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증언] ‘인동꽃 아이’ 강양자 할머니의 기억

유용두,강재윤 2024. 2. 15.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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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제주] [앵커]

4·3의 역사를 기록하는 KBS 연속기획 순서입니다.

강양자 할머니는 4·3 당시 돌봐주던 외가 식구를 모두 잃고 자신도 불의의 사고를 당해 평생 장애를 안고 힘겨운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유용두, 강재윤 기자가 만났습니다.

[리포트]

[강양자/4·3희생자 유족 : "(광복되자) 일본에서 내가 5살 때 왔다는 것 (기억나요.) 아버지는 이듬해 한 6개월도 못살고, 도저히 땅 파먹고 살기가 너무 힘들어서 못 살겠다고 나를 놓아두고 (어머니와 일본에) 갔어요."]

[강양자/4·3희생자 유족 : "(외할아버지)집에 커다란 우물 있어서 곤충, 물방개 별것이 다 있었어요. 외할아버지한테 보름달 뜨면 할아버지 방이 깜깜하니까 우리 저 함지박에 보름달 떠와서 방에 넣읍시다. 인동꽃 곱게 따서 말려서 연초 담배에 이렇게 작두로 딱딱 갈다시피 해서 곰방대에 꼭꼭 눌러 부싯돌로 불 피워서, 뻐끔뻐끔 담배 연기 보면서 재미있어하고 '할아버지, 담배 그렇게 맛있어?' 하면서 (지냈어요.)"]

[강양자/4·3희생자 유족 : "외할아버지가 일하러 갔다가 깜깜한 밤에 소 묶어 놓았는데 풀어졌나 봐요. 소 찾으러 가다 보니까 좀 산 깊은 곳까지 올라갔나 봐요, 그게 끝이에요. 어느 날 할머니 따라 (할아버지 찾으러)갔다가 캄캄한 비, 천둥, 번개 내려치고 돌무더기에 미끄러져서 곤두박질친 게 천 길 낭떠러지, 어디 돌구멍에 처박혀서 진짜 죽어버렸으면 좋았을 것을. 할머니도 놀랐는지 피범벅이 되고 미끄러져 내려온 길 따라 제 이름 부르면서 외쳐도 제가 들을 수가 없죠, 손으로 돌무더기 헤치면서 나를 찾아서 둘러업고 (집에 왔죠.) 할머니랑, 친할머니랑 살아서 변변히 병원에도 한번 못 가보고 (등에 장애가 생겼죠.) 외할아버지는 소 찾으러 갔다가 어떤 사람에 의해서 오해받아서 그렇게 됐다고 하고 외할머니하고 외삼촌은 소개령 내려져서 소개해서 갔더니만 며칠 안 지나서 저기 하귀지서 뒷밭에 끌려가서 총살당했데요. 무슨 죄가 있겠어요?"]

[강양자/4·3희생자 유족 : "친가에 납읍으로 옮겨가서 납읍에서 1~2년 있었는데, 거기도 4·3사건에 자꾸 산에 있던 사람들이 내려와서 소랑 돼지 다 끌어가고 친할머니도 못 살겠다 해서 성안 읍내로. 친할머니가 귀에 딱지가 앉도록 4·3에 누구 죽었다는 말(하지 말라고), 의심받는데요. 학교 다닐 때 (장애 있다고)애들 놀리는 게 너무 싫어서 초등학교 4~5학년, 14살 때에요. 밀항해서 간다고 할머니한테 너무 떼를 썼어요. (할머니가) 3만 환 남한테 꿨는지 어땠는지 모르겠어요. 제주에서 직접 이동하는 게 아니라 부산에 가서 일주일을 머물렀어요. 부산에서도 밀항해 갈 사람 모아야 하는데 그 사람들 기다린다고 (밀항하는 배에)여자 아이는 나 혼자뿐이었어요. 남자 분들 네댓 분 됐나. 어찌어찌 출항해서 짐작으로 20여 분쯤 배 움직여서 가는 것 같은데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고막 터질 것 같이 울려서 거기 배 밑에 숨어 있던 사람이 아이고 배 포위당해서 돈만 잃어버리게 됐다고 (헌병이) 감옥 가는 일이니까 절대 두 번 다시 몰래 밀항해서 일본 가려고 하면 안 된다고 (했어요.)"]

[강양자/4·3희생자 유족 : "1964년도에 (일본에서)올림픽 개최를 했거든요. 그때 제 아버지가 저를 어렵사리 초청을 해줘서 그때 제가 20살이 넘을 때죠. 가자마자 아버지 붙들고 등부터 고쳐주라고 병원에 가서. 어릴 때 열 살 전후로만 치료했으면 능히 치료해서 정말 반듯한 사람으로 될 수 있었는데 치료를 못 받아서 너무 늦어버렸다고 일본 병원에 갔어도. 아버지는 저 때문에 (미안해서) 술 마시다 몇 년 못 살아서. 나 혼자 떨궈놓고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 보기 마음이 어떠냐고 막 소리 지르고 엄마 원망을 너무 했어요."]

[강양자/4·3희생자 유족 : "후유장애인 재판 기각된 후로는 다시 청원도 하고 이의신청도 해봤자, 중앙에서 받아들이지 않고 제가 탄원서 낸 것 까보지도 않고 그냥 돌려보냈어요. 그러니까 내가 없던 스트레스도 생겨난 거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일절 바깥 출입을 안 한 거에요. 4·3이 정말 사람 죽이는 사건인가보다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정말 좋은 제주도 섬에 무슨 사건이, 너무 창피스럽고 말하기도 싫어요."]

유용두 기자 (yyd9212@kbs.co.kr)

강재윤 기자 (jaeyu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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