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영화 통한 지지층 결집

첫 장면에서 바그너의 장중한 음악이 흐른다. 비행기가 뉘른베르크에 도착하고 히틀러가 강림하는 신처럼 트랩을 내려오자 사람들은 “하일 히틀러!”를 외치며 환호한다. 1934년 뉘른베르크 나치 전당대회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의지의 승리’의 한 장면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다큐멘터리로 통하는 ‘의지의 승리’는 베를린올림픽을 기록한 ‘올림피아’(1938) 제작자 레니 리펜슈탈의 작품이다. 이후 영화는 나치 프로파간다(선전)의 핵심 수단으로 사용됐다.

다큐멘터리의 정의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카메라 뒤편에 서서 감독하는 이상 이런 정의는 종종 흔들린다. 있는 사실을 카메라 프레임 속에 담고, 배경음악을 깔고, 여기에 편집을 가하는 순간 인간의 손에 의해 쓰여지는 일종의 허구가 될 수도 있어서다. 반면 극영화는 기록영화와는 달리 단순히 극적인 구성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렇더라도 현실과 아주 동떨어진 상황에서 제작되지는 않는다.

우리 사회는 이런 영화를 통한 선전술의 효과가 큰 축에 속한다. 반공영화 시대를 지나 2000년대 들어 보수 정당은 산업화나 애국심을 자극하는 국제시장(2014년), 인천상륙작전(2016년) 등을 주목했다. 진보 정당에선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변호인(2013년), 택시운전사(2017년), 1987(2017년) 등을 활용했다. 지난해 연말에는 12·12 군사 반란을 그린 영화 ‘서울의봄’이 1000만 관객을 넘어서자, 야당 대표 등은 윤석열정부를 영화 속 군부독재에 견줘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최근 이승만 전 대통령의 생애와 정치적 행적 등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건국전쟁’이 승승장구하자 공수가 뒤바뀌었다. 보수는 앞다퉈 인증샷과 후기를 남기며 영화를 띄우고, 여기에 대통령까지 합세했다. 진보쪽에선 “제2의 4·19혁명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며 못마땅해한다. 물론 지지층 결집에 영화만한 게 없다. 하지만 보수와 진보 모두 자기 진영 인물은 공을, 상대 진영 인물은 과를 크게 보는 게 우리 현실이다. 그러니 진영 갈등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 이런 편향적인 공과 평가가 바뀌지 않는 한 국민통합은 요원할 것이다.

박병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