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10대들에 '밸런타인데이 경계령'... "존엄성 잃을 행동 안 돼"

류호 2024. 2. 1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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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학교에 "부적절 행동 방지 조치 취하라"
정부 위원회는 대놓고 "성행위 피해야" 강조도
'여성 혼전 성관계 금기시' 보수적 사회 분위기
한 캄보디아 여성이 14일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수도 프놈펜 시내 노점상에서 꽃을 사고 있다. 프놈펜=AFP 연합뉴스

캄보디아 정부가 밸런타인데이(2월 14일)를 맞아 10대 청소년들에게 사실상 '성관계 금지령'을 내렸다. 밸런타인데이가 전통 규범을 해친다고 보는 기성세대와 달리 청년층에선 이를 반기는 문화가 갈수록 확산되고 있는데, 청소년들도 이에 휩쓸릴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14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캄보디아 교육부는 이날 각 학교에 "존엄성을 잃을 (학생들의) 부적절한 행동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했다. 여기에서 언급된 '부적절한 행동'이란 극도로 보수적이고 전통 관습을 중시하는 캄보디아에서 금기시하는 여성의 혼전 성관계다. 연인들에게 특별한 날로 인식되는 밸런타인데이 분위기에 젖어 10대 청소년도 성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보고 '주의보'를 발령한 것이다.

여성에게 혼전 순결을 요구하는 건 일종의 여성 행동 강령인 '차밥 스레이(chbap srey)'가 관습법으로 존재할 정도로 캄보디아가 가부장적 사회이기 때문이다. 차밥 스레이는 '남성에게 순종적인 여성이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소녀 시절부터 '여성의 덕목'을 강조한다. 또 인구 대다수가 불교를 믿는 캄보디아에선 밸런타인데이가 불교를 위협하는 기념일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한 루마니아 어린이가 13일 수도 부쿠레슈티 시내에서 열린 밸런타인데이 행사에서 하트 모양 풍선을 든 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부쿠레슈티=AP 연합뉴스

그러나 최근 캄보디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에선 젊은 층을 중심으로 밸런타인데이를 즐기는 분위기가 자리 잡고 있다. BBC는 "밸런타인데이 기간에 장미꽃과 하트 모양의 기념품을 파는 가게와 노점상이 동남아 국가들에서 부쩍 늘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캄보디아 정부는 이 같은 변화를 수용하기보다는 밸런타인데이 열기를 꺾는 데 안간힘을 쏟고 있다. 여성부는 커플들에게 전화를 걸어 "일부 젊은이가 밸런타인데이의 의미를 오해하고 있다"고 역설했고, 문화부는 학부모들에게 "자녀들이 명예와 존엄성을 지킬 수 있도록 전통을 따르게 해 달라"는 메시지를 전파했다. 국가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위원회는 아예 "성행위를 피하라" "(밸런타인데이는) 연인이 아니라 가족, 친구들과 기념하는 날"이라고 강조했다.

밸런타인데이를 경계하는 건 캄보디아만이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08~2019년 빨간 장미와 기념품 판매를 금지한 바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에선 종교 단체들이 "힌두교·이슬람교에 대한 모욕"이라며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류호 기자 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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