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여! 침을 뱉어라 [1인칭 책읽기: 정신머리]

이민우 기자 2024. 2. 15.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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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우 랩장의 1인칭 책읽기
박참새 시인의 「정신머리」
깡패, 건달 그리고 시인
문학은 얼음을 깨는 도끼였나
문학은 이데올로기와 윤리에 의문을 던지는 역할을 해왔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대학생 시절 나는 기숙사 생활을 했다. 4인실을 처음 배정받았을 때, 들뜸과 두려움 등이 섞인 고양감에 룸메이트들과 서슴없이 친해졌다. 통성명을 하지 않아 서로의 학과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난 문예창작과 학생이었고 다른 친구는 경찰행정이었다. 두 친구의 학과는 몰랐다.

기숙사 책상을 꾸미고 있을 때 한 친구가 "빨리 운동장에 가봐야 한다"고 외쳤다. 구경거리가 생긴 것 같아 운동장으로 뛰어나가자 옷 대신 박스를 입은 채 기타를 들고 있는 이가 서 있었다. '대학교란 정말 자유의 공간이구나'라는 생각을 할 때쯤 그가 입은 박스의 뒤쪽에 쓰인 글귀가 보였다. '××학번 문창 GUNDAM(건담)'. 나와 같은 문창과 신입생이란 사실에 놀랐다.

함께 뛰어나온 룸메이트가 나에게 큰소리로 말했다. "문예창작과 애들은 정상이 아니라던데." 나에게 대꾸를 바라는 눈에 그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방에는 문창과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털어놓는 룸메이트의 뒤통수를 보면서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기숙사로 돌아가니 어느새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문예창작학과, ××학번. 이민우.' 방 안에 먼저 들어와 있던 친구들이 다소곳해져 있었다. 운동장으로 가자고 했던 친구가 존댓말로 물었다. "혹시 문창과예요?"

지난해 12월 21일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박참새 시인의 김수영문학상 수상 소감이 논란이 됐었다. "나 사실은 깡패로 살고 싶습니다./실상은 안 그러하니 더더욱 건달이고 싶습니다./규율과 규칙이 지겹습니다./"

문학을 일탈의 도구로 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일탈하는 작가들이 있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논란의 요지는 소감문에 사용한 어휘가 유치한 데다 마음가짐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었다. 박참새 시인의 수상 소감으로 번진 논란은 박스를 입고 서 있는 문창과 학생을 바라보던 룸메이트들의 시선과 비슷했다.

작가 카프카는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라고 이야기했다. 문학은 사회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데올로기와 윤리에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하지만 그동안 문단에는 작가 자신이 도끼가 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작품과 작품 활동으로 질문을 던지는 것과 작가 자신이 일탈하는 건 다르다. 박스를 입은 문창과생과 깡패가 되고 싶다는 시인의 수상 소감을 향한 냉담한 반응은 여태 이 두 가지를 구분하지 못한 문단에 보내는 조소가 아니었을까.

다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박참새 시인은 문학을 통한 일탈과 개인 일탈을 구분하지 못할 사람이 아니다. 민음사에서 출판한 박참새 시인의 시집 「정신머리」에선 그를 "제42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렇지 않다. 그는 레터 '연서Loveletter'로 꾸준히 독자와 소통해 왔다. '가상실재서점'이라는 독특한 형태의 큐레이션 서점 '모이(moi)'와 그가 운영한 팟캐스트도 있다.

[사진 | 민음사 제공]

김수영 시인은 "시를 쓰는 것은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박참새 시인은 김수영 시인이 말했듯 꾸준히 온몸으로 시를 써온 사람이었다. '시여, 침을 뱉어라'는 김수영 시인의 글처럼 새로운 문학을 위해선 용기가 필요하다. 정치적‧사회적 금기를 뚫고 나갈 용기다. 동시에 시인은 일탈의 만용과 자신의 행위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문인들이 일탈을 만용적으로 사용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운 시대이긴 하지만 깡패가 돼 침을 뱉을 수 있어야 하는 것, 그것이 문학이다.

이민우 문학전문기자
문학플랫폼 뉴스페이퍼 대표
lmw@news-pap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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