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시대부터 뇌수술… 1만 년 이어온 ‘필수의료’[강인욱 세상만사의 기원]
“뇌수술 후 3분의 1 장기생존”
전쟁과 사냥 통해 발전한 수술
고대부터 사람들은 다양한 전쟁을 벌였다. 유라시아 초원의 유목민들은 곡괭이형 도끼로 서로 머리를 집중적으로 공격했고, 지금도 수많은 전사의 두개골에 그 흔적이 잘 남아있다. 그중에는 몇 번에 걸친 타격을 받고도 회복한 경우도 있다. 한편, 무기용 칼을 수리해서 만든 뇌수술용 메스도 다수 발견되었다. 서로 공격하고 부상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수술법도 발달한 것이다. 심지어 스키타이나 흉노와 같은 유목민들은 머리를 아예 밀거나 가발을 쓴 경우도 종종 발견된다. 이렇게 머리털이 없으면 수술 시에 감염의 위험도 줄일 수 있었다. 지금도 수술 전에 면도는 필수인 것을 생각하면 고대인의 의학적 지식은 우리의 상상 이상이었다.
대마-약초 등 활용해 환자 마취
선사시대부터 외과 수술이 널리 유행했다면 수술 중 환자의 고통을 어떻게 다스렸을지도 궁금하다. 지금 일반적인 마취는 비교적 최근인 19세기에 일본과 서양의 여러 의사로부터 시작되었다. 약간 이견이 있지만 1846년에 미국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이뤄진 클로로포름을 이용한 발치를 근대 마취의학의 시조로 보고 있다. 하지만 고대에 이러한 마취 기술은 발달하지 못했다. 의식을 잃게 하는 마취를 할 경우 환자가 제대로 깨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대신에 환자의 의식을 몽롱하게 하거나 마약 성분을 이용하여 고통을 줄이는 방법이 널리 사용되었다.
중국은 물론이고 한국의 고대사를 연구하는 중요한 역사서, 진수(陳壽)가 편찬한 ‘삼국지’(소설 ‘삼국지연의’와 다름)에는 화타가 사용한 ‘마비산’에 대한 기록이 있다. 대마와 만다라화, 초오, 백지 등 여러 마취 성분을 섞은 것이다. 화타의 처방은 매우 구체적이어서 먼저 침이나 약으로 치료하고 최후의 수단으로 마비산을 마시게 해 수술했다고 한다.
고고학 자료 역시 고대의 마취제를 증명한다. 2400년 전 알타이 고원에서 발견된 여성 샤먼(일명 얼음공주)의 미라 근처에서는 고수, 대마, 물싸리 등의 약초가 함께 발견되었다. 유방암과 낙상 사고로 죽기 전까지 마취 성분이 있는 약초를 마시며 고통을 다스린 흔적이다. 실크로드 타클라마칸 사막의 4000년 전 만들어진 샤오허 무덤에서는 에페드린 성분의 마황이 발견되기도 했다. 한국사에도 마취제의 증거가 있으니 연해주의 옥저 유적 불로치카에서도 다량의 양귀비 씨앗이 발견되었다.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는 무덤에서 고통을 줄이는 약초들이 자주 발견되는 것을 보면 약을 끼고 사는 현대인의 모습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관우가 받은 수술의 진실은
일반인들에게는 삼국지의 주인공 관우가 받은 수술이 유명하다. 관우가 전쟁 중에 독화살을 왼쪽 어깨에 맞아 뼈가 곪고 통증이 심해지자 뼈를 깎는 수술을 받았다. 그 와중에도 관우는 태연하게 장수들과 술을 마셨다고 한다. 다만 일반인들은 소설 삼국지연의의 영향으로 화타가 고쳤다고 오해를 많이 한다. 사실 관우의 수술 훨씬 전에 화타는 죽었고, 관우를 고친 사람은 무명의 군의관이었다. 아마 관우가 마셨던 술에 통증을 줄이는 여러 약초가 섞여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전쟁이 일상화되었던 당시에 병영 내에서 화살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은 일상다반사였고, 관우의 행동은 다른 부상병들에게도 귀감이 되었을 것이다. 아무리 용맹스러운 군사가 있다고 해도 부상자의 관리와 치료가 없이는 제대로 유지되기 어려웠다. 그러니 칭기즈칸이나 티무르와 같이 세계를 정복한 부대의 뒤에는 효과적인 부상병 관리와 치료가 뒤따랐을 것이다. 지금의 눈으로 봐도 쉽지 않은 정교한 외과 수술을 무명의 군의관이 했다는 것은 삼국 간 치열한 전쟁의 보이지 않는 주역은 바로 의술이었음을 의미한다.
인간 사이의 전쟁과 사냥으로 시작된 수술은 기원전 2∼3세기에 본격적인 의사들이 중국과 로마에서 등장하면서 전환점을 맞이했다. 그 과정에서 지난 1만 년간 발달한 외과 의술은 완전히 망각되었다. 동양의학은 수술 대신에 침과 뜸이 발달했고, 지금의 외과 수술은 근대 서양의학의 발달에서 기인했다. 최근 한국을 비롯하여 세계 곳곳에 의료제도를 둘러싼 여러 논쟁이 있다. 1만 년을 이어 온 수술의 역사에서 보듯이 인간의 역사는 언제나 의술과 함께했다. 의술을 제대로 활용한 집단만이 생존할 수 있었다. 21세기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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