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소방관 순직, 모르고 기다리던…'두 고양이'가 남았다
부모는 아들 잃은 슬픔 극심, 고양이 볼 때마다 맘 아파 팅커벨프로젝트에 '입양' 부탁
팅커벨프로젝트, 경북 상주 내려가 두 고양이 구조
황동열 대표 "팅커벨 입양센터 고양이방에서 잘 돌보다, 가족 찾아주려 합니다"
1월 31일 오후. 두 고양이, 흰둥이와 두부는 여느 때처럼 집에서 '집사'를 기다리고 있었을 거였다. 홀로 살던 집사의 단짝이었으므로.
집사와 고양이가 처음 만난 건 2018년 가을이었다. 당시 집사는 특전사 제대 후 태권도 사범을 하고 있었다. 흰둥이와 두부는 새끼 고양이였다.
이후 집사는 '사람 구하는 일이 더 보람 있을 것 같다'며 소방관 시험에 도전했다. 고된 공부를 하던 시절에도, 두 고양이는 언제나 함께였다. 2021년 8월, 경상북도 소방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을 때에도 기쁨을 함께 나눴다.
그날, 지난달 31일. 집사는 여느 때와 달리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저녁에도 밤에도, 다음날 아침에도. 이제는 5살이 된, 영문 모를 두 고양이가 집사를 하염없이 기다렸어도.
집사 이름은, 경북 문경소방서의 고(故) 박수훈 소방교(35). 그날 오후 문경 육가공업체 공장에서 불이난 현장에 가 있었다. 평소 "난 소방과 결혼했다"고 말할 정도로 사명감 짙은 그였다.
그 화재 현장에서도 사람이 있을 수 있단 말에 수색하러 들어갔다. 고립됐고 건물이 무너졌다.
다음날 그는 숨진 채 발견됐다. 떠나면서도 남겨질 두 고양이들이 걱정됐을 거였다. 아마도.
"고 박수훈 소방관님이 키우던 고양이가 두 마리가 있는데, 팅커벨에서 돌보다 입양보내줄 수 있느냐고 했지요."
황 대표는 전화를 받는 순간, 빈 집에 보름이나 남겨져 있었을 고양이들을 염려했다. 팅커벨 입양센터엔 보호 가능한 고양이가 8마리. 마침 노묘 두 마리가 집중 케어가 필요해 빠진터라 여지가 있었다. 절차에 따라 팅커벨 정회원들에게 데려와도 될지 물었다. 만장일치로 구조에 동의했다.
14일, 황 대표는 경북 상주로 내려갔다. 왕복 7시간 거리를 직접 간 건, 박 소방교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나 애도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였다. 도착한 곳은 3층짜리 빌라. 1층 현관 앞엔 박 소방교의 아버지가 마중 나와 있었다.
인사를 드리고 황 대표가 주인 없는 빈 집에 들어섰다. 두 고양이, 흰둥이와 두부가 있었다. 한쪽 벽엔 밥을 먹을 수 있게 급식기가 놓여 있었다. 그 옆엔 사료가 놓여 있었다.
"팅커벨 입양센터 아이들도 먹는 아주 좋은 사료더라고요. 고인께서 아이들을 얼마나 잘 돌보셨는지 알았지요."
아들이 집을 비울 때마다, 박 소방교 아버지가 고양이들을 돌봤단다. 그런데 지금은 자식 잃은 슬픔에 깊이 잠겨 있어 여력이 안 됐다.
"고양이들을 볼 때마다 아들이 너무 생각나고, 마음이 아파서 이리 보낸다고요. 너무 많이 죄송해하며 부탁하시더라고요.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요."
황 대표는 아무 걱정 말라고, 입양센터 고양이방에서 잘 돌보다 좋은 가족에게 보내겠다고 안심시켰다.
"야옹, 야옹하고 우는 소리가 계속 들리는데 맘이 너무 아픈 거예요. 지금 어디 가는지도 모르고, 잘 돌봐주던 주인은 세상에 없고…."
서울에 도착해 팅커벨 연계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했다. 아픈 데가 있는지. 중성화도 다 돼 있고, 영양 상태도 좋고 괜찮았다. 박 소방교가 순직한 뒤 돌봄을 잘 받지 못해, 털만 좀 엉켜 있는 정도였다.
15일 오전에 황 대표와 함께 병원에 갔다. 입원실에 들어가자 '야옹, 야오옹'하는 소리가 들렸다. 흰둥이와 두부가 우는 소리였다.
퇴원시켜 차에 태우고 인근 팅커벨입양센터로 갔다. 고양이 방은 두 개로 나뉘어져 있었다. 두 고양이는, 일단 다른 고양이와 합사 전 분리된 방에서 지내기로 했다.
방 안에 내려놓자 야옹거리던 흰둥이가 먼저 캔넬을 빠져 나왔다. 이어 두부도 천천히, 조심스레 밖으로 나왔다.
두 고양이는 캣타워며 집이며 깔려 있는 이불 등을 두루 둘러보았다. 냄새도 맡고, 위로 올라가기도 하고, 스크래처를 긁기도 했다. 금세 적응하는 모습이었다.
이내 흰둥이부터 가까이 다가와, 몸을 기대고 부비었다. 천천히 몸과 머릴 쓰다듬어 주니 좋은듯 더해달라고 했다. 이어 두부도 온기가 그리웠는지, 다가와 만져달라고 했다. 양손으로 두 아이들을 어루만졌다. 황 대표는 "성격이 순해서 다른 아이들이랑도 잘 지낼 것 같다"며 "입양센터서 잘 지내게 하다가 좋은 가족을 만나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에필로그(epilogue).
황 대표가 두 고양이에게 유독 더 애틋한 이유가 있었다. 그가 이야길 들려주었다.
12년 전 어느 날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폐암 말기로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어머니와 황 대표가 번갈아가며 간병했다.
전기 합선으로 집에 불이 났다. 그날 그 화재로 황 대표는 어머니를 잃었다. 한 달 뒤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술 마시고 방황할 때, 유기견을 입양한 게 삶을 바라보는 시작이 됐다. 이후 동물보호단체를 이끌게 되었다고.
고 박수훈 소방교의 두 고양이가, 팅커벨 입양센터에 온 15일은 황 대표 어머니의 기일(忌日)이었다. 그밖에도 소방관의 덕을 평소 많이 입었다던 그가 말했다.
"고 박수훈 소방관님께서 목숨을 바쳐 국민을 지켜주셨잖아요. 이제는 국민이, 박 소방관님이 남기고 간 소중한 가족을 지켜드려 은혜에 보답할 때가 아닐까 싶어요."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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