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서 감독 욕해도 상관없어” 베테랑이 흔쾌히 희생했다, SSG의 저력은 살아있다

김태우 기자 2024. 2. 15.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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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팀의 깃발 속에 최고의 분위기에서 캠프를 진행하고 있는 SSG ⓒSSG랜더스
▲ SSG는 이숭용 감독의 친화적인 리더십과 추신수를 비롯한 베테랑들의 리더십이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SSG랜더스

[스포티비뉴스=베로비치(미 플로리다주), 김태우 기자] “그냥 다 오픈했습니다”

SSG의 플로리다 스프링캠프를 지휘하고 있는 이숭용 감독은 캠프 시작 후 진행한 몇몇 선수들과 면담에서 어려운 이야기를 꺼내야 했다. 팀의 소금 같은 선수들인 김성현(37)과 오태곤(33)과 면담이 특히 그랬다. 이 감독의 현재 구상에서 이들은 개막전에 주전으로 나설 선수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팀을 이끌어가는 베테랑 선수들이고, 자존심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먼저 둘러대거나 확답을 주지 않는 식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알게 될 일이었다. 거짓말을 하기는 싫었다. 이 감독은 정면 돌파를 택했다. 이들에게 “너희들에게 처음에는 주전 기회가 가지 않을 것이다. 이해해 달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이 감독은 “아예 처음부터 말을 하고 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어차피 욕을 먹을 것이면 바로 하는 게 낫다고 봤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간을 보다가 가면 선수들의 기분이 더 안 좋을 것 같았다. 면담할 때 솔직하게 이야기했고, 뒤에서 감독 욕을 해도 상관없다고 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김성현은 내야의 전천후 선수다. 2루, 유격수, 때로는 3루수로 뛰며 팀에 공헌했다. 지난해 112경기에서 타율 0.268을 기록하는 등 여전히 녹슬지 않은 기량을 뽐내고 있다. 사실 경쟁하는 2루의 어린 선수들보다 성적만 놓고 보면 더 확실한 상수다. 오태곤은 1루와 외야 전 포지션을 오갈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다. 지난해 후반기에는 팀의 주장으로 리더십을 발휘하기도 했다. 이런 선수들에게 ‘개막전 주전은 아니다’고 말하는 게 쉽지 않았다. 받아들이는 선수들도 쉽지 않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 감독은 “선수들에게는 미안했다. 하지만 ‘내가 감독이 된 건 팀의 리모델링 임무도 있으니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대신 스페셜리스트로 1군에서 무조건 쓸 것이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너희들을 믿고 있을 테니 언제든지 이야기를 해라고 말했다”고 떠올렸다. 그렇게 긴장되던 순간, 두 선수의 태도가 이 감독의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두 선수는 “팀에서 저희의 역할이 그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고 답했다. 이 감독이 한시름을 놓는 순간이었다.

주전은 아니지만 이 감독이 두 선수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게 아니다. 이 감독은 “오태곤과 김성현은 정말 필요한 선수들이다. 팀을 구상하는 데 아주 중요한 스페셜리스트들”이라고 누차 강조했다. 1루는 전의산 고명준, 2루는 안상현 김찬형 최준우 김성민 등이 경쟁하고 있지만 이들의 뒤를 받칠 우산 같은 존재들이다. 경기 중‧후반에는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 온다. 베테랑 선수들은 자존심을 굽힌 채 팀에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감독은 두 선수를 잘 대우해준 프런트에도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오태곤은 2023년 시즌을 앞두고 4년 프리에이전트(FA) 계약을 했고, 김성현도 올 시즌을 앞두고 3년간 연장 계약을 했다. 아주 큰 금액은 아닐지 몰라도 팀에 헌신하고 공헌하는 두 선수의 선한 영향력에 높은 점수를 준 것이다. 이 감독은 “프런트에서 대우를 잘해줬기에 나도 어렵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고 했다.

꼭 두 선수뿐만이 아니다. 나머지 베테랑 선수들도 팀을 위해서는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기꺼이 이야기했다. 이 감독은 “추신수를 2번에 둘 구상이라 이야기를 했는데 흔쾌히 ‘2번도 칠 수 있습니다. (1번을 맡을) 최지훈이 살아나가면 내가 좌타자니 지훈이도 더 뛰기 편할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하더라. 그런 것까지 생각을 다 하고 있더라. ‘번트도 시킬 수 있다. 네가 그것을 성공하면 팀 분위기가 달라진다’고 이야기하니 ‘언제든지 할 수 있습니다’고 답하더라”고 고마워했다. 한유섬도 휴식차 빠지는 날 또한 경기 막판 승부처에 항상 대기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베테랑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원팀’으로 뭉치고 있는 것이다.

▲ 팀의 전천후 내야수로 스페셜리스트와 분위기 메이커로서의 가치가 여전한 김성현 ⓒSSG랜더스
▲ 오태곤(가운데)은 전천후 유틸리티 플레이어로서 올해 많은 출전이 예상되고 있다 ⓒSSG랜더스

객관적인 전력에서 우승권과 거리가 멀어졌다는 평가를 받기는 하지만, 이 감독은 그런 모습을 보며 강한 희망을 찾았다고 자신한다. 이 감독은 “지금 분위기나 선수들이 하는 것을 보면 물음표가 점점 느낌표로 갈 수 있지 않을까는 생각이 조심스럽지만 든다. 광현이도 그렇고, 신수도 그렇고 선수 입장에서 우승이 목표라는 말을 하기가 쉽지는 않다. 나도 현역 때 해봤지만, 어느 정도 자신들 사이의 감이 있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닌 팀에서 우승하겠다는 말은 안 나오지 않나”면서 “그런 느낌이 좋다”고 흐뭇하게 바라봤다.

문승원도 이 감독의 불펜행 권유를 흔쾌히 받아 들였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포지션에서도 서로를 배려하고 팀을 먼저 생각하는 문화가 살아 숨 쉬고 있다. 베테랑 선수들이 지금까지의 공헌도나 팀 내 영향력을 앞세워 욕심을 부린다면 팀 분위기가 엉망이 되거나 사분오열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SSG는 ‘우승’이라는 대전제 속에 모두가 일정 부분을 희생하고 있다. 추신수와 최정, 그리고 김광현을 중심으로 한 일사불란한 리더십도 여전하다. 선 밖으로 튀어 나가는 선수는 존재하지 않고, 용납하지도 않는 게 SSG 선수단의 문화였다. 그 저력이 남아 있는 한, SSG는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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