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그것을 넘어서…

혜원 대한불교조계종 조계사 선감 2024. 2. 16.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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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 스님(조계종 조계사 선감)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는 말이 있다. 수행자에게는 부처나 조사라는 관념도 깨달음에 장애가 되므로 그것조차 넘어서라는 말이다.

이러한 선불교적 가르침은 모든 종교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반면 믿음에 어떤 조건을 걸어 맹목적인 희생을 강요하거나 순수한 기부에도 조건과 세속적 보상을 덧씌워 기만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을 볼모로 달콤한 보상을 약속하며 지배하고 통제하려고 한다. 우리의 구원과 해탈은 욕망과 두려움을 안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성경엔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한다. 재산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욕망을 품고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말이다.

아등바등 이기려고 하는 자존심을 버리고 가장 낮은 곳도 마다하지 않을 때 자존감을 되찾을 수 있고 그 어떤 존귀함이나 성스러움을 바라는 마음을 버렸을 때 마침내 스스로 존귀한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모든 가짜는 무엇을 하면 구원을 얻거나 어떤 성스러운 존재가 될 것이라며 때로는 협박하고 때로는 감언이설로 유혹한다. 세상 모든 이치와 논리를 끌어오거나 온갖 경전을 넘나들며 그것의 합당함을 설파한다. 하지만 그것을 이유로 돈과 희생을 요구한다면 단언컨대 그들은 세일즈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청춘의 삶은 괴롭다. 세상은 녹록지 않고 기성세대의 공고한 틈을 파고들기도 힘들다. 그러기에 방황하며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고 스스로를 의심한다. 그런 이들에게 한 줄기 빛이나 동아줄처럼 그럴듯한 논리로 따스한 구원의 손길을 뻗어온다면 쉽사리 그 마음을 뺏기기 마련이다. 그것에다 이 망할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마저 주어진다면 명분과 실리를 얻는 완벽한 선택이 되지 않겠는가. 그런 마음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우리 삶을 헛되이 소모하게 하는 것들에 삶이 희생당하기도 한다.

기부나 봉사가 복이 되는 것은 욕심을 비우고 순수하게 돕고자 하는 마음 그 자체지 기부를 통해 무엇을 돌려받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다. 이런 기본적인 이치조차 보편적인 가치로 자리잡지 못한 것은 물질과 욕망만을 지나치게 찬탄해온 사회와 사람들의 어리석음 때문일 것이다. 불타는 욕망으로 그것을 충족하려고 찾아온 이에게 줄 수 있는 가르침은 제한적이기 마련이다. 물론 스승의 역량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러한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니 그저 기도하라, 참선하라, 3000배를 하라 등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게 한다. 그 시간이 다할 즈음 그 사람의 마음속 불은 자연스레 꺼지기 마련이다.

강을 건널 때 배를 타고 건너지만 건너고 나서도 그 배를 머리에 이고 가는 사람은 없듯 모든 성인의 가르침은 마음속 욕망과 분노 그리고 집착에서 벗어나게 하는 방편이다. 궁극에 그 무엇을 이룬다거나 얻어지는 게 있을 리 없다. 그저 걸림 없는 평온한 마음으로 돌아갈 뿐이다. 그 평온한 마음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보배라 칭하고 최고의 깨달음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진리로 이르게 하는 길도 집착하지 말라고 하는데 다시 무엇을 진리라 붙잡고 있겠는가.

무언가 의지하고 붙잡아야 한다는 강박증에서 벗어나 그 어떤 대단한 존재가 되지 않아도 스스로 삼천대천 세계를 마주하는 이는 스스로 존귀하다. 작거나 크거나 부족하다고 느끼는 그 욕심을 내려놓는 것으로 마음이 밝고 맑아져 이미 모든 것이 스스로 그러함을 받아들이면 만사가 여의할 것이다. 그 어떤 두려움이나 유혹에도 현혹되거나 동요하지 않는 마음으로 돌아간다면 비로소 온전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다가오는 어떤 재난을 용케 피하더라도 마침내 죽음은 피할 길이 없다. 그 누구도 가본 적 없는 지옥과 극락에 얽매여 삶을 지옥에 내던지지 말며 모든 신과 부처를 넘어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대장부의 삶이다. 목마르면 물을 마시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는다.

혜원 대한불교조계종 조계사 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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