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동현의 예술여행] [11] 겨울 안개 속 가면무도회
겨울의 베네치아는 여름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여름이 무덥고 화창하다면, 겨울에는 차가운 대기와 물이 만나 아침저녁으로 자욱한 안개로 뒤덮인다. 영화 감독 케네스 브래너는 탐정 에르큘 포와로 영화 시리즈로 지난해 ‘베니스 유령사건’을 공개했는데, 겨울의 베네치아는 흡사 그 영화 속 분위기와 비슷하다(영화의 배경도 역시 겨울이다).
이러한 음울함을 깨는 행사가 겨울의 베네치아를 달군다. 바로 베네치아의 사육제다. ‘사육제’는 그리스도교 문화권에서 예수의 부활과 연관된 종교 축제다. 봄의 부활절을 축하하기 위해 그리스도교 문화권은 부활절 앞의 40일간 육식을 끊고 참회하는 기간을 갖는데, 이것이 사순절이다. 사육제는 사순절을 앞두고 10여 일간 흥겹게 먹고 마시며 노는 축제다. 베네치아의 사육제는 종교적 축제의 의미 외에도 12세기 아퀼레이아와의 분란에서 승리하면서 얻은 승전 기념의 의미도 더해졌다. 마리아 축제, 천사 강림, 가면무도회(머스커레이드), 가면 경연 대회 등 유서 깊은 다양한 행사들이 사육제 기간에 열린다. 잠깐 동안 베네치아가 소란스러워지는 이유다.
올해 베네치아 사육제는 1월 27일부터 2월 13일까지 열렸다(매년 일정이 달라진다). 우연히 이 기간에 베네치아를 찾았다. 오전에 산 마르코 광장 근처를 걷고 있자니 안개로 희미한 풍경 속에서 가면을 쓴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본격적인 의상까지 갖추었다). 확인해 보니 사육제 기간이다. 안개가 걷히자 음울한 도시의 분위기가 일변한다. 대운하에서 배 퍼레이드가 열리고, 도시 곳곳에 설치한 간이 무대에서 옛날부터 있을 법한 공연들이 열려 흥을 돋운다. 사육제의 정경은 18세기 베네치아의 풍경과 일상을 담은 화가 카날레토와 그의 제자 과르디의 그림 속에서도 살펴볼 수 있는데, 실제로 보니 더 장관이다. 사육제의 하이라이트는 역시나 베네치아 곳곳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가면이었다. 일견 기괴하면서도 화려한,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꼽히는 가면은 사육제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있었다.
겨울 안개가 주는 적막감, 행사가 보여주는 흥겨움, 베네치아 사육제는 야누스의 얼굴처럼, 기묘하고 흥미로운 양면성을 보여준다. 그 정경이 베네치아라는 도시와 잘 맞아떨어졌다. 물 위에 떠있는 독특한 도시답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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