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에 몇 개의 선이 존재하는지”… 한반도 화약고 NLL 충돌사

김예진 2024. 2. 15.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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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한계선(NLL)일대가 다시 한반도의 화약고가 될 위기다. 북한이 서해 일방적인 ‘해상국경선’을 긋고 “침범시 무력도발 간주” 운운하면서 서해상 충돌이 가시권에 들어온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한국 괴뢰들이 국제법적 근거나 합법적 명분도 없는 유령선인 《북방한계선》” 언급은 그간 1970년대 이래 꾸준히 NLL을 부정하며 도발 명분으로 삼아온 행태의 연장선이다.

2004년 6월 29일 경기도 파주시 홍원연수원에서 열린 남북장성급 군사회담 제2차 실무대표회담 전체회의에 참석한 남북대표단들이 서로 악수하고 있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NLL은 1953년 정전협정 체결 당시 압도적 해군력으로 북진해온 우리 측 해군이 더이상 북진해 북측을 위협하지 않도록 그은 말 그대로 ‘북방 한계’ 선이었다. 유엔군 사령관이었던 마크 클라크 장군이 선포했다. 남북 간의 우발적인 무력 충돌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정전협정에 따라 유엔군 관할로 인정된 서해 5개 도서(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와 북한 황해도 지역의 중간선을 기준으로 설정된 것이었다. 이는 압도적 우위를 가진 우리 측의 일종의 ‘자제선’인 측면이 있었기 때문에 북측은 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영토에 군사분계선과 완충지대를 분명히 한 것과 달리 서해상에서는 NLL이 사실상의 남북 경계선으로 굳어지게 됐다.

북한은 그러나 1970년대 들어 NLL을 문제삼기 시작했다. NLL은 유엔군이 일방적으로 그은 선이니 경계선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편 것이다. 합의한 적도 없고 불법이라는 주장을 폈다. 새로 경계선을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1973년 12월에 열린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에서 경기도와 황해도 도 경계선 이북 수역을 자신들의 연해라고 주장했고 서해 5개 도서에 출입하는 선박에 대한 사전허가를 요구하는가 하면, 1977년엔 해상군사경계수역을 설정하기도 했다. 1999년 6월 15일과 29일 두차례 NLL 남쪽 연평도 인근에서 교전을 일으켰다. 제1연평해전이다. 그해 9월 일방적으로 NLL 남쪽에 ‘조선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을 선포하고, 2000년에는 ‘서해 5개섬 통항질서’를 공포했다. 서해 5개 도서를 오갈 때면 좌우 1마일씩 해로를 설정해 해당 수역으로만 다니라는 요구였다. 2002년 6월 29일에는 북한 경비정이 NLL을 또다시 침범해오면서 선제사격했고 교전이 발생, 2차 연평해전이 벌어졌다. 이후 남북군사회담을 통해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문제가 대두되면서 2004년부터는 좀더 현실적인 주장으로 수위를 낮추거나 ‘서해 해상 경비계선’이란 용어를 사용해왔다. 2020년 연평도 공무원 피격 사건 당시 우리 군이 NLL 이남에서 실종 수색 작업을 하자 북한은 자신들의 영해를 침범했다며 경고를 보내기도 했다. NLL무력화 시도는 북한의 해군력이나 안보환경 상 북한의 전략·전술적 필요성 등에 따라 반복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우리 정부는 1991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를 근거로 NLL의 지위가 확고하다는 입장이다. 남북기본합의서 11조에는 ‘남과 북의 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은 1953년 7월27일자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선과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하여 온 구역으로 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 때문에 북한도 NLL을 사실상 인정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2004년 도출된 「서해해상에서 우발적 충돌방지와 군사분계선지역에서의 선전활동 중지 및 선전수단 제거에 관한 합의서」의  부속합의서. 세계일보 자료사진
북한의 주장과 별개로, 완충지대 필요성도 제기됐던 만큼 남북 합의를 통한 서해 평화수역 설정 노력도 이어져왔다. 2004년 ‘서해 해상에서 우발적 충돌 방지와 군사분계선지역에서의 선전활동 중지 및 선전수단 제거에 관한 합의서’가 도출됐다. 이른바 ‘6·4합의’다.

2018년엔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에서 6·4합의 정신을 강조하며 서해 평화수역 설정에 합의하기도 했다. 이른바 ‘9·19 군사합의’다. 지난해 남북은 9·19 군사합의 파기를 놓고 대립했다. 우리 정부가 9·19 군사합의 내 정찰조항을 폐기하자, 북한이 합의 전체를 파기하겠다고 나오며 말폭탄을 주고받았다.

결국 올해 들어 북한이 대남노선을 공세적으로 전환하면서 NLL이 다시 한반도의 화약고로 떠오를 조짐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16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에서도 “우리 국가의 남쪽 국경선이 명백히 그어진 이상 불법 무법의 북방한계선을 비롯한 그 어떤 경계선도 허용될 수 없으며 대한민국이 우리의 영토·영공·영해를 0.001㎜라도 침범한다면 그것은 곧 전쟁 도발”이라고 말했다.

한달 만에 또다시 “연평도와 백령도 북쪽 국경선 수역에서의 군사적 대비태세를 강화”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조선 서해에 몇 개의 선이 존재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으며 또한 시비를 가릴 필요도 없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김예진·구현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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