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쿠바 전격 수교···“중남미 외교 중요 전환점”

박은경·유정인 기자 2024. 2. 15.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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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유일 미수교국과 외교관계 수립
경제협력 확대, 기업진출 기반 마련
쿠바 방문자 체계적 영사조력 제공 가능
“북한에 정치적 타격 불가피” 평가
한국과 쿠바가 14일 외교관계 수립을 발표했다. 사진은 지난 2016년 6월 5일(현지시간)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쿠바 컨벤션 궁에서 브루노 로드리게스 쿠바 외교장관이 양국 간 첫 공식 외교장관 회담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한국의 중남미 외교, 사회주의권 외교의 핵심 과제였던 쿠바와의 외교관계 수립이 성사됐다.

한국과 쿠바는 1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양국 유엔대표부가 외교 공한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쿠바는 한국의 193번째 수교국이다. 중남미 국가 중 유일한 미수교국이었던 쿠바와 수교로 한국의 외교 지평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15일 정례브리핑에서 “쿠바와의 외교관계 수립은 우리의 대중남미 외교를 강화하는 중요한 전환점이자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외교지평을 더 확장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이번 수교를 통해 양국 간 경제협력 확대, 국내기업 진출 지원의 제도적 기반 마련, 쿠바 방문 국민들에 대한 체계적 영사 조력 제공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쿠바 수교는 한국 외교의 숙원이자 과제였다”며 “이번 수교는 과거 동구권 국가를 포함해 북한의 우호 국가였던 대사회주의권 외교의 완결판”이라고 평가했다.

공산주의 국가인 쿠바는 북한의 ‘형제국’으로 불리며 북한과 끈끈한 연대를 과시해왔다. 한국과 수교하지 않고 북한과 단독 수교한 국가는 기존 세 곳에서 팔레스타인, 시리아 2곳으로 줄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번 수교로 북한으로서는 상당한 정치적·심리적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쿠바는 1949년 대한민국을 승인했지만 1959년 쿠바의 사회주의 혁명 이후 양국 간 교류가 끊겼다. 이념 차이로 냉랭한 관계를 유지했던 양국 관계는 1999년 한국이 유엔 총회의 대 쿠바 금수 해제 결의안에 처음으로 찬성표를 던지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쿠바와의 수교는 한국 정부의 20년 넘는 외교 숙원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2000년 쿠바에 수교 제안을 했고, 2002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는 쿠바 측과 무역투자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영사 관계 수립을 제안했고,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은 한국 외교수장으로는 처음으로 쿠바를 방문했다.

국내기업들의 현지 활동과 문화 콘텐츠 인기는 수교 성사에 중요한 토대가 됐다고 당국자들은 전했다. HD현대중공업이 만든 이동식 발전 설비는 쿠바의 만성적 전력난 해소에 크게 기여했다. 이 설비는 쿠바의 10페소짜리 지폐에 그려졌다. 또 2018년부터 쿠바 내 모바일 인터넷이 허용되면서 K-팝을 비롯한 K-콘텐츠가 젊은층을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전격적인 수교가 이뤄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무엇보다 쿠바의 경제·정치 등 내부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손혜현 고려대 스페인·라틴아메리카연구소 연구교수는 15일 통화에서 “이번 수교는 쿠바 쪽의 필요가 더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코로나19 이후 악화된 쿠바 경제 상황은 1990년대 소련 붕괴 이후보다 더 어렵고 이 때문에 쿠바 체제에 대한 불만도 시민사회 중심으로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2021년 7월 생필품 및 코로나19 백신 부족, 잦은 정전 등에 성난 국민 수만명이 반정부 시위가 벌인 것이 대표적이다.

손 교수는 “혁명 세대가 권력에서 완전히 물러나면서 이념보다 실용주의 노선이 더 강화되고 있다”면서 “쿠바가 북한과 긴밀한 관계인 것은 맞지만 경제·문화 교류는 이뤄지지 못하고 있고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해서는 쿠바가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라울 카스트로가 2021년 12월 쿠바공산당 총서기에서 물러나면서 공산·사회주의 혁명 1세대가 사라졌다.

그는 “미·중 전략경쟁 심화로 니어쇼어링(인접국가에서 생산)의 최대 수혜처인 카리브 국가의 지정학적 중요도가 올라가고 있는데 카리브 국가 중 가장 큰 쿠바와 수교는 국내기업 진출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2021년 쿠바 국제정책연구센터의 발표에 따르면 그간 한국과 쿠바 간 교역은 주로 자동차, 에어컨, 냉장고, 텔레비전, 휴대전화 등 분야를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 한국의 대쿠바 수출은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와 쿠바 간 관계개선 직후인 2017년 7000만달러를 기록한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해왔다. 수출품은 자동차와 건설 중장비 등이 주를 이룬다. 수입품은 사탕수수 원료, 담배류(시가), 커피 등이다. 이번 수교로 양국은 다양한 분야에서 경제 협력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인적 교류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코로나19 이전까지 연간 약 1만4000명의 한국인이 쿠바를 방문했다. 미국의 오랜 경제제재 속에서 쿠바 경제에서 관광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다만 쿠바를 방문한 적이 있는 사람은 전자여행허가제(ESTA)를 통한 미국 입국을 거부당할 수 있어 한국인 관광객 증가는 다소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박은경 기자 yama@kyunghyang.com, 유정인 기자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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