배경이 자리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상자 상당수가 친명계 인사들로 비명계 현역 의원 지역구에 출마를 준비하고 있어 이 결정을 내린 최고위에서도 반론과 이견이 상당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전무후무한 일"(박용진 의원)이라는 비판이 나올 만큼 당직자들 사이에서도 무리수라는 내부 비판이 컸다. 민주당 당헌에 따르면 탈당 경력이 있는 출마자는 경선에서 얻은 득표율의 25%를 감산하는 페널티를 적용받는다. 하지만 이 대표는 처음 회의에서 최고위원들의 반발이 있자 한 명 한 명 설득하며 결국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다고 알려진다. 뒤집어보면, 그만큼 지금 이 대표 입장에서는 이 사안이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었다는 뜻이 된다.
이제 이 대표는 총선의 승패를 결정할 중대한 갈림길에 섰다.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것이다. 이 대표 입장에서 예상되는 네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①최선: 임종석은 아웃, 당은 승리 ②차선: 임종석도 승리, 당도 승리 ③차악: 임종석은 아웃, 당도 패배 ④최악: 임종석은 승리, 당은 패배. 지금 이 대표와 친명계는 ②와 ④를 우려한다. ①이 최선인데, 후폭풍이 걱정이다. 정치에서 지지 기반을 넓히면 이기고 좁히면 진다는 말은 진리와도 같다. 이미 이낙연 전 대표를 떠나보낸 이재명 대표다. 정치 싸움의 승패는 명분·타이밍·세력이 결정한다(박성민 컨설턴트). 과연 민심은 어떤 평가를 할까. 선택은 이재명 대표의 몫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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